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천지창조 7일째 왜 쉬었을까, 성경의 놀라운 ‘포맷 개념’ [백성호의 예수뎐]

중앙일보

입력 2021.1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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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호의 예수뎐]

수천 년 역사를 관통하며 유대인은 안식일을 지키려 애썼다. 사람만이 그 대상이 아니었다. 유대인이 생활하던 자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유대인들은 6년간 농사를 짓고 7년째에는 씨를 뿌리지 않았다. 율법에 따른 안식년이다.

유대 민족에게 '7'이란 숫자는 안식을 상징한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안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유대 민족에게 '7'이란 숫자는 안식을 상징한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안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해에는 땅을 쉬게 했다. 그럼 1년간 농사도 짓지 않고 뭘 먹고 살았을까? 유대인들은 안식년을 앞둔 해에 2년 치 식량을 준비했다. 안식일 전날에 이틀 치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안식일에는 불을 피우며 요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안식년 1년 전에는 어김없이 풍년이 들었다고 돼 있다.

(30) 천지창조 후 7일째 신은 왜 쉬었을까

안식일을 상징하는 숫자는 ‘7’이다. 안식년도 ‘7’이다. 7년이 7번 지나면 49년이다. 유대인들은 그 이듬해인 50년째를 ‘희년’이라 불렀다. 그해는 매우 특별했다. 희년에도 농사를 짓지 않았다. 49년 안식년과 50년 희년이 이어지면 유대인들은 무려 2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았다. 그러니 그만큼 식량을 비축해둬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을 쌓고 부족 단위로 살던 시대였다. 부족 간 전쟁에서 패하면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다.

희년이 오면 유대인들은 노예들을 모두 해방했다. 해방된 노예들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가진 모든 빚도 무효가 됐다.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리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거대한 ‘사회적 포맷’이었다. 그건 예수가 설한 안식의 포맷 기능과도 맥이 통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지. 저 멀리 예루살렘 성전이 보인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지. 저 멀리 예루살렘 성전이 보인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유대인 마을을 걷다가 골목 귀퉁이의 계단에 앉았다. 가방에서 성경을 꺼내 구약의 첫 장을 폈다. 천지창조의 거대한 드라마가 펼쳐졌다. 빛이 창조되고, 밤이 생기고, 하늘이 생기고, 땅이 생겼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가 종류대로 돋아났다. 하늘에는 빛물체가 창조됐다. 해와 달이 생기고, 별들도 생겨났다. 온갖 생물이 생기고, 사람도 생겨났다. 이 모든 게 ‘창조의 드라마’다.

안식일의 뿌리는 창세기에 있다. 하느님(하나님)은 성경의 시간으로 6일간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에 쉬었다고 한다. 하느님은 왜 쉬었을까.

계단에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창세기에서 천지창조는 6일째에 끝났다. 7일째에 하느님은 쉬면서 안식만 취했을 뿐이다. 나는 7일째에 맞은 안식일에서 비로소 천지창조의 거대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보았다. 하늘과 땅이 생기고, 온갖 생물과 사람까지 생겨난 6일째까지는 그 마침표를 찾을 수가 없다. 왜 그런 걸까.

‘없이 계신 하느님’으로부터 하늘이 나오고 땅이 나왔다. 해와 달과 별도 나왔다. 이 우주의 온갖 생명이 ‘없이 계신 하느님’으로부터 생겨났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한다. ‘없음(空)’이 ‘있음(色)’이 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다. 그런데 ‘공즉시색’만 이야기하면 ‘절반의 완성’에 불과하다. 나머지 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뭘까.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이슬람교의 성전이 세워져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함께 숨을 쉬는 역사적 공간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이슬람교의 성전이 세워져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함께 숨을 쉬는 역사적 공간이다.

사람은 숨을 내뱉기만 해서는 살 수가 없다. 들이마시기도 해야 한다. 날숨과 들숨이 교차할 때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하느님은 왜 안식일을 강조했을까. 예수는 왜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며 ‘아나파우소(신약성경이 처음 기록된 그리스어로 ‘안식’이란 뜻)’를 강조했을까. 구약성경에서는 왜 “이날(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다”라고 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숨을 내뱉은 뒤에 다시 들이마시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신의 속성’을 닮게 했다. 하늘과 땅을 만들던 하느님의 창조성이 우리 안에도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각자의 하루를 돌아보자.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생각을 창조하고, 감정을 창조하고, 아이디어와 통찰을 창조했나.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느님의 창조성이 내 안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의 속성’의 사용법을 잘 모른다. 늘 엉뚱하게 사용해서 오히려 짐을 만든다. 그런 짐들이 쌓이고 쌓여서 예수가 설한 ‘무거운 짐’이 된다.

예수는 그 짐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게 포맷이다. 아침에 화를 낸 것을 포맷하고, 점심때 떠오른 슬픔을 포맷하고, 저녁때 만난 죽일 놈(나의 원수)에 대한 감정을 포맷한다. 6일간 창조한 그 모든 감정과 생각과 집착을 7일째에 포맷하는 거다. 그게 안식일에 담긴 깊은 뜻이 아닐까. 그 모두를 포맷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의 속성’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 맞은 편의 올리브 동산에는 지금도 아름드리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 맞은 편의 올리브 동산에는 지금도 아름드리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구약에서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정한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거룩함이 뭔가. ‘신의 속성’이 거룩함이다. 안식일은 포맷을 통해 신의 속성, 창조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날이야말로 거룩한 날이다. 그러면 “자손 대대로 안식일을 지켜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자손 대대로 신의 속성을 기억하고, 신의 속성으로 돌아오라는 의미가 된다.

2000년 전에 예수를 ‘사형감’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도 이 대목을 놓치지 않았을까. 만약 그들이 안식일에 담긴 진정한 뜻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예수를 단죄하는 대신 자신에게 되묻지 않았을까. ‘나는 안식일을 지켰는가. 안식일을 통해 지난 일주일을 포맷했던가. 그러한 포맷을 통해 하느님 안으로, 신의 속성 속으로 거했던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을까.

구약성경에는 안식일에 대해 이렇게 기록돼 있다.

“이 안식일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다.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1장 17~18절)

7일째 되는 날 하느님은 ‘쉬면서 숨을 돌렸다’고 기록돼 있다. 바깥으로 향하던 숨을 안으로 되돌렸다.  ‘쉬면서 숨을 돌렸다’라는 성경 구절은 영어로 ‘He ceased and was refreshed’다. 쉬고 다시 새로워진다. 거기에 안식의 뜻이 담겨 있다.

올리브 동산에 있는 유대인 묘지. 사막 기후라 관은 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다.

올리브 동산에 있는 유대인 묘지. 사막 기후라 관은 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다.

숨을 내쉬는 게 창조다. 하느님이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자연을 만든 게 ‘날숨’이다. 그렇게 숨을 내쉰 다음에는 다시 들이마셔야 한다. 왜 그럴까. 그래야 다시 내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2, 제3, 제4의 창조가 이어진다. 그게 신의 속성에 깃든 ‘무한 창조성’이다.

안식은 그저 쉬는 게 아니다. 창조의 근원으로 돌아가 ‘제2의 천지창조’를 준비하는 일이다. 제2, 제3의 천지창조가 뭘까. 다름 아닌 우리가 맞게 될 내일, 모레, 글피다. 신이 천지를 창조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하루’를 창조한다.

짧은 생각
산마루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이주연 목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날 대화의 소재는 ‘천지창조’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천지창조의 첫날, 우리가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본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정말, 생각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더군요.

현대 과학에서는 ‘빅뱅 이론’을 가설로 제시합니다.
우주의 첫 시작이 엄청난 폭발이었고,
그로 인해 온갖 원소와 덩어리, 그리고 별들이 생겨났다는 이론입니다.
설령 그게 천지창조의 시작이라해도
그 광경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황홀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성경의 기록대로
하느님(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한다해도
그 광경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스펙타클이겠지요.

그런 ‘천지창조’의 광경을
우리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목사님은 “어마어마한 신비에 젖을 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차분히 살펴보라.
태양도 계속 움직이고,
지구도 계속 움직이고,
우리의 세포도 계속 움직인다.
똑같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저는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궁금해지더군요.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모든 하루의 시작이 천지창조의 첫 아침이라 본다.”

그렇더군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똑같은 아침은 없었습니다.

매번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고,
매번 새로운 바람이 불고,
매번 새로운 노을이 산을 넘어갑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그 모두가 창조의 순간입니다.
하늘과 땅이 새롭게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그런 어마어마한 신비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고,
하루를 보내고,
오늘 밤을 맞고,
또 하늘의 별을 보는 겁니다.

사람들은 종종 “일상의 반복이 지겹다”고
투덜거립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세요.

빅뱅 이후 흘러왔다는
138억년 우주의 역사에서
똑같은 아침이 반복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똑같은 순간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런 신비 속에 흘러갑니다.

그걸 알면
순간 순간이
감동이자,
순간 순간이
황홀입니다.

모든 사람의 하루,
모든 사람의 식탁에는
그런 신비가 놓여 있습니다.

다만,
그걸 맛볼 줄 아는 사람과
맛볼 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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