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아들 2층, 아내·딸은 3층…더 행복하다는 따로 사는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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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의 조지 소피스(48)와 라라 코빙턴(43)는 지난 10월 결혼한 신혼부부다. 두 사람 모두 이혼의 아픔을 딛고 만났다. 하지만 현재 별거 중이다. 서로 80㎞ 떨어진 거리에 살며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난다. 관계가 틀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결혼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한 신혼 부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AFP=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한 신혼 부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AFP=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도 별거하는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 솔로 생활’을 선택한 부부들이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사이가 좋은데도 서로 떨어져 사는 기혼 인구는 군인 부부를 포함해 360만 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4.8%포인트 증가했다. 최근 발표된 오하이오 볼링 그린 주립대학 가족·결혼 연구 센터의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불화가 없는데도 별거 중인 부부의 비율은 1980년대 6%에서 2018년 13%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연구를 주도한 수잔 브라운 사회학 박사는 “부부가 개별화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이제 결혼은 개인의 행복과 성취를 위한 삶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결혼 직후 ‘따로 살기’를 선택한 부부의 상당수는 재혼 부부였다. 모두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원했다.

소피스와 코빙턴 부부도 그랬다. 이들은 결혼을 결심했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아이 여덟명에 반려견 세 마리. 두 집을 합칠 엄두가 안 났다고 한다. 서로 다른 양육 스타일로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까 걱정도 됐다. 그때 코빙턴이 ‘따로 살기’를 제안했다. “배우자와 반드시 함께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면서다. 이에 가족 모두가 동의했고, 그렇게 장거리 가족생활을 시작했다. 8년 뒤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 생활을 유지할 계획이다. 코빙턴은 “나는 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재정적으로 도움 줄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원했다”며 온 가족이 이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전했다.

결혼식 커플. [pixabay]

결혼식 커플. [pixabay]

중년 부부 가운데는 이혼이 싫어 별거하는 부부도 있다. 올해 초 별거를 시작한 16년 차 부부 샤은 호프(54)와 레베카 호프(50)는 지난 2년간의 결혼 생활을 “끔찍하고, 험난한 기억”이었다고 말한다. 서로에게 불만은 쌓였는데, 가정을 깨긴 싫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개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별거를 결정했다. 올해 초 기존 집을 팔고, 아파트를 위아래 두 채 마련했다. 이제 남편과 아들은 2층, 아내와 딸은 3층에 산다. 아침 식사는 반드시 함께하지만, 그 외 시간은 간섭하지 않는다. 샤은은 “가족 모두 개인 생활에 집중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한다”며 “저녁때면 아내의 음식 냄새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리워지지만, 덕분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다만 사이가 좋은데도 굳이 따로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자발적 솔로 생활을 즐기는 기혼자들의 페이스북 모임 ‘아파트너스(apartners)’에 따르면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별거 비용’이다. 기본적으로 집 두 채, 자동차 두대가 필요하다 보니 각종 세금, 공과금이 모두 두 배씩 든다. 하지만 그만큼 개인의 행복과 성공적인 결혼 생활 두 가지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페이스북 모임을 이끄는 샤론 하이만은 “사람들은 함께 살 때만 부부간 결속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서로 떨어져 사는 것도 결혼 생활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개인과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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