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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재테크…한국사회 이 책들에 꽂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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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호 20면

[2021 출판 결산] 올해 트렌드·놓친 책들
교보문고·예스24 올해 결산

출판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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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구성한다면, 우리가 읽은 책은 우리 마음을 형성한다. 올 한해 우리는 어떤 책을 읽었나. 한국사회는 어떤 책에 반응했나. 올해 출판시장을 결산하고,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보석 같은 책, 연말연시 읽으면 좋을 책들을 살펴봤다.

판타지, 재테크, 인플루언서.

올 한해 출판계를 압축하는 키워드들이다. 코로나 2년 차, 줄지 않는 삶의 무게를 잠시 잊거나 아예 현실 탈출을 도모하는 방편으로 판타지 소설을 찾거나 재테크 서적을 탐독하는 사람들이 두드러졌다는 얘기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나 TV 프로그램의 영향력도 여전했다. 매력적인 콘텐트가 인플루언서에 의해 ‘발견’될 때 판매가 불붙었다.

적어도 판매량 면에서 올해의 책은 신예 작가 이미예의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에게 돌아가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 형성된 이 소설의 돌풍은 갈수록 거세져 지난 7월 2권 출간 이후에도 잠잠해지지 않았다. 이달 초 1·2권을 합쳐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두 권을 합친 성과이긴 하지만 밀리언셀러는 2018년 『82년생 김지영』 이후 처음이다. 교보문고와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나란히 1위에 올랐다. 이런 돌풍의 원인은 뭘까. 출판사 관계자조차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백화점에서 구입한 꿈을 꾸고 난 후 현실에서 소망을 충족하는 판타지적 설정이 코로나 불황으로 지친 사람들의 어깨를 다독인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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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살겠다. 바꿔보자.’ 현실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경제경영 서가로 몰린 것도 올해 특히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다. 초보자를 대상으로 주식 투자 요령을 동영상까지 곁들여 알기 쉽게 설명한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 77』(메이트북스)가 교보 종합 2위, 예스24 종합 3위에 올랐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과거에 일반적인 재테크 서적이 인기였다면 올해는 각론으로 들어가 주식·부동산·코인 투자 안내서들이 마치 삼각 편대처럼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고 지적했다. 메타버스 관련 서적 출판이 급증한 현상도 결국 미래의 먹고 살길에 대한 관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유튜브·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올해 출판 트렌드 전체에 걸쳐 폭넓게 드리워졌다고 할 수 있다.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 77』도 결국 유튜브 셀러였다. 저자 염승환씨가 구독자 수 161만 명인 최대 경제 유튜브 삼프로TV에 자주 출연해 얼굴을 알렸던 터라 출간 전부터 흥행이 점쳐졌다.

소설가 김영하가 인스타그램에 개설한 김영하북클럽도 힘이 셌다. 한 달에 한 권씩 여기서 소개했던 책들만 따로 모아 진열하는 서점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올해 트렌드로 얼터너티브 라이프(꿈 열풍), 파이어족, 김초엽과 SF의 주류화, 30대 저자의 등장, 라이프스타일 필로소피를 꼽았다.

트렌드는 현실을 다채롭게 반영하지만 전체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교보와 예스24는 지난해에 비해 도서 판매량이 각각 6.3%, 6.6% 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간 독서율(1년 동안 1권 이상 읽은 인구 비율)은 2013년 이후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 단행본 시장이 커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교보 등의 선전이 서울문고(반디앤루니스) 등의 부도로 인한 반사이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히트작을 냈거나 규모가 큰 출판사들은 지난해보다 좋았다고 하는 곳이 많다. 중소형 출판사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판평론가 이권우씨는 “독자의 감소, 저자의 증대 현상이 올해도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자기 삶의 경험과 가치관을 녹인 전문직들의 책이 많았다는 얘기다. 읽는 사람은 줄고 책 쓰려는 사람은 많은 시대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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