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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분쇄기’ 금지로 갈까···“하수도 감당 불가”vs“산업 말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직장인 박모(29)씨는 지난 8월 경기 안양시에 신혼집을 마련하면서 주방용 오물 분쇄기를 처음 구매했다. 그는 분쇄기 설치 후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본 적이 없어 편하다고 했다. 다만 미생물 방식 제품으로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처리 과정은 모른다. 박씨는 "환경 오염에 영향을 미칠 거라곤 생각하지만, 사용 편의성이 너무 좋다. 주변에도 구매하는 이가 많아지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주는 가정용 분쇄기, 이른바 '디스포저' 사용이 점차 급증하고 있다. 주방 싱크대 하수구로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한 뒤 분쇄해서 내보내는 제품을 말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분쇄기 판매량은 2017년 11만4587대에서 지난해 17만511대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따로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수고로움이 적다는 점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는 손길이 늘고 있다. 온라인 광고나 신축 아파트와 연계한 설치 마케팅 등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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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사이 판매 급증, '금지' 법안에 논란 가열

음식물 분쇄기는 1995년 하수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판매ㆍ사용이 금지됐다. 하지만 2012년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제한적으로 판매가 허용됐다. 그 후 약 10년간 성장해온 사업이다. 누적 인증 제품 수는 115개(지난달 말 기준)에 달한다. 관련 업체 수도 100곳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다.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하수도법 개정안이 시발점이다. 분쇄기 사용 증가로 수질 악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사용을 원천 금지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러한 전면 규제 움직임에 업계가 크게 반발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현행법상 음식물 분쇄기의 판매 근거는 애매한 편이다. 하수도법 33조2항에 따른 환경부 고시로 관리하고 있다. 고시 1조에선 분쇄기 판매ㆍ사용을 금지한다면서도 2조 예외 조항을 통해 인증을 받은 경우엔 일반 가정에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다만 찌꺼기(고형물) 무게의 80% 이상 회수하고 20% 미만만 배출하도록 규정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불법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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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안은 아예 법령으로 판매 금지를 명시했다. 수출ㆍ연구 목적만 허용하고 현행 고시의 판매ㆍ사용 근거를 없애버리는 게 핵심이다. 다만 법 공포 후 1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기존 사용 제품은 계속 쓸 수 있도록 했다. 윤 의원 등은 "주방용 오물 분쇄기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하천 수질 악화 등의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업체 "하수도 영향 적어, 불법 제품부터" 

그러자 분쇄기 업체들이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불법 제품 단속과 시장 정상화가 우선인데 산업 자체를 없애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분쇄기를 써도 하수도에 별다른 영향이 없고, 오히려 음식 폐기물 배출에 선택지를 넓혀준다고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 종사자 10만명의 생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판매 반대쪽 입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법을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수질 오염 등에 대해선 "중국ㆍ미국 등에서 들어오는 불법 직구 제품 등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정식 인증받은 합법 제품들이 오히려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 선택권을 줄이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분쇄기를 써봤다는 문모(30)씨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이 진짜 귀찮고 더럽다 보니 사용 금지 대신 하수도에 무리 가지 않게 뒤처리 잘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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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찌꺼기 처리 어려워, 부작용 뚜렷" 

반면 전문가 사이에선 분쇄기 사용량이 크게 늘면서 음식물 찌꺼기를 하수 배관, 처리장 등에서 감당하기 어려워질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질 오염, 탄소중립 저해 같은 여러 부작용이 뚜렷하게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음식물 쓰레기 대부분을 하수도로 흘려보내는 불법 직구·개조 제품이 시중에 많이 풀린 것도 이러한 문제를 부채질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접수된 분쇄기 품질 불만 상담은 774건이다. 이 중 누수ㆍ악취ㆍ막힘 등의 불만이 절반 가까운 383건에 달했다. 또한 오픈마켓에서 판매 중인 247개 제품을 조사했더니 62.5%(154개)가 불법 제품이었다. 지난해엔 업체 4곳이 불법 제품 5만여대를 판매하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 업체 대표는 "지금은 인증 제품을 사도 불법으로 개조해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느 집이 100만원씩 주고 분쇄기 샀는데 귀찮게 물기 빠진 쓰레기를 회수통에서 수거해 버리러 나가겠나"라면서 "각 가정에서 거름망 등을 빼버리면 건더기가 하수구로 다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당장은 쓰기 편해도 10~20년 후에 아파트 배관이나 하수관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도 음식물 때문에 관로에 구멍이 뚫리는 경우가 잦은데 시스템이 아예 망가진 뒤엔 누가 책임지겠나.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 "사용 금지 추진"…상수원 오염 등 우려

정부는 분쇄기 사용 금지를 추진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기존 연구 용역과 지역별 시범사업을 통해서 문제점을 여럿 확인했다는 것이다. 법적 기준을 지켜 분쇄기를 사용해도 생물 화학적 산소 요구량(BOD)가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6.3% 늘고, 하수처리장 오염 부하도 20.3% 증가한다는 시범사업 결과가 대표적이다. 환경부가 따로 실시한 하수 수질 분석 등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지난해 환경부의 '주방용 오물 분쇄기 제도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고형물 20%를 배출하는 분쇄기가 모든 주택에 도입되면 오염 부하가 20.1% 증가하고, 슬러지(찌꺼기) 발생량도 하루 평균 1572t 추가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수조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봤다.

환경부 관계자는 "업체 입장도 이해하지만, 국민 전체의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음식물 찌꺼기가 누적되면 하수관로가 막히고, 하수처리장 처리 용량을 넘어서고, 비가 오면 그대로 상수원으로 넘어가 오염시킬 수도 있다. 2~3년 새 급격히 분쇄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하수도와 배관 부하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올바른 주방용 음식물 분쇄기 사용법 안내 브로셔. 자료 한국물기술인증원

올바른 주방용 음식물 분쇄기 사용법 안내 브로셔. 자료 한국물기술인증원

다만 논란이 마무리되기까진 갈 길이 멀다. 발의된 법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소위도 당장 열리기 힘든 상황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선 "재검토 필요, 업계와 충분한 토론 이뤄져야"(장철민 의원) "빨리 조치해야"(윤준병 의원) 등으로 여당 내 입장도 갈렸다. 윤준병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소위가 열리면 우선적으로 통과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정부가 개정안에 동의하고 있고, 반대 기류는 약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서 찬반 논의 진행 필요…단계적 전환 의견도

법을 바꾸려면 업계 상황 등을 고려한 '단계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환노위 수석전문위원은 하수도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기존) 사업자들의 사업 전환 등을 위해 1년보다 긴 유예 기간을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전면 금지로 피해를 보게 되는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부도 유예 기간 연장, 업종 전환 지원, 기존 구매 제품 사용 인정 등의 보완책에 동의하는 편이다.

음식물을 먹은 뒤 남은 쓰레기 처리는 각 가정에서 귀찮고 더러운 일로 여겨지기 쉽다. 중앙포토

음식물을 먹은 뒤 남은 쓰레기 처리는 각 가정에서 귀찮고 더러운 일로 여겨지기 쉽다. 중앙포토

결국 국회에서 금지든, 허용이든 논의의 장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현행 제도를 그냥 두자니 각 가정의 불법 제품 등을 제재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누적 판매량은 늘어나 제품 구매자들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 관리 주체인 정부로선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와 지방환경청, 자체 온라인 모니터링 등을 통해 불법 제품을 단속하지만 각 가정을 일일이 확인하긴 쉽지 않다. 현재는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분쇄기 관련 내용을 담아 불법 제품 사용을 줄이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다"면서 "일단 법 개정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여러 의견 들은 뒤 가닥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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