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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세계 1위 싸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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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인공지능(AI) 개념의 창시자 앨런 튜링의 얼굴이 새겨진 새 지폐가 지난 6월부터 영국에서 유통되고 있다. 2016년 이세돌-알파고의 역사적 바둑 대국, 2018년 자율주행시스템이 장착된 테슬라 전기차 등장에 이어 AI 시대의 도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다.

AI는 이제 기업과 정부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화두다. 거의 모든 사회·경제적 논의의 중심에 AI가 있을 정도다. 역동적인 기술 발전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 확장성은 여전히 미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AI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폭발적인 사회·경제적 파급력에 대해서만큼은 이제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비메모리 분야 기술력 배가 절실
AI 특화 초저전력 반도체 키워야

필자의 기억에 최근 몇 년 만큼 반도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았던 적이 없었다. 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과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를 계기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약 30%의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끊임없이 재조명됐다.

익히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는 반도체 대국이다. 하지만 모든 반도체를 다 잘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우리 기업들은 그중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규모가 3배 더 큰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은 여전히 미미하다.

최근 세계 반도체 업계의 주요 이슈는 딥러닝(Deep learning)에 최적화된 신경망 처리장치(NPU)의 폭발적인 성장세다. 향후 매년 50%가 넘는 고성장이 예상된다. 반면 사용량이 증가해온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은 조만간 정체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비트코인 논란에서도 불거졌듯이 기존의 반도체는 과도한 전력 소모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지금 같은 속도로 반도체가 증가하면 2040년엔 약 1억 개의 화력발전소가 필요할 거란 우려도 있다. AI를 본격 활용하면 몇 곱절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이 말은 곧 반도체 혁신 없이는 AI 시대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이제 AI 특화용 반도체인 초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람의 두뇌 작동 방식을 모사하는 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인간의 두뇌는 매우 효율적이고 강력한 컴퓨터다. 약 1000억 개의 뉴런과 이들 사이를 모든 방향으로 연결하는 100조 개 시냅스의 초병렬구조가 어떤 컴퓨팅 시스템보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대량의 정보를 처리한다. 뉴로모픽 반도체의 기술 개발 수준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매우 초보적인 단계다. 뚜렷한 선두 그룹이 없는 무주공산이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기적적으로 후발 경쟁국들과의 초격차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 이끌 주력산업으로 손꼽히고 있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오랜 시간의 연구개발(R&D)을 바탕으로 아성을 쌓아온 미국을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게임체인저 등장으로 열세를 단숨에 뒤집을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높은 기술력과 막대한 투자로 후발 주자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승자독식 시장’이다. 이런 가혹한 경쟁 환경을 생각한다면 메모리 분야의 우위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미래에도 반도체 강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AI용 초저전력 반도체와 같은 핵심원천기술 개발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관련 생태계 구축도 중요하다. 차세대 반도체 개발은 뇌과학을 비롯한 기초과학과 공학 전반의 협력과 동반성장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투자가 없다면 다가올 새로운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한국은 다시 추격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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