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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총리 될 것" 야심…하야시 日외상, 한국과 거리두기 왜 [인물탐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일 저녁 6시 도쿄 프린스호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자민당 최대 파벌(세이와카이, 아베파) 회장 취임을 기념하는 파티에는 정·재계 유력인사 2000명이 몰렸다. 축사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발언은 의외였다.
"세이와카이의 원점은 1963년의 당풍쇄신연맹이다. (기시다 총리가 현 회장으로 있는 '고치카이' 창설자인)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당시 총리가 소득 2배 증가계획을 내세웠는데, 이에 반대하기 위해 (세이와카이 창설자인) 후쿠다 다케오 선생이 만든 것이다."

지난 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최대파벌 아베파(세이와카이)의 파티 행사

지난 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최대파벌 아베파(세이와카이)의 파티 행사

잔칫상에서 대놓고 극히 이례적으로 두 파벌 간 얄궂은 인연을 들춰낸 기시다의 축사는 이후 일 정치권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일각에선 "파티 5일 전  '대만의 유사(有事·전쟁 등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것)는 곧 일본의 유사'란 발언으로 중국 외교부가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하는 사태를 촉발한 아베에 대해 일종의 경고를 날린 것"이라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 지난달 기시다 총리가 신임 외상에 최측근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를 임명할 당시 아베가 "지나친 친중인사"라며 강하게 반대한 이후 기시다-아베 간 갈등은 가속하고 있다. 이에 유탄을 맞은 건 하야시 외상.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 [EPA=연합뉴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 [EPA=연합뉴스]

유연한 스타일로 미·일 동맹뿐 아니라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설 것이라 기대를 모았지만, 몸을 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지난달 18일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한 뒤 "중국 방문을 초청받았다. 방문 날짜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중국 방문에 의지를 내비쳤지만 바로 자민당 외교부회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회장으로부터 "그랬다간 대외적으로 잘못된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란 견제구를 받곤 몸을 낮췄다.

사토 마사히사 일본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

사토 마사히사 일본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

한국과는 아예 의도적인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상태.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 등 변수도 있긴 했지만, 전임 외상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자민당 간사장의 '한국 무시' 노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강창일 주일대사와는 취임 한 달이 지나도록 전화 한 통화 없었다. 과거 인연이 있던 한국 정치인들로부터의 연락에도 전혀 응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하야시 외상은 '언젠가 총리가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는 정치인인 만큼 자신의 인기에 마이너스가 될 외교 행위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특히 자신에게 '친중, 친한'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어 더욱 신중한 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외교 분야에서 발언권이 큰 아베 전 총리와 선거구 통합 문제가 걸려 있어 더욱 '안전운전'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선거구 조정 때문에 아베 전 총리의 선거구 야마구치 4구와 하야시 외상의 선거구 야마구치 3구는 다음 총선부터 하나로 합쳐지는 방안이 거론된다. 치열한 신경전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하야시 외상으로선 한국·중국과 섣불리 거리를 좁히려 했다가 아베로부터 역공당할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러난 총리라고 하지만 압도적 최대파벌(95명)의 숫자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한국 외교가에선 "그런 건 다 핑계이고, 진정 통 큰 정치인이라면 뭔가 다른 외교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실망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국 리버풀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 장관회의에서 정의용 장관과 어떤 만남을 할지도 주목된다.
외신들에 따르면 정 장관과 하야시 외상은 11일(현지시각) 만찬 자리에서 의례적인 상견례를 했지만, 공식 양자회담은 예정돼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야시 외상은 비틀스 스토리 뮤지엄에서 개최된 리셉션에서 존 레넌의 히트곡 '이매진'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정 장관은 미소 지으며 박수를 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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