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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남의집 냉장고 들여다보는 재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반려도서(89)

『냉장고 인류』
심효윤 지음 / 글항아리 / 1만7000원

냉장고 인류

냉장고 인류

과거 신혼가전이라고 하면 세탁기, 냉장고, TV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건조기, 의류가전,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등도 필수 혼수품으로 등극했다. 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그 어떤 아이템 하나 빼놓을 수 없겠지만, 이중 단 하나의 가전만 남겨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당신은 선택은 아마도 냉장고가 아닐까. 냉장고는 편리함뿐만 아니라 식생활의 위생과 안전과도 직결된 그야말로 필수가전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더 많은 냉장고를 소유하기를 강요받는다. 일반 냉장고에 더해 김치냉장고, 와인냉장고, 화장품냉장고, 안방 전용 소형냉장고까지 냉장고 과잉 시대라고 하면 과잉 해석일까.

‘차가움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붙은『냉장고 인류』는 냉장고를 주제로 인류사를 훑고 다양한 우리네 삶을 톺아본다. [더,오래]에 연재된 ‘냉장고 이야기’가 책으로 엮어졌다.

이 책은 젊은 인류학 연구자가 인간의 역사를 ‘냉장고’와의 관계를 통해 고찰했다. 냉장고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시대마다 인간의 욕망이 이 물건에 투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는 필수 도구로 발명되긴 했지만 중상층 이상에서는 한때 고가의 가구처럼 인식됐고, 농촌에서는 전기세 걱정 때문에 쓸 엄두도 못 냈다. 어느 시점부터는 혼수품으로 등극하더니 2000년대 초반까지도 ‘여자의 물건’으로 광고하면서 성별 고정관념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점점 커지는 용량으로 냉장고는 신선 기능을 자랑하지만, 음식을 넣어둔 채 잊어 쓰레기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저자는 냉장고가 시대와 세대, 나아가 국경을 넘어 인간의 생활 양식을 보여주는 창구라고 보고 이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파고들었다. 인간은 언제나 사력을 다해 무언가를 개발하지만, 지나친 탐욕으로 그것을 과잉 추구하다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장고는 내가 무엇을 먹는지 보여줌으로써 실로 우리의 처지, 경제적 신분 등을 비춘다.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TV프로그램이 인기였던 건 유명한 셰프가 15분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요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의 냉장고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탐닉하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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