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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고름...부상 딛은 피아니스트 서형민, 본 베토벤 콩쿠르 우승

중앙일보

입력

피아니스트 서형민. [사진 서형민]

피아니스트 서형민. [사진 서형민]

피아니스트 서형민(31)이 독일 본에서 열린 베토벤 콩쿠르(International Telekom Beethoven Competition)에서 11일(현지시간) 우승했다. 베토벤의 고향인 본에서 2005년 시작해 2년마다 열리는 대회로, 서형민은 우승 상금 3만 유로(약 3995만원)을 비롯해 슈만 특별상, 실내악 특별상, 청중상을 동시에 받았다. 유영욱(2005년), 안수정(2013년)에 이은 세번째 한국인 우승자다.

“올해가 지나면 피아노를 그만둘 생각도 했고, 독일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는 순간까지도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본지와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서형민은 “피아니스트로서 마지막이라 생각해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출전했던 콩쿠르”라고 했다. 무엇보다 손가락의 문제가 컸다. 서형민은 “몇 년 전부터 왼손 네 손가락의 손톱이 들뜨고 염증이 심해지면서 손톱을 뽑아내는 수술까지 받았지만 최근 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했다. 콩쿠르 참가 직전에도 손에서 고름이 나왔을 정도였다. 그는 “또 원하는 만큼 큰 무대에 자주 서서 연주할 수 없는 현실도 답답해 피아노를 그만두고 다른 공부를 다시 시작하거나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고 말했다.

서형민은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은 피아니스트였다. “4세에 피아노, 5세에 작곡을 시작했다”고 했다. 10세에 미국으로 떠나 뉴욕 매네스 음대의 예비학교에서 공부했고, 11세에 오디션에 합격해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일본 센다이 국제 콩쿠르 2위, 윤이상 국제 콩쿠르 우승, 저먼 피아노 어워드 우승 경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힘들게 경력을 쌓았지만 원하는 만큼 활동을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에 우승한 베토벤 콩쿠르는 네 번의 무대를 거치며 열렸다. 베토벤의 작품뿐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은 선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대회다. 서형민은 “어려서부터 베토벤을 0순위로 좋아했다”며 “여기에서 우승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극복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또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음악에 집중했던 점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무대에 대한 갈증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서형민은 “1~2년 사이에 잡힌 유럽 연주가 30번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어렵게 이 길을 걸어가는 만큼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했다. 내년 2월엔 한국 무대에도 선다. 2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독주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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