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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의 출제 오류, 그때마다 평가원장 줄사퇴…수능 잔혹사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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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교육팀장의 픽: 수능 출제오류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11월 18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방향 브리핑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11월 18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방향 브리핑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사상 초유의 '수능 공란 성적표'가 10일 배부됐습니다. 성적 통지 하루 전인 9일, 출제 오류 주장이 제기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대해 법원이 정답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교육부는 생명과학Ⅱ를 선택한 수험생 6515명의 성적표는 해당 과목 성적을 공란으로 처리했습니다.

앞서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생명과학Ⅱ 20번에 대한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수험생 등이 효력정지 가처분과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요. 이들의 성적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와야 확정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입시 일정이 급박한만큼 다음주 중에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출제오류 논란이 불거진 수능 생명과학Ⅱ 문항을 둘러싼 첫 법정공방이 열린 8일 오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집행정지를 신청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심문이 끝난 뒤 법정에서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제오류 논란이 불거진 수능 생명과학Ⅱ 문항을 둘러싼 첫 법정공방이 열린 8일 오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집행정지를 신청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심문이 끝난 뒤 법정에서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제 오류 때마다 평가원장 줄사퇴

지난 2017학년도 수능 이후 5년만에 또 다시 출제 오류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복수답안 인정은 6번의 수능, 8개 과목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때마다 출제기관 평가원장 사퇴와 함께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습니다.

첫 출제 오류는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이었습니다. 백석의 시 ‘고향’과 그리스신화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관한 지문을 읽고 비슷한 의미의 단어를 찾는 문제였습니다. 해석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복수 정답이 인정됐습니다. 초유의 출제 오류 사태로 이종승 평가원장은 대국민 사과 후 사퇴했습니다.

2008학년도 수능의 물리Ⅱ에서는 열역학 법칙과 관련된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문제 조건이 부족해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물리학계에서도 문제 오류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고, 결국 평가원은 복수 정답을 인정했습니다. 이미 성적이 발표된 뒤라 정시모집 원서접수 마감을 미루기도 했습니다. 정강정 평가원장도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했습니다.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출제 오류 문항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출제 오류 문항

가장 파장이 컸던 출제 오류 사태는 2014학년도 세계지리였습니다. 유럽연합(EU)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내용이 정답이었습니다. 그런데 교과서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NAFTA의 규모가 더 큰게 문제였습니다. 평가원은 교과서가 정답의 기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고, 1심에서는 수험생 측이 패소해 평가원 정답대로 성적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뒤 2심에서 법원이 오류를 인정하면서 뒤늦게 전원 정답처리가 됐습니다. 정부는 불합격한 학생들에게 추가 합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지만 피해 학생들은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아직까지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2014 수능 당시 평가원장인 성태제 원장은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차기 원장인 김성훈 원장은 2심에서 오류가 인정됨에 따라 불과 7개월만에 사퇴했습니다. 본인이 원장이 아닐때 출제된 수능이지만 책임을 진 것입니다.

지난 2014년 10월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기자회견을 열고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 출제 오류로 인한 피해 학생 전원을 구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훈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뉴스1

지난 2014년 10월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기자회견을 열고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 출제 오류로 인한 피해 학생 전원을 구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훈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뉴스1

세계지리 홍역을 치른 뒤에도 오류는 이어졌습니다. 2015학년도 수능에서는 최초로 영어, 생명과학Ⅱ 2과목에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2017학년도 수능에서도 한국사, 물리Ⅱ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2017 수능 당시 김영수 평가원장은 즉각 사퇴하지 않았지만 출제 오류 발생 7개월 뒤에 임기 아홉달을 남겨놓고 사퇴했습니다.

출제 오류가 계속되자 평가원은 출제위원장과 동급의 검토위원장직을 만들고 검토 기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2022 수능이 또다시 법원으로 가게 되면서 평가원의 신뢰도는 떨어지게 됐습니다.

어떤 판결 나와도 받아들여야 혼란 피한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 하루 전인 9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과 선생님이 정시 배치참고표를 살펴보며 진학상담을 하고 있다. 뉴스1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 하루 전인 9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과 선생님이 정시 배치참고표를 살펴보며 진학상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번 논란은 여러모로 2014 수능 오류를 연상케 합니다. 소송으로 이어진 상황 뿐 아니라 '문제에 이상이 있지만 정답을 찾을 수는 있다'는 식의 평가원 대응도 비슷합니다. 이번 생명과학Ⅱ 20번에 대해 평가원은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면서도 “교육과정 성취 기준을 판별하기 위한 문항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밝혔다. 2014 수능 세계지리 사태때에도 "교과서와 EBS 교재에 나온 내용이라 이상 없다"고 한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2014 수능처럼 정부가 1년여간 공방을 벌이면 모든 수험생이 피해자가 됩니다. 수험생 혼란을 줄이려면 법원이 이번 출제 오류에 대해 내린 판단을 교육부와 평가원이 받아들이고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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