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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 일반화되면 암호화폐 무력화될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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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호 16면

[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김재완 고등과학원 부원장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KIAS)에서 양자과학기술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양자기술특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배경은 김정상 미국 듀크대 교수가 공동창업한 아이온큐의 양자컴퓨터. 김성룡 기자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KIAS)에서 양자과학기술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양자기술특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배경은 김정상 미국 듀크대 교수가 공동창업한 아이온큐의 양자컴퓨터. 김성룡 기자

지난달 24일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퀀텀C텍 등 12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들 기업이 국제적으로 거래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이 제재의 핵심이다. 이 기업들은 모두 양자 컴퓨터와 관련한 업체다.  특히 퀀텀C텍은 중국의 양자 대부로 알려진 판젠웨이(潘建偉) 교수가 설립한 기업으로, 양자컴퓨터의 프로토타입으로 불리는 지우장(九章) 컴퓨터를 개발했다.

미 상무부의 중국 기업 제재는 양자기술이 국가의 안보와 미래를 좌지우지할 기술로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는 증거다. 국내 현실은 어떨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의 양자기술은 최선도국 대비 평균 81% 수준이며, 특히 양자컴퓨터의 경우 71.8%로 현격히 낮다. 정부는 올 4월에서야 처음으로 ‘양자기술 연구개발 투자전략’을 확정했다. 중앙SUNDAY가 양자기술특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등과학원(KIAS) 김재완(63) 계산과학부 교수(부원장)를 지난 5일 만났다. 김 교수는 1990년대부터 양자컴퓨터를 포함한 양자정보과학을 연구한 국내 양자역학의 권위자다.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자기술특별위원회는 어떤 일을 하나.
“양자정보과학기술이 21세기 첨단 전략기술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한국은 선도국과 기술격차가 크다. 양자특위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산하 위원회이며, 양자기술의 국내 경제·산업·안보적 활용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 민관 합동위원회다. 이경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혁신본부장이 정부 쪽 공동위원장이다.”

미, 퀀텀C텍 등 중국 양자컴퓨터 기업 제재

양자정보과학기술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정보기술은 0과 1, 2진수 기반의 비트(bit)를 썼다. 이런 디지털 기술은 나노(1나노m는 10억분의 1m) 공학을 이용해 점점 더 작아져 왔다. 하지만 나노기술의 한계에 도달하면 서로 간섭현상이 일어나 0과 1이 모호해진다. 이를 ‘중첩 현상’이라고 한다. 양자기술은 이런 중첩 현상을 이용한 새로운 방식의 정보과학기술이다.  0과 1이 중첩되고 얽히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 큐비트(qubit)가 그것이다.  디지털이 2~3나노가 한계라면 큐비트는 원자 단계까지 갈 수 있다. 큐비트 개수가 늘어남에 따라 정보처리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게 바로 양자컴퓨터다. 큐비트 기술을 이용하면 도청이 불가능해지는 양자암호통신이 된다. 양자얽힘을 이용하는 양자센서라는 것도 있다. 중력파 검출과 같은 아주 미세한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양자 이미징도 있다. 양자얽힘을 이용한 양자 레이더다. 스텔스 기능을 가진 물체는 레이더로 안 보이는데, 양자얽힘을 이용한 레이더는 스텔스로 보호막을 친 물체도 찾아낼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등이 국가 차원에서 양자기술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해킹 하나로 사회 전체가 주저앉을 수 있는 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아닌가. 빅데이터가 쏟아져 나오면서 수퍼컴퓨터로도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도 생겨나고 있다.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양자센서·양자이미징이 상용화된다고 생각해 봐라. 양자기술을 선점한 국가에서 글로벌 기술패권을 쥘 수밖에 없다. 미국이 양자기술을 가진 중국기업을 제재하는 이유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양자암호가 나오면 양자컴퓨터로 풀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암호는 수학을 이용한 거다. 이걸 풀려면 수퍼컴퓨터를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양자암호는 수학 문제 같은 걸 쓰는 게 아니다. 랜덤 넘버(무작위 숫자)를 쓰기 때문에 계산으로는 풀 수 없다. 즉 말하자면 양자암호는 양자컴퓨터로도 해독해 낼 수 없다. 오직 암호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 풀 수 있다. 그 암호키를 양자물리학을 이용해 나눠 가지는 기술이 양자암호다.”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성능을 내면 블록체인이 무력화된다고 하던데.
“블록체인에서 쓰는 암호방식이 수학적 암호방식이다. 현재의 컴퓨터는 수학적으로 된 문제를 풀기 어렵지만, 양자컴퓨터는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일반화되는 때가 되면 현재의 블록체인은 무력화될 수 있다. 암호 화폐는 거래내용이 전 세계에 장부에 동시에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방식이지만, 양자컴퓨터는 그 순간을 이용해 공격을 가할 수 있다. 아마도 새로운 양자암호를 이용해서 만들지 않는 이상은 블록체인을 유지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양자정보과학기술의 최선도국이라는 미국의 현주소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양자컴퓨터의 성능은 큐비트의 개수와 비례한다.  큐비트가 많으면 계산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큐비트가 두 배로 늘어나면, 능력은 4배로 늘어나고, 10배가 되면 능력은 2의 10승(1024배)으로 늘어난다. 컴퓨터의 정보처리 능력이 그렇게 늘어난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 IBM과 구글의 양자컴퓨터가 큐비트 50개를 넘긴 지 2년이 됐다. 최근 IBM에서 큐비트 127개를 발표했다. 2023년에는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거라고 말한다. 한국인인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공동창업한 아이온큐도 있다. 64개 큐비트를 이용한 건데, 개개의 큐비트가 IBM보다 성능이 뛰어나 적은 큐비트로 많은 것을 대신할 수 있다.”
미국과 경쟁한다는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최근 60개가 넘는 큐비트를 장착한 양자광컴퓨터로 발표했다. 중국은 또 양자암호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2000㎞ 거리를 양자암호망으로 깔았다. 묵자(墨子·Micius)호라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양자암호통신도 하고 있다. 이 통신은 해킹이 불가능한데, 2017년 중국 베이징 인근에서 약 7600㎞ 거리의 오스트리아 빈까지 양자로 암호화된 사진 파일을 안전하게 주고받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미·중 외에 양자기술에 경쟁력이 있는 나라는 어딘가.
“일본에서는 후지쓰가 양자컴퓨터를 이미 내놨다. 호주에서는 구글에서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던 사람과 함께 100만 큐비트 규모를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나다도 디웨이브시스템이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있다.”
양자컴퓨터가 언제 상용화할 수 있을까.
“사실 지금까지 나온 양자컴퓨터는 유용한 문제를 푼 것은 아니다. 단지 기존 디지털 수퍼컴퓨터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시범으로 보여 준 것이다. 정말 유용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품질 좋은 큐비트 수가 더 늘어나야 하고, 좋은 양자 알고리즘이 개발되어야 한다. 아마 앞으로 5년쯤 지나면 메이저 회사들의 양자컴퓨터 효용성이 판가름날 것이다.”

“10년 뒤엔 물질문명 자체가 달라질 것”

국내 양자정보과학기술은 어느 정도인가
“연구재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디지털 기술은 최선진국(미국)의 97% 수준이다. 하지만 양자정보과학기술은 81.3% 수준이라고 한다. 그중 양자컴퓨터만 보면 71.8%밖에 안 된다. 게다가 현재의 연구개발 투자와 인력 등의 자원을 보자면 앞선 국가들을 영영 따라잡기 힘들다. 아직 한국엔 회사나 학교에서 배출되는 전문인력들이 제대로 없다. 중국 전체에 양자기술 인력이 수천 명에 달하는데, 우리는 100명 남짓한 수준이다. 제대로 된 투자가 필요하다.”
아직 국내 기술로 수퍼컴퓨터도 못 만들어 수입해 쓰는데, 무슨 양자컴퓨터냐라고 한다면.
“수퍼컴퓨터는 우리가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든 거다. 그리고 수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는 적용 분야가 다르다. 수퍼컴퓨터가 잘하는 분야가 있고, 양자컴퓨터가 잘하는 게 있다. 만약 양자컴퓨터가 수퍼컴퓨터의 일을 모두 대체한다고 하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 양자컴퓨터는 엄청난 고진공과  절대영도(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일반 수퍼컴퓨터의 환경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수퍼컴퓨터처럼 선진국 것을 사 와서 쓰면 되지 않나.
“양자기술은 안보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로써는 한·미 간 양자기술 협력에 장애가 없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이 협력을 약속한 기술에 양자정보기술이 들어 있다. 하지만 로켓기술처럼 양자기술이 안보의 수단이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양자기술의 수준을 올려놓지 않으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양자암호기술이 특히 그렇다. 수퍼컴퓨터는 얼마든지 사 올 수 있지만, 양자는 기초기술이며 응용기술이라 우리가 기술을 가지지 못하면, 다른 나라의 양자정보과학기술을 상대하기 힘들어진다.”
10~20년 뒤 양자정보과학기술의 미래가 궁금하다.
“한마디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이 될 것이다. 현재 디지털 수퍼컴퓨터로는 못 푸는 문제들이 굉장히 많다. 계산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2000자리의 숫자를 소인수분해한다고 하면, 이 우주의 모든 원자 개수만큼 수퍼컴퓨터가 있다 해도 138억 년 이상 걸린다. 실제로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거나, 블랙홀의 문제를 푼다거나 할 때 이 정도의 계산량이 필요할 수 있다. 10년 뒤쯤이면 양자컴퓨터가 이런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물질문명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김재완

서울대 물리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휴스턴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텍사스초전도체센터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뒤, 삼성종합기술원 계산과학팀장, KAIST 물리학과 연구 부교수를 거쳐 2002년 고등과학원(KIAS) 교수로 부임했다. 현재 KIAS 부원장 겸 계산과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올해 들어 미래양자융합포럼 공동의장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양자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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