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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특별한 날 짜장면 같은 존재"…백종원도 감탄한 '옥천 별미' [e슐랭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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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충북 옥천군 청산면 지전리. 면 소재지 인근 청산교 사이로 폭 200여m의 보청천이 흘렀다. 속리산에서 발원해 청산면을 휘감아 금강으로 흐르는 이 하천엔 과거 물고기가 많았다. 하천 개량과 준설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은 줄었지만 하서뜰과 인정뜰, 신매뜰, 장위뜰 등 청산을 대표하는 비옥한 농경지는 옛 모습 그대로다.

[e슐랭 토크] 박진수 지전리 이장의 食 #천렵때 끓인 즉석 매운탕이 원조 #‘옥천 생선국수·도리뱅뱅’

1970년대 충북 옥천 청산면소재지. [사진 옥천군]

1970년대 충북 옥천 청산면소재지. [사진 옥천군]

예부터 청산면 사람들은 모내기가 끝나는 초여름 보청천으로 천렵(川獵)을 나갔다. 주민들은 갓 잡은 물고기를 바로 손질해 솥에 끓였다. 여기에 채소와 갖은 양념을 넣어 매운탕이나 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박진수(75) 지전리 이장은 “보청천엔 7보(洑)라 해서 돌로 만든 보가 여럿 있었는데 돌 틈 사이를 지나는 물고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많았다”며 “동네 청년들은 냇가에 모여 물고기를 잡고, 그 자리에서 매운탕을 끓여 먹곤 했다”고 말했다.

밀가루 보급이 본격화한 1960년대 들어 청산의 생선 찌개는 변곡점을 맞는다. 남은 매운탕에 쌀 대신 밀가루 반죽을 넣어 먹는 주민들이 생겨났다. 시골 면 단위 방앗간에서도 밀가루 소면을 구할 수 있게 된 게 어탕국수를 탄생시켰다.

충북 옥천군 향토음식인 생선국수(왼쪽)와 도리뱅뱅.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옥천군 향토음식인 생선국수(왼쪽)와 도리뱅뱅. [프리랜서 김성태]

60년 전 사업 부도 후 떠오른 ‘생선국수’ 

서금화(93) 할머니는 청산면에서 처음으로 생선국수 가게를 연 주인공이다. 그는 1962년 7월 17일 청산면사무소 바로 앞에 ‘선광집’을 열었다. 이 가게는 옛 이름 그대로, 같은 자리를 60년째 지키고 있다. 막내딸인 여덟째 이미경(57)씨와 일곱째 아들이 대물림해 가업을 잇고 있다.

선광집은 푹 끓인 생선 육수에 고추장 양념을 넣고, 여기에 면을 말아먹는 ‘청산 생선국수’의 원조다. 면을 후루룩 빨면 고추장 냄새와 함께 입 안에 오물오물 흐트러진 생선 살이 씹힌다. 81년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생선국수가 인기를 끌자 금강집(82년), 90년대엔 찐한식당, 청산추어탕, 칠보국시, 청양회관이 잇따라 생선국수를 주 메뉴로 문을 열었다. 2000년대 뿌리 생선국수, 전설의 생선국수(현재 휴업 중)까지 청산면 생선국수 거리 인근에 8곳의 가게가 있다.

미경씨는 “주로 면 소재지로 장을 보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특별한 날 짜장면을 드시듯이 생선국수를 드시고 가셨다”라며 “개업 이후 약 20년간 청산면에서 유일하게 생선국수를 팔았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서 1962년 선광집을 연 서금화 할머니(왼쪽 세번째)가 지난 2일 이응주 청산면장(왼쪽 첫번째)과 최응기 옥천부군수(왼쪽 두번째), 박진수 지전리 이장과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서 1962년 선광집을 연 서금화 할머니(왼쪽 세번째)가 지난 2일 이응주 청산면장(왼쪽 첫번째)과 최응기 옥천부군수(왼쪽 두번째), 박진수 지전리 이장과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7시간 끓인 생선 육수에 칼칼한 고추장 양념 

생선국수는 서 할머니의 눈썰미와 매운탕을 즐겨 먹는 청산면 주민들의 전통이 조화를 이루며 탄생했다. 밀가루 보급 확대에 따른 시대적 영향도 컸다. 서 할머니 남편(1980년 작고)은 청산면 토박이다. 마을 이장을 맡으며 야학 지도 등을 했다고 한다.

서 할머니 부부는 1960년께 트럭 2대를 갖고 운수업을 했다가 잇따라 큰 사고가 났다. 당시 보험이 없어서 모아둔 돈을 몽땅 잃고 2년 만에 부도가 났다. 서 할머니는 “남편이 어릴 적 보청천에서 해 먹던 매운탕에 국수를 넣으면 해장국처럼 속 풀이하는 데 좋을 것 같았다”며 “물고기 가시를 최대한 걸러내고, 칼국수 면에서 방앗간에서 사 온 소면으로 바꿔봤더니 먹기 편했다. 주민들도 입에 맞는지 계속 찾았다”고 했다.

생선국수에 들어가는 물고기는 보청천과 금강, 대청호 등에서 잡은 것을 쓴다. 붕어, 누치, 끄리, 숭어 등을 큰 토막을 내 센 불에 2시간, 중불에 4~5시간 끓여 생선 육수를 낸다. 잘게 부서진 고기와 육수에 고추장 양념을 하고, 국수를 넣고 다시 끓여 손님에게 내놓는다.

한 그릇 가격은 6000원(중)~7000원(대)이다. 이응주 청산면장은 “청산 생선국수는 비린내가 덜하고, 영양가도 풍부해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며 “전문 생선국수집 8곳에서 각기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는 생선국수 거리에는 생선국수 전문점 8곳이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는 생선국수 거리에는 생선국수 전문점 8곳이 있다. 최종권 기자

프라이팬 돌려서 먹는 ‘도리뱅뱅’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담아 나오는 ‘도리뱅뱅’은 빙어, 피라미를 튀긴 음식이다. ‘뱅뱅 돌아가면서 민물고기를 놓다’, ‘그릇을 뱅뱅 돌려가며 먹는다’는 뜻이다. 청산면 ‘금강식당’ 사장인 신금옥씨가 처음 이름 지은 것에서 유래됐다. 1973년 옥천 동이면에서 생선튀김으로 시작해 지금의 도리뱅뱅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선광집은 81년부터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을 함께 팔았다. 프라이팬에 4~5㎝ 크기의 작은 물고기를 원형으로 놓고 30~40초가량 초벌을 한 뒤 기름에 튀긴다. 물고기가 딱딱해질 때쯤 꺼내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을 발라 깻잎, 고추, 마늘 등 고명을 올려 완성한다. 고소하고 바삭해 아이들에게도 인기다.

옥천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은 2015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씨가 소개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옥천군은 지역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은 청산 생선국수를 알리기 위해 2017년부터 생선국수를 주제로 지역 축제를 열고 있다. 2018년에는 청산면 지전리와 교평리 일대에 ‘청산 생선국수 음식거리’도 조성했다. 당시 생선국수 거리 입구에 홍보 조형물을 만들고, 식당 위치를 알리는 팻말을 세웠다. 식당엔 주방 집기류와 간판 등을 지원했다.

최응기 옥천군 부군수는 “칼칼하고 담백한 청산면 생선국수를 먹기 위해 주말마다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며 “청산면 명티리에 있는 팔음산에 수목원과 둘레길을 조성하는 등 생선국수와 연계한 관광 인프라 조성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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