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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킹] 한 그릇으로 두 끼를 해결하는 기특한 음식 ‘짬뽕’

중앙일보

입력

10년간 프렌치 가스트로 펍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로 받은 사랑을 뒤로하고, 2019년 돌연 “평생 해보고 싶었던” 국숫집에 도전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유학 시절 배운 유럽 면 요리에 이어, 우리나라 전국 곳곳은 물론이고 라멘의 나라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지를 다니며 면을 공부했다. 면 요리 전문점 ‘유면가’에 이어, 현재 요리연구소 ‘유면가랩’을 운영 중이다. 그동안 면을 공부하며 알게 된 면 요리의 이야기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이유석의 면면면 ⑤ 짬뽕
내겐 짬뽕과 얽힌 비밀스러운 추억이 하나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나는 주방의 막내 생활에 지쳐 있었고, 일에서 도망치고 싶었으며, 실제로 도망을 치고야 말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요리가 그때는 지긋지긋했다. 하여간, 주방에서 도망친 나는 구경 삼아 찾아간 집 근처 복싱체육관을 어쩌다 보니 반년이나 넘게 다니게 됐다. 오전엔 현수막을 매달거나 광고 전단을 돌리는 등 체육관의 일을 거들었고,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아마추어 복싱대회를 준비하며 개인훈련에 임했다.

요리사를 때려 치우고 복싱 인생을 시작했다. 체육관에서 점심은 늘 짬뽕이었다. 한 그릇을 먹으면 두끼가 해결되는 기특한 요리가 짬뽕이라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중앙포토

요리사를 때려 치우고 복싱 인생을 시작했다. 체육관에서 점심은 늘 짬뽕이었다. 한 그릇을 먹으면 두끼가 해결되는 기특한 요리가 짬뽕이라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중앙포토

체육관에서 먹던 점심은 늘 짬뽕이었다. 형편이 녹록하지 않은 관장님과 짬뽕을 한 그릇 시켜 나눠 먹는 게 일과였다. 관장님은 매번 “밥 생각이 없다”고 말하며 내게만 짬뽕 한 그릇을 시켜 주셨지만, 실제로 짬뽕이 도착하면 관장님과 사이좋게 반씩 나눠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 기억은 없지만, 그때 그 짬뽕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 기억 탓인지 중국집에 배달을 시킬 때면 나는 꼭 짬뽕을 주문한다. 국물을 따로 보관했다가, 다음날이 되면 국물에 밥을 말아 짬뽕밥으로 먹는 알뜰한 습관이 생겼다. 먹고 남은 짬뽕 국물이 유독 아깝게 느껴져서다.

물론 복서의 꿈(?)은 접고 지금은 셰프로 일하고 있다. 셰프가 직업이다 보니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것도 내 일이다. 당연히 짬뽕에도 도전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주방에 남아도는 자투리 재료들을 써서 불맛만 잘 입히고 조미료만 잘 넣으면 맛있는 짬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잘못된 생각이었다. ‘좋은 짬뽕’은 재료들을 능숙하게 잘 볶아내 시원한 맛을 잘 뽑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식의 대가이신 여경래 셰프에게 들은 조언이다.

짬뽕 재료를 볶는 모습. 오른쪽은 백종원 대표. 중앙포토

짬뽕 재료를 볶는 모습. 오른쪽은 백종원 대표. 중앙포토

불맛이란, 재료를 볶을 때 강한 화력으로 웍을 돌리면 재료와 불이 맞닿은 부분에서 불맛이 베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백종원 대표도 방송에서 밝혔듯, 간장이 살짝 탄 부분에서 베어져 나오는 것도 불맛이 맞다. 조리과정에서 간장과 술이 만나 살짝 타게 되면 이게 재료와 국물에 스며드는데,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불맛’ 중 하나다. 어떤 방법으로 맛을 내든 간에, 불맛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자 일부 업장에선 웍질을 더 많이 하고, 간장 탄 맛을 더 내려는 경향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사실 불맛이 강조된다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직업인 셰프들에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다.여경래 셰프의 말에 따르면 “좋은 짬뽕은 재료 손질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지만, 볶을 때도 간장의 탄 맛이 배지 않게 빠르게 잘 볶아야 시원한 맛을 잘 뽑아낼 수 있다”고 한다. 즉 의도적으로 조리한 게 아니라면, 짬뽕의 불맛은 요리사의 숙련도가 떨어진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육수에도 노하우가 있다. 이것도 여경래 셰프가 방송에서 공개한 방법인데, “세 번에 걸쳐 육수를 넣어야 맛이 잘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노하우다. 특히, 화력이 약한 가정에서는 한 번에 육수를 다 넣고 끓이면 재료 자체의 맛이 다 빠져나오지 않아 맹맹한 느낌이 든다. 재료마저 덜 볶았다면 그날 메뉴는 짬뽕이 아니라 해물탕으로 바뀔 확률이 높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짬뽕을 만들어 먹을 때, 약한 화력을 원망하며 간장도 태우고, 불맛 내는 기름인 화유를 쓰고 여기에 토치까지 사용해 불맛을 뽑으려고 했다. 정작 중요한 기본과정들을 소홀히 한 것 같아, 요리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음식이 짬뽕이기도 하다. 마침, 바람이 차가운 게 짬뽕 먹기 좋은 날씨다. 오늘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짬뽕 배달을 시켜볼까 한다. 짬뽕을 배달로 시키면, 다음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서 짬뽕밥으로 부활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한 그릇으로 두 끼를 해결해주는 기특한 음식이다.


Today's Recipe 이유석의 집에서 만드는 짬뽕 

가정용 화력으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로 만든 짬뽕이다. 사진 이유석

가정용 화력으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로 만든 짬뽕이다. 사진 이유석

재료 준비 
재료: 오징어 1마리, 홍합 10개, 새우 4개, 채 썬 대파 2큰술, 다진 돼지고기 30g, 청경채 1개, 양파 반 개, 애호박 1/4개, 청양고추 1개, 마늘 5개, 양조간장 1큰술, 굴소스 1큰술, 고운 고춧가루 2큰술, 채 썬 대파 2큰술, 물 1.2ℓ, 치킨 파우더 1큰술, 설탕 1작은술, 식용유 3큰술, 후추 소량, 시판용 생면.

짬뽕 재료들. 사진 이유석

짬뽕 재료들. 사진 이유석

만드는 법
① 국물 만들기
1. 해산물은 모두 미리 손질해두고, 채소는 모두 채 썰어준다. 마늘은 다져준다.
2. 두꺼운 팬에 오일을 두르고,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살짝 볶아준다.
3. 미리 손질해둔 양파, 대파, 마늘을 넣고 팬을 돌리며 볶아주다 간장을 추가해준다.
4. 애호박과 청양고추, 청경채를 추가하고 고운 고춧가루를 넣어 한 번 더 잘 볶아준다. 이때 고춧가루가 타지 않게 가정용 가스레인지 기준으로 약 불에서 조리한다. 고추기름이 우러나도록 1분 정도는 볶아줘야 깊은 매운맛이 난다. 고춧가루를 넣고 제대로 안 볶으면, 짬뽕 특유의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5. 해산물과 청주를 추가해서 볶는다.
6. 물(육수)은 3번에 걸쳐 넣어주는데, 먼저 1/3을 넣고 끓으면 다시 1/3을 넣는다. 또 끓으면 남은 1/3을 넣고 끓인다. 이 방법을 쓰면 육수가 빨리 진하게 우러나온다.
7. 굴소스와 치킨 파우더, 후추를 넣어 간을 조절한다.
8. 준비해둔 면을 그릇에 담고, 끓는 육수를 부어 완성한다.

② 면 삶기
1. 면의 양보다 크고 넓은 냄비를 골라 물을 2/3 정도 넣고 끓인다.
2. 면을 넣고 3분에서 3분 30초를 삶는다. 면의 상태가 살짝 반투명한 상태가 좋다.
3. 면을 건진 후 찬물에 헹군 다음 체에 올려 물기를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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