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루 '고추가루 밥' 두 숟갈…1억t 곡물 두고도 굶는 인도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인도 뉴델리의 길거리에 누워있는 노숙인들. [AFP=연합뉴스]

인도 뉴델리의 길거리에 누워있는 노숙인들. [AFP=연합뉴스]

인도 뭄바이 교외 빈민가에 사는 가사도우미 미나 소나와네(34)는 지난 10월의 어느 날 저녁, 자녀를 위해 요리를 했던 단출한 과정을 외신에 소개했다. 부엌에 있던 유일한 음식은 쌀뿐이었고, 밥에 고춧가루를 섞으면 요리는 끝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고춧가루 밥'을 조심스럽게 '삼등분'했다고 한다. 한 사람당 두 숟갈이 그날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그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처참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소나와네는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빈민층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6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소개했다. 설상가상으로 소나와네의 남편 역시 일자리를 잃은 뒤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가진 돈은 남편 치료비로 써버렸다고 한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인도의 기아 인구는 종전보다 9700만명 늘었다고 인도 매체들은 전했다. 두 차례의 대규모 봉쇄 조치로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잃으면서다. 방갈로르 지역의 아짐 프렘지 대학에서 실시한 2020년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0%가 봉쇄 조치로 음식 섭취량이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응답자의 20%는 6개월 뒤에도 식량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올해 기아 수준, 북한 보다 나쁘게 측정돼   

인도 뉴델리의 노숙인들이 지난 7월 자원봉사 단체가 배급하는 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모습. [AFP=연합뉴스]

인도 뉴델리의 노숙인들이 지난 7월 자원봉사 단체가 배급하는 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10월 발표된 '2021 세계 기아 지수' 결과는 2020년보다 악화한 인도의 상황을 보여준다. 인도는 2021년 조사 대상 116개국 가운데 101위에 랭크됐다. 101번째로 상황이 나쁘다는 뜻으로 수단(95), 북한(96위)보다 하위권이다. 인도의 2020년 순위는 94위였다. 인도 정부는 이 지수의 추정치가 비과학적이라고 일축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인도의 1억 8920만명이 영양결핍 상태에 있다고 보고했다.

역설적이게도 인도의 식량 창고는 정상 비축량보다 세 배나 많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인도 매체 인디안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인도의 곡물 비축량은 1억2000만t으로 전 세계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식량 생산국으로 지난해 7000만t에 이어 올해 1억t 이상을 비축했다. 이는 인도의 모든 빈민이 배를 곯지 않을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인도의 개발경제학자 자야티고쉬는 이런 인도의 상황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역설"이라고 말했다.

이 식량이 빈민에게 갈 방법은 없는 걸까? 인도 정부도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량 배급제를 운용하고 있다. 인도 영자 매체 스크롤에 따르면 인도는 지난 2013년 국가식량안보법을 제정, 보조금을 받는 인구의 3분의 2에 무료 식량을 배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도시 인구의 50% 농촌 인구의 75%를 포괄하는 범위라고 한다. 쿼츠 인디아에 따르면 2019년 6월 인도 정부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무료 곡물, 설탕 등을 배급받을 수 있는 '배급 카드' 제도를 발표했다.

배급카드 시스템 오류로 식량 못받아 사망도

지난 5월 인도 봉쇄 당시, 일자리를 잃은 뉴델리 지역 일용직 노동자들이 자원봉사 단체가 지급하는 음식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인도 봉쇄 당시, 일자리를 잃은 뉴델리 지역 일용직 노동자들이 자원봉사 단체가 지급하는 음식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시스템의 실패 탓에 이 복지 제도는 음식이 필요한 모든 빈민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배급 카드가 시스템 오류를 일으키거나, 비공식적 경제에 의존하는 빈민을 완전히 포함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빈민 인구 자체가 많아지고 있는 문제도 있다.

WP에 따르면 인도 노동력의 거의 80%는 국가 경제의 비공식 부문(고급 주택 청소, 배달, 일용직 등)에서 생계를 꾸린다고 한다. 인도 경제학자들은 이 80%의 인구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실제 인도 정부의 수치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6월까지 첫 번째 봉쇄 당시 도시 지역의 실업률은 약 21%였고, 2021년 5월에는 델타 변이 확산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의료 시스템이 거의 붕괴하면서 1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난 10년간 증가한 인구수(1억명)만큼 빈민의 수도 많아지고 있는데, 정부의 복지 범위는 이들을 다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그나마 복지 제도의 범위 안에 든 사람들마저 시스템 오류로 아사하는 일도 속출했다. 쿼츠 인디아에 따르면 2000만~4000만 개 배급 카드의 '생체 인식 연결' 시스템이 복지 제도에 연결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필수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이 배급을 거부당해 기아와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여러 주에서 같은 문제가 보고되면서 변호사와 사회 활동가들은 인도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인도 델리 지역의 이주 노동자들이 델리 지역정부가 제공하는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해 4월 인도 델리 지역의 이주 노동자들이 델리 지역정부가 제공하는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모습. [AFP=연합뉴스]

인디안 익스프레스는 "배급 카드 소지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배급 곡물을 받아갈 수 있어야 한다"며 "1억2000만t의 곡물이 정부 창고에 쌓여 있어 추가 자원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쉬는 WP 인터뷰에서 "정부는 즉시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급을 제공하고, 배급 상품을 확대해야 한다"며 "이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