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틱한 ‘국뽕’ 클래식 담아…이젠 팝페라 황제 아닌 ‘아재’죠

중앙선데이

입력 2021.12.11 00:02

업데이트 2021.12.1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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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호 22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정규 7집 앨범 낸 임형주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아리랑부터 ‘독립군 애국가’ ‘사의찬미’ ‘희망가’, 신곡 ‘산정호수의 밤’ 등 한국적 색채가 듬뿍 담긴 ‘코리안 클래식’ 앨범을 들고 활동을 재개했다. [사진 디지엔콤]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아리랑부터 ‘독립군 애국가’ ‘사의찬미’ ‘희망가’, 신곡 ‘산정호수의 밤’ 등 한국적 색채가 듬뿍 담긴 ‘코리안 클래식’ 앨범을 들고 활동을 재개했다. [사진 디지엔콤]

요즘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이 맹활약하는 모습을 예사로 보지만, 20세기만 해도 상상 못한 일이다. 1998년, 솜털 보송보송한 열두살 소년이 음악 방송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나와 여유롭게 미소지으며 데뷔곡을 당차게 부르던 모습이 많은 이의 기억에 또렷이 남은 이유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35) 얘기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독창회 일정으로 분주하던 이 ‘어린 왕자’가 군입대, 팬데믹 등을 거치며 못본 새 24년차 ‘아재 가수’가 됐다. 5년 만에 들고 나온 7집 앨범도 ‘Lost in Time(잃어버린 시간 속으로)’이라는 제목부터 인생무상이 떠오른다. ‘사의 찬미’‘봉선화’‘희망가’‘서른 즈음에’‘이등병의 편지’ 등 리메이크 위주의 수록곡도 앤틱스럽다.

“이번 앨범은 좀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민요 아리랑부터 1910년대 ‘독립군애국가’, 2,30년대 가곡의 효시 ‘봉선화’, 대중가요의 효시인 ‘사의 찬미’‘희망가’,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 때 불렀던 ‘저 벽을 넘어서’까지 한국의 색채를 담은 앨범이죠. 사실 2년 전 준비하다 여러 사정으로 늦어졌는데, 그때만 해도 지금같은 한류열풍이 아니었거든요. ‘코리안 클래식’으로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해보고 싶었던 거죠.”

‘봉선화’‘서른 즈음에’ 등 리메이크

‘국뽕이 차오르는’ 앨범을 낸 데는 깊은 뜻이 있다. 사실 그는 ‘국내 최초의 팝페라 테너’로, 트로트부터 오페라아리아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노래를 불러온 크로스오버계의 맏형이다. 30대 중반에 벌써 24년차 가수가 된 만큼, 인생 2막을 고려한 포석이란다.

“포레스텔라 조민규씨가 저를 두고 ‘한국 크로스오버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해줬던데, 어느새 제가 그런 선배가 됐더라구요. 최근에 BTS가 그래미상을 ‘마지막 뛰어넘을 장벽’으로 표현했잖아요. 제가 때마침 2017년부터 그래미 투표인단 겸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데,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팔자인 것 같아요. 개인의 영광보다 후배들 챙기는 포지션을 갖고 싶고, 예술행정에도 관심이 가요. 이런 앨범을 낸 것도 그래서죠.”

30대에 인생 2막을 논하다니 심하게 조숙하다 싶은데, 자칭 ‘욕심도 싫증도 많은 사람’이라서다. 하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진득하게 한곳에 머문 적이 별로 없다. 어려서 미술을 배우다 방과후 동요반에 들어가 전국대회를 휩쓸었고, 삼성영상사업단 임원의 눈에 띠어 가수 데뷔를 했다가 두달 만에 방송 활동을 멈추고 예원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줄리어드 예비학교, 빈 슈베르트 음대, 로마 시립예술대학으로 떠돌며 세계 성악 문화를 섭렵했다.

“역마살이 있는지 여행을 가도 한군데 지긋이 못 있고 다 돌아다녀야 해요. 깃발을 꽂아야 되는 캐릭터죠. 여러 나라에서 유학한 것도 다양한 문화를 다 체득하려는 욕심 때문이었고요. 빈에서는 독일가곡의 제대로 된 딕션을,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 가창의 표현력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성악 엘리트 코스를 밟고 팝페라 테너의 길을 택한 건 전향이 아니라 빅픽처였다. “미국 유학 초 만난 개인 튜터 부부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일하는 분들이었는데, 제 노래를 듣자마자 ‘오페라틱 팝을 한다면 대성할 목소리’라고 하시더군요. 정작 저는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의 ‘타임 투 세이 굿바이’ 정도 알 뿐 관심이 없었는데, 그분들이 도밍고 매니저나 파바로티 매니저 같은 음악씬의 유명인사들에게 저를 소개시키며 키워주셨죠. 미국에서는 팝페라를 하고, 정통 오페라에 관심이 생기면 나중에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가서 배우라고 권해주신 것도 그분들이고요.”

결국 팝페라에서 전문성을 쌓은 덕에 오페라를 배운 이탈리아 모교의 석좌교수가 됐다. 이탈리아 음악학교에서 왜 한국인에게 노래를 배울까. “거기서 제가 정통성악을 가르친다면 말도 안되죠. 저는 ‘칸토 모데르나’라는 현대성악, 소위 ‘크로스오버 보컬’을 가르쳐요. 의외로 이탈리아에 팝페라 가수가 많지 않아서, 저 정도 커리어의 팝페라 가수를 데려오려면 돈을 많이 써야 되거든요. 저는 거기서 최고연주자과정을 했으니 겸사겸사 제의한 것이죠.”

정규 7집 앨범 ‘Lost in Time’. [사진 디지엔콤]

정규 7집 앨범 ‘Lost in Time’. [사진 디지엔콤]

그는 ‘한국 최초’‘역대 최연소’ 타이틀로는 최고 부자다. ‘한국 최초의 팝페라 테너’‘아시아 팝페라 가수 최초로 그래미상 투표인단 겸 심사위원’ 등 화려한 명함을 잔뜩 갖고 있지만, 쉽게 얻은 건 아니다. 한땀 한땀 ‘최초’의 길을 개척하면서 그늘도 없지 않았다. “워낙 어릴 때 데뷔해서 ‘만들어진 아티스트’라고들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요즘 데뷔하는 크로스오버 후배들은 팬텀싱어라는 플랫폼이 있고 전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있지만 저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팝페라가 뭔지 설명부터 해야 했죠. 상업주의에 찌든 음악이라고 평가절하 당하기 일쑤였구요. 해외에서는 내 돈 들여 공연장 대관을 하려는데 오디션을 보더군요. 10여년 전 프랑스 앵발리드에서 공연할 땐 한복을 못 입게 했어요. 나폴레옹 무덤이 있는 곳에서 다른 나라를 상징하는 옷을 입으면 안된다면서요.”

악플러에 시달린 최근 몇 년간은 스스로 꼽는 ‘흑역사’다. 열일곱에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독창한 이래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치행사, 나눔활동에 불려 다니다 안티도 생겼다. “음악가에게도 이분법이 필요한가요. 저는 세월호도 연평해전도 다 추모하고 싶은데, 세월호 추모한 놈이 연평해전 10주기에 가면 어떡하냐고 하더군요. 인간적으로 순수한 마음에 갔을 뿐인데 기회주의자, 회색분자라고 해요.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제 멘토이신 한완상 전 부총리님이 ‘형주씨는 최초의 히트곡이 애국가 아니냐. 세월호 때도 많은 사람을 위로했고, 2002년 월드컵을 비롯해 나라의 빅 스포츠 이벤트 때마다 함께 했으니, 시대를 담는 목소리를 팔자로 생각하고 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에 크게 위로 받았습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미소년으로 세상에 나와 ‘원조 이모 팬덤’을 거느렸던 그다. 혹시 나이먹는 게 두렵진 않을까. 웬걸, 두려워서 은퇴까지 생각했단다.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하는 아이돌처럼, 데뷔 10주년에 ‘박수칠 때 떠나자’는 게 목표였는데 맘대로 안되더군요. 소년미는 사라지고 살도 많이 쪘는데, 이제 내려놨어요. 리즈 시절 영상이 유튜브에 별로 없어서 아쉽지만, 어차피 비주얼 가수는 아니니까요. 주사 맞는다고 소년될 게 아니라면 나이들어가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요. 나이테에 걸맞는 무게감도 갖고 싶고요. 데뷔 20년 차이 나는 후배들과 어차피 경쟁이 안되잖아요. 저는 중후한 쪽으로 승부해야죠.(웃음)”

척박한 크로스오버계를 외롭게 개척한 그로서는 전성시대를 맞은 후배들이 부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러움보다 큰 게 ‘앨범 누적판매 100만장 부심’이다. “저도 한때 팬클럽 회원 4만 5천명 찍어본 사람이거든요. 금방 쭉쭉 빠져서 그렇죠.(웃음) 다행히 정상에 있을 때부터 주변 지인들이 ‘내려올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런데도 하향곡선 그릴 땐 상처가 되더군요. 이제야 좀 초월한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도 박수와 환호는 길지 않은 게 자연스런 삶의 이치란 걸 말해주고 싶네요. 너무 ‘꼰대라떼’ 같나요?(웃음)”

그는 재미있는 두 얼굴을 가졌다. 세상 수더분하게 ‘아줌마 수다’를 떨다가도, 커리어에 관해 얘기할 땐 한치 빈틈없는 홍보맨이 된다. ‘사람은 죽어서 커리어를 남긴다’는 신조로 수도승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수많은 기록과 타이틀을 쌓아 왔는데, 30대 중반이 되고 보니 더 이상 ‘최연소’를 이룰 게 없어 아쉽단다. 내년 5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독창회를 여는 것도 “한국의 카네기홀에 해당하는 세종의 4개 극장을 최초로 모두 정복하고픈 욕심 때문”이란다.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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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최초’ 집착이 음악 원동력

“승부근성이 강해서 숫자에 대한 집착이 있어요. 근데 그게 원동력이 됐어요. 앞으로 나가고 새로운 기록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준거죠. 욕심이 앞서 힘들긴 해요. 비행기를 너무 타서 공황장애도 있고, 코로나 블루도 생겨서 신경안정제도 먹고 카운슬링도 받죠. ‘온실 속 화초’ 아니냐던데, 어린나이부터 어른들 세계에 살면서 상처가 많았어요. 실수를 많이 할 나이에 실수하지 않는 법부터 배웠잖아요. 음악가로서는 화려하지만, 인간 임형주는 불쌍한 애에요. 조심하느라 연애도 제대로 못해봤죠.”

해외를 돌며 최고급호텔에 묵어 봤자 공연 전날엔 수면유도제 없이는 잠도 못자는 삶. 스스로 선택했지만, 인생이 참 어렵단다. 화려한 커리어와 별개로 ‘낙제점 간신히 면한 열등 인생’이라니, 인생이 뭘까 싶다. “음악만 해서 부족함이 많거든요. 약점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죠. 몇 년전에 포브스에서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제가 들었다는데, 우리 집에서조차 영향력없는 제가 무슨 아시아 영향력인가 싶더군요. 어느 방송에선 저를 ‘팝페라 황제’라고 소개하던데, ‘팝페라 아재’가 더 어울리지 않나요.(웃음)” 어린 왕자도 아재가 되는 게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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