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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신변보호” 대책에도 다섯 달 만에 다시 가족 ‘보복 살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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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자신을 신고한 사실에 앙심을 품고 저지르는 ‘보복 살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에서 이모(26)씨가 이달 초 자신을 성폭력으로 신고한 여성의 집을 찾아가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외출 중이었던 신고 여성은 화를 면했으나 어머니가 숨지고 말았다. 여성은 경찰의 신변 보호 대상이었지만, 가족은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을 신고한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이모씨가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을 신고한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이모씨가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의자, 경찰에선 “가족 노린 범죄 아니다”

이씨는 12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이씨는 “보복하려고 갔나”, “유족에게 할 말은 없나” 등 질문에 “죄송합니다”라고 답한 뒤 고개를 숙인 채 호송 차량에 올라탔다.

앞선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가족을 노린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이씨가 범행에 쓸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 1시간 동안 주민들이 출입하는 것을 엿보며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아낸 점 등으로 미루어 계획범죄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피해자의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조사 중이다.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스토킹 정황이 있었는지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초 경찰은 여성의 아버지로부터 “딸이 감금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피해진술을 확보한 뒤 여성에 대한 신변 보호 조치를 결정했었다. 당시 이씨가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여 긴급체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여성의 가족이 숨지는 끔찍한 사건을 막지 못했다.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이후 신변 보호 대상 확대

지난 7월 18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주택에서 중학생 A군을 살해한 주범인 백광석과 공범 김시남이 돌담을 타고 A군 혼자 있는 집에 침입하고 있다. 사진 제주동부경찰서

지난 7월 18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주택에서 중학생 A군을 살해한 주범인 백광석과 공범 김시남이 돌담을 타고 A군 혼자 있는 집에 침입하고 있다. 사진 제주동부경찰서

이번 사건은 지난 7월 제주도에서 발생한 보복 살인 사건과 유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신상이 공개된 피고인 백광석(48)은 동거했던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신고하자 “소중한 것을 빼앗겠다”며 협박한 끝에 여성의 15살 아들을 살해했다. 백씨와 공범은 1심에서 각각 징역 30년과 27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이후 경찰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신변 보호 대상에 넣을 수 있게 ‘신변 보호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보완했지만, 송파구 사건에선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신변 보호 결정 시 피해자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피의자의 범죄경력과 112신고 이력, 피해자에게 한 말 등을 고려해 보호 대상을 정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신변 보호 신청 때 ‘가족에 대한 위협은 없었다’고 진술하면 경찰 입장에선 인지가 어렵다. 이번 사건도 피해자와 경찰 모두 가족에 대한 보복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범행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성폭력이나 폭행 등 연인 관계에서 벌어진 범죄는 더 중한 범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가해자도 위치추적이 가능할 수 있게 휴대전화에 앱을 설치하게 하는 등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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