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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박차고 나와 낯선 환경에 도전할 때 성장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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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호 15면

천인우씨는 지난 9월부터 미국 스탠퍼드대 MBA 과정을 밟고 있다. 하버드·스탠퍼드 MBA에 동시 합격했지만, 테크 기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와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과 스타트업, 벤처캐피탈에 진출한 졸업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스탠퍼드 입학을 결정했다. [사진 천인우]

천인우씨는 지난 9월부터 미국 스탠퍼드대 MBA 과정을 밟고 있다. 하버드·스탠퍼드 MBA에 동시 합격했지만, 테크 기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와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과 스타트업, 벤처캐피탈에 진출한 졸업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스탠퍼드 입학을 결정했다. [사진 천인우]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자신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천인우(32)가 살아온 길은 소설 『데미안』의 명문과 비슷하다. 2008년 미국 UC버클리 EECS(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총장 장학생 입학, 2014년 페이스북 엔지니어 입사, 2019년 뱅크샐러드 리더로 이직, 2021년 하버드·스탠퍼드 MBA 동시합격.

스펙만 보면 탄탄대로를 걸어온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그는 매번 ‘컴포트존(안전지대)’를 깨고 나와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왔다. 오는 17일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책 『브레이킹 루틴』을 출간한다. 스탠퍼드대 MBA 석사 과정 중인 천인우씨와 지난 1일 영상으로 인터뷰했다.

평범한 사람이 버클리, 스탠퍼드, 하버드에 합격하진 쉽지 않았을 텐데.
“나의 도전정신을 잘 브랜딩한 덕분이라고 본다. 고등학교 2학년(2006년)  겨울방학 때 북한 고성을 방문해 아궁이를 설치해주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처음엔 북한에 간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북한의 실제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때부터 눈에 보이는 안전한 길보단 불확실한 길이지만 더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탄탄대로를 보장하는 카이스트를 자퇴하고 UC버클리에 입학한 이유도 그렇다. 학교들도 이런 도전적인 마인드셋(마음가짐)에 주목했을 것 같다.”
어학연수 경험 없이 SAT 영어 만점을 받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영어 자체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디즈니 작품을 좋아해서 대사를 통째로 외우고 따라 하면서 자연스레 말문이 트였다. 커서는 오기가 좀 있었다. 어학연수도 안 다녀오고, 해외 경험도 없다 보니 영어 잘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지고 싶지 않단 생각도 들었다. 무작정 책상에 앉아 단어를 외우고, 매일 영어 일기를 썼다. 그게 습관이 되니 성적도 오르더라. 입시를 준비할 때는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의 연설문으로 독해 공부를 하면서 효과를 봤다.”
다들 선망하는 페이스북을 나온 이유는.
“페이스북은 직원들에게 무한 자유를 주되, 그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게 하는 회사다. 직원 모두가 실무자이자 의사 결정자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도 소외계층의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는 프로젝트처럼 의미 있는 일을 여러 번 진행했고, 마크 저커버그 가까이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내가 입사했던 2014년 당시 이미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완성형 회사였다. 새로운 사업을 해도 자원이 충분한 환경이었기에 도전의 영역이 많지 않았다. 통장 잔고는 쌓여갔지만, 개인적인 성장에 대한 조급함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때 마침 페이스북의 후광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람으로서 그동안 배운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싶단 생각이 있었다. 롤모델인 아버지께서 일본 기술을 배워 한국에서 사업을 하셨는데, 그걸 지켜보면서 나도 한국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뱅크샐러드로 이직을 결정했다.”
뱅크샐러드를 선택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는 회사를 찾았다. 뱅크샐러드에선 회사 오너는 어떤 고민을 하는지, 외부 회사와 협업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등 대표 옆에서 직접 배울 기회가 주어졌다. 스타트업 중에서도 언더독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리더 역할을 꿈꿨던 나에게 최적의 회사였다. 2019년부터 약 2년간 뱅크샐러드에서 일하며 리더로서의 나의 모습을 돌아봤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올해 스탠퍼드에 오게 됐다.”
도전에 나설 때마다 불안함은 없었나.
“수도 없이 많았다. 버클리에 갔을 땐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돌아가고 싶단 생각도 했다. 페이스북을 떠날 때는 가족들이 말리기도 했고, 한국에 돌아오니 실리콘밸리 출신 엔지니어라는 수식어에 환상을 가진 분들도 많아 부담도 됐다. 하지만 안정적인 환경에 있을수록 내가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러 번 컴포트존을 벗어나 보니 불확실한 환경이야말로 나를 성장시킨다는 생각에 계속 도전하게 된다.”
슬럼프나 번아웃이 온 적은 없었나.
“페이스북에서 두 번째 승진 시도 때 실패를 겪어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닥친 일인 데다 성과도 나쁘지 않았기에 허탈감이 컸다. 하지만 이미 나온 결과는 되돌릴 수 없지 않나.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고, 내 목표는 눈앞의 승진이 아닌 나의 성장이라며 큰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일희일비하지 않고 나 자신의 성장에만 몰두하게 됐다. 번아웃이 올 때는 작은 일에도 칭찬하는 습관을 들여 번아웃에서 벗어났다. 농구를 하면서 패스를 하나 할 때도 스스로 ‘정확한 패스네!’라며 칭찬하는 거다. 점점 쌓이니까 악순환이 끊어지고 극복이 되더라.”
알을 깨고 나오는 일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잣대를 기준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남이 봤을 때 내가 잘난 사람인 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봤을 때 내가 잘난 사람이어야 하지 않나. 루틴에서 벗어나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중심이 필요하다. 어떤 방식이든 좋으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데 시간을 할애하길 권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 내가 뭘 원하는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은데 시도가 두렵다면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추천한다. 자주 다니는 길 대신 다른 길로 걸어보고, 매일 먹던 메뉴 대신 다른 메뉴를 주문해보는 거다. 이런 작은 연습들이 쌓이다 보면 불확실성의 순간에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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