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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청소년 방역패스…유럽엔 "거부시 구금" 나라도 있다

중앙일보

입력

벨기에 브뤼셀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정부의 방역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왼쪽)이 "내 아이들은 당신의 실험의 일부가 절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벨기에 브뤼셀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정부의 방역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왼쪽)이 "내 아이들은 당신의 실험의 일부가 절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2월 1일부터 청소년(12~18세)을 대상으로 방역패스를 확대 적용하기로 하면서 반발 여론이 심상찮다. 9일 고3 학생 등 452명이 전국 17곳 시·도지사를 상대로 방역패스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헌법소원 심판을 헌재에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방역패스 반대 국민청원은 이날 오후 4시 기준 33만 9000건을 돌파했다. 지난 달 26일 고등학교 2학년생이 올린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7000명을 넘나들고 신종 변이 오미크론까지 상륙하면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달 3일 방역패스 적용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기존의 유흥주점 등 5종에 더해 학원·독서실·카페 등 11개 업종에 대해 백신 접종 증명이나 코로나19 음성 검사서를 제시하지 않고서는 출입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방역패스에 반대하는 이들은 “백신 접종을 정부가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권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백신 접종을 둘러싼 갈등은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이미 흔한 풍경이다. 유럽에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이달 1일(현지시간) “EU 차원의 백신 의무화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공개 언급하면서 논쟁에 불을 당겼다. 그는 “유럽 인구 전체로 볼 때 66%만이 백신을 맞았으며, 이는 3분의 1인 1억5000만명이 접종을 받지 않았다는 얘기”라며 “백신을 독려하거나 가능하면 의무화하는 방안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폰데어라이언의 이 같은 발언은 그리스 정부가 내년 1월부터 60세 이상 고령층에 백신 접종을 강제하고, 이를 어길시 매달 100유로(약 13만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의 발언을 놓고 “EU 27개 회원국에서 자율 영역으로 남아 있었던 각국의 보건 정책이 오미크론 확산으로 인해 백신 의무 접종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CNN도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륙 전체의 백신 의무 접종을 유럽이 고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2년, 바이러스는 사멸하지 않고 백신 논쟁은 더욱 가열되는 글로벌 사회의 단면을 짚어봤다.

백신 놓고 유혈 시위ㆍ소송전…글로벌 백태

그리스의 의료계 노동자들이 지난 3일(현지시간) 아테네의 그리스 의회 밖에서 코로나19 백신 의무 접종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리스의 의료계 노동자들이 지난 3일(현지시간) 아테네의 그리스 의회 밖에서 코로나19 백신 의무 접종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EU 본부가 위치한 벨기에의 브뤼셀에서는 8000명의 시위대가 백신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의 앞줄에는 이날 휴무인 소방대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참석했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불꽃과 맥주캔을 던지면서 벨기에 당국은 물대포·바리케이드를 동원해 이들을 해산했다. 4명이 부상을 입고 20명은 체포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날 시위는 벨기에 정부가 6세 이상 모든 이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하는 등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이틀 전 폰데어라이언 위원장의 ‘백신 의무화 논의’ 발언이 컸다고 한다.

유럽에선 일찌감치 백신패스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올 여름 프랑스·이탈리아에 이어 최근에는 오스트리아·벨기에·네덜란드 등에서 성난 군중들이 거리로 몰려 나오고 있다. 이는 최근 유럽이 델타 변이 확산의 진원지로 변모한데다, 오미크론까지 퍼지면서 각국이 전례 없는 백신 정책을 도입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인구 900만의 오스트리아에서는 지난 달 약 4만 명이 집결한 정부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폭죽 등 화염 물질과 맥주캔을 던지는 시위대에 경찰은 물리력을 써 진압해야 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델타 변이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달 일찌감치 전국민에 대한 백신 접종 의무화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2월 1일부터 만 12세 이상 모든 이들은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정부는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최대 7200유로(약 936만원)의 벌금을 물리거나 4주 간 구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네덜란드 역시 ‘백신을 맞았거나 회복했거나’만 식당·카페 등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2G 정책에 반발하는 시위가 지난 달 벌어졌다. 로테르담시에선 “폭동”으로 불릴 만큼 경찰차가 파손되고 시위대·경찰이 부상 당하는 등 충돌이 빚어졌다. 독일의 새로운 좌파 정부도 빠르면 2월초, 3월께 백신 의무화 법안을 의회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백신 논쟁은 의회와 법정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공화당의 마이크 브라운 상원의원 등은 8일 상원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민간 기업 근로자에 대한 백신 의무화 정책을 폐기하는 결의안을 52대 48로 통과시켰다.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대 50의 동수를 이루고 있지만, 조 맨친, 존 테스터 의원 등 민주당 2명이 바이든 정부의 백신 정책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폐지안은 하원에서 저지될 가능성이 높지만, 바이든 정부에게 정치적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백악관의 젠 사키 대변인은 이와 관련 “의회(상·하원)에서 폐기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강행 의지를 보였다.

같은 날 조지아 남부 연방 법원은 “바이든 정부의 백신 정책은 연방 정부가 계약한 사업의 근로자들에게도 적용돼 정부 조달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막대한 정치·경제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전국적으로 명령의 집행이 중단될 필요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백악관은 역시 법적으로 다투겠다고 했지만, 법원 판단에 따라 바이든의 백신 정책 자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충돌하는 ‘국가의 방역 의무’ VS ‘시민권’

11월 19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로테르담시에서 정부의 미접종자에 대한 다중시설 이용 제한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가 화염 물질 등을 던져 경찰이 발포하는 등 충돌이 빚어졌다. [AP=연합뉴스]

11월 19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로테르담시에서 정부의 미접종자에 대한 다중시설 이용 제한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가 화염 물질 등을 던져 경찰이 발포하는 등 충돌이 빚어졌다. [AP=연합뉴스]

“정부는 코로나19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그리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코로나19는 경제에 피해를 입힐 것이고, 사망자는 더욱 늘 것이다.”(미 민주당)

“종교 등 개인의 신념을 이유로 맞지 않을 수 있다. 개인의 건강과 일자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미 공화당) “의료적 이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차별 행위가 될 수 있다.”(호주 인권위)

백신 의무 접종이 필요하다고 보는 쪽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팽팽하게 엇갈린다. 근간에는 최대한 다수를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공중 보건 정책과, 개인의 신체의 자유·이동권, 직업 선택 등 시민권의 충돌이라는 요소가 놓여 있다.

팬데믹 초기부터 정부의 방역 정책은 유사한 딜레마를 반복해왔다. 각국의 방역 정책은 지난해 초반 외출제한을 포함한 봉쇄령(lockdown)→영업시간 제한 등 사회적 거리두기→백신패스(방역패스)로 발전해왔다. 지난해 초 유럽 국가들이 봉쇄 정책을 도입했을 때도 벌금이나 구류 등 행정 처분을 한 전례가 있었지만, 유럽의 법원들은 대체로 “일시적 조치이고 예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다”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

최근 등장한 논의는 단지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사유만으로 행정적·형사적 처벌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체의 자율성 침해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클 수 밖에 없다. CNN은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백신 접종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넛지(간접적인 제안으로 개인·집단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이론)’였다”며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도 백신을 강제 접종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키시켰다.

정부의 백신 정책은 팬데믹의 장기화와도 관련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3월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코로나19는 3년~5년간 지속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시적 봉쇄나 제한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 회복과 의료 시스템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각국 방역 대책은 백신 접종 강화라는 결론으로 모아지고 있다. 3차 접종을 독려하는 동시에 ‘극약 처방’으로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직·간접 처벌이라는 채찍을 꺼내는 곳이 생긴 것이다.

이 같은 각국 지도자들에겐 풀 수 없는 숙제와도 같았다. 높은 지지율로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임기 막바지 연설에서 “독일 통일 30년 만에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는 방역 정책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털어놨다. “정치적으로 필요한 것과 민주주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제한)부과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은 가장 힘든 경험 가운데 하나였다”고 했다.

백신 보급률 80%인데…‘그라운드 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1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1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백신 무용론’을 펴는 이들은 돌파감염 문제를 근거로 들기도 한다.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식별한 신종 변이 오미크론은 전세계 우세종인 델타에 비해 두 배의 스파이크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한국·이스라엘 등에선 백신 접종을 하고도 오미크론에 감염된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의 첫 오미크론 사례인 인천 거주 부부는 10월 말 모더나 백신 접종을 완료한지 약 2주 뒤 나이지리아로 출국했다가 오미크론에 감염됐다. 미 뉴욕·캘리포니아·미네소타주의 오미크론 확진자 역시 모두 백신 접종을 한 상태였다. 앞서 이스라엘에서도 지난 달 30일 영국 런던의 회의에 참석했던 의사 2명이 오미크론에 감염됐는데, 이들은 화이자 백신을 3차까지 맞은 케이스였다. 이 같은 돌파감염이 많아지면 전체 인구의 80%선으로 여겨졌던 백신 2차 접종률은 설득력을 잃게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해외 의료·과학계는 백신을 접종하면 적어도 위·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줄여줄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었다. 백신은 두 가지 별도의 보호 단계를 제공하는데, 하나는 항체를 통한 것이고 또 다른 층은 T세포 면역 반응을 통한 보호 단계라고 한다. 항체 기능이 떨어져도 T세포를 통한 보호막은 제공되기 때문에 심각한 중증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화이자 측은 8일 3차 접종시 오미크론에 대한 중화 항체를 25배까지 늘려준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도 내놨다.

오미크론이 전파력은 높고 증상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지만 계속되고 있다. 1970년대 풍진 백신을 개발한 스탠리 플롯킨 박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진화론적으로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는 시간이 자나면서 인간 숙주에 감염력은 높아지고 덜 치명적으로 된다”고 했다. “오미크론의 증상은 델타와 달리 경미하다”는 남아공 의사들의 초기 관찰 결과에 힘을 싣는 주장이다.

정치화 된 백신

지난 9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에서 일부 주민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의무접종과 백신 여권 도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9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에서 일부 주민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의무접종과 백신 여권 도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문제는 서구 사회에서 백신 접종 문제가 과학적 문제를 넘어서 정치적 의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대선ㆍ총선 등 선거를 거치며 ‘백신 음모론’에 편승하는 정당들이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의회에서 3순위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자유당은 지난달 21일 정부 비판 시위를 주도했다.

정치인들은 거리로 나와 “백신 접종은 곧 파시스트”라며 “독재 타도” 등을 외쳤다. 벨기에의 백신 반대 시위에서도 독일의 극우 정당 나치의 상징물이 등장했다. 이 같은 ‘백신의 정치화’가 과학적 근거에 따른 객관적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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