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스타트업을 폭망으로 이끄는 얼리어답터의 덫

중앙일보

입력 2021.12.12 08:00

[더,오래] 김진상의 반짝이는 스타트업(113)

제프리 무어의 ‘캐즘’ 이론이 있다. 하이테크 B2B 시장에는 얼리 어답터인 초기 수용 고객으로부터 얻은 호평과 달리 본격적인 시장 진입에 돌입하기 위한 초기 단계에 다수 고객에게는 외면받는 간격이 있는데 이 간격을 캐즘(Chasm, 큰 차이)이라 하는 것이다. 초기 수용 고객과 다수 고객이 분명하게 다른 문제와 필요,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캐즘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초기 수용 고객과 초기 다수 고객이 분명하게 다른 문제, 필요와 환경에 놓여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캐즘을 파악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스타트업은 초기 수용 고객과 초기 다수 고객이 분명하게 다른 문제, 필요와 환경에 놓여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캐즘을 파악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이 캐즘을 분간하지 못하고 자기 제품에 도취해 고객 분석과 발굴에 엉뚱한 방향을 설정하거나, 초기 수용 고객의 열광적 반응에 시장 성공을 확신하기도 한다. 캐즘이 존재하는 제품의 경우 얼리 어답터의 열광적 반응과 이들의 유입, 반복 구매 등으로 인해 성공을 확신하게 만드는 오류에 빠지고 잘해야 틈새시장용으로 전락하게 된다.

타깃 고객을 얼리 어답터로만 잡은 제품인지 끊임없이 고객 분석을 통해 개선하고 필요하면 피봇(Pivot)해야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열광하는 초기 사용자를 외면하기 싫어서’, ‘세상이 아직 우리 제품이 필요하지 않는 것 같아서’,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자신을 발견하고 실망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창업자는 캐즘을 극복하지 못한다.

얼리 어답터라는 특정 코호트의 열광적 반응이 오히려 창업가의 자기중심적 태도를 강화해 더 큰 코호트로 구성된 시장을 외면해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개선과 피봇 없이 초기 반응에 도취한 채 각종 프로모션, 광고, 할인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다수 고객을 유치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다. 당연히 얼리 어답터와 다른 성향을 가진 초기 다수 고객의 제품 사용은 지속적이지 못해 결국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 고객을 유치해도 상황은 더욱 악화할 뿐이다.

‘더 빨리’에 사로잡혀 스타트업이 실패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된 주된 요인으로 벤처캐피털(VC)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미래 성장성을 바라보고 투자하는 VC 특성상 더 높은 기업가치로 스타트업이 성장하기를 독려한다. 이때 ‘더 빨리’라는 모토는 ‘더욱 더 빨리’로 바뀌고 이 덫에 걸리게 된다. VC로부터 투자받은 스타트업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더욱 더’라는 관념에 지나치게 매몰돼 속도도 성장도 지속가능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더 빠른 속도와 실행도 고객과 시장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목적이어야지, 외형적 성장에만 집중해서는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이어져 생태계 전체는 물론 다양한 사회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외형적 성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방향이 맞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특히 외형적 성장에 따른 기존 구성원과 새로운 구성원의 갈등은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잘 구분해 적절한 조언과 도움을 주는 VC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때로는 병도 주고 약도 줘야 한다.

“일단 빨리 만들어 고객에게 선보인다”는 스타트업 모토에 매몰돼 고객이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 개발에 노력하다 자금 고갈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pixnio]

“일단 빨리 만들어 고객에게 선보인다”는 스타트업 모토에 매몰돼 고객이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 개발에 노력하다 자금 고갈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pixnio]

고객에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 개발에 몰두하는 바람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행위’에 남다른 재능이 있고 큰 성취감을 느끼는 엔지니어 출신 창업가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일단 빨리 만들어 고객에게 선보인다’라는 모토에 매몰된 스타트업은 고객의 필요와 동떨어진 실험을 수행하고, 피봇을 통해 다양한 MVP를 출시하는 바람에 결국 제대로 고객의 필요를 채우는 제품을 만들지 못한 채 자금이 떨어져 실패한다. “몇달 동안 개발할 수 있는 만큼의 자금인가”가 아닌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제품과 사업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우리가 보유한 자금과 자원으로 몇 번의 피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개념을 확고히 하고 고객과 깊이 있는 관계 형성을 통해 고객의 진짜 문제와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객과 시장, 심지어 내부 임직원을 외면하면서도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타트업의 공통점 중 하나는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속 빈 강정으로 외형만 큰 스타트업의 연속되는 후속 투자 유치 성공의 종말은 다음 투자 유치의 실패다. 속 빈 강정 같은 스타트업의 성과는 누적된 결과의 ‘합’이 아니라 누적된 결과의 ‘곱’으로 규정된다. 한 번의 ‘제로(0)’로 결국 최종 결과값도 제로가 된다. 속 빈 강정 같은 스타트업도 후속 투자가 가능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다룰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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