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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오징어 게임’과 치킨…가장 한국적이라 세계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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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진화하는 한류, 키워드는 혼종성

지난달 말 열린 미국의 샌디에이고 코믹콘 축제에서 관람객들이 ‘오징어 게임’ 병정으로 분장한 참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말 열린 미국의 샌디에이고 코믹콘 축제에서 관람객들이 ‘오징어 게임’ 병정으로 분장한 참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외국인이 가장 많이 먹고 선호하는 한식은 무엇일까. 지난달 농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의 연례 조사에 따르면 한국식 치킨이라고 한다. 한국 전통음식에 닭튀김은 없고 특히 우리가 ‘치킨’이라고 부르는 딥 프라이드치킨은 미국 남부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게 ‘한식’일까? ‘누들로드’ ‘요리인류’ 등 인류학적 음식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이욱정 PD는 이렇게 말했다. “두 번 튀긴다든지 양념을 한다든지 하는 창의적인 레시피로 재탄생하면서 한국화한 음식이므로 한식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새로 추가된 ‘한국 기원의 단어(words of Korean origin)’ 26개에는 ‘chimaek(치맥)’이 포함돼 있다. 그 정의를 보면 “한국과 한국 스타일 음식점에서 맥주와 함께 나오는 프라이드치킨”이며 “한국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4)에 의해 한국 밖에서 대중화했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있다. 그렇다면 치킨과 치맥은 한국적인가, 한국적이 아닌 것인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오른 ‘치맥’
할리우드 색채 짙은 ‘오징어 게임’
‘한국적’‘세계적’ 구분 의미 없어
디지털 환경 타고 지구촌에 어필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의 섞임

세계 83개국에서 시청 1위를 하며 넷플릭스 사상 최대 히트작이 된 ‘오징어 게임’은 어떤가. 이 드라마가 대성공하자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평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가장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빈부격차와 가계부채 등 사회문제와 가족애가 한국적 요소로 꼽히지만 이것은 세계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특히 주인공 기훈(이정재)이 전처와 사는 딸에게 보이는 애정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보던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한국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또한 한국의 어린이 놀이가 등장한 게 ‘가장 한국적인’ 요소로 꼽히는데, 딱지치기와 달고나 게임은 외국 시청자에게 이국적인 흥미를 불러일으켰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줄다리기는 비슷한 게임이 다른 나라에도 있어서 오히려 친숙한 재미를 주었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은 가장 한국적인 놀이를 소개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섞인, 그리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어린이 놀이를 목숨 건 데스 게임으로 만들어서 시청자가 더 강하게 몰입하고 잔혹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놀이동산을 연상시키는 화사한 파스텔톤 게임 공간들이 몰입과 반어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러한 영화미술에는, 감독이 네덜란드 화가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계단 공간을 포함해서, 서양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많다. 참가자들의 녹색 운동복과 병정들의 핫핑크 유니폼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색채 대조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가 이토록 히트하지 못했으리라는 평도 있다. 핫핑크 유니폼은 탈국적적이고, 녹색 운동복은 한국인에게 새마을운동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세계인에게도 낯선 의복이 아니다.

한마디로 ‘오징어 게임’은 세계 보편적인 요소와 지역적인 요소, 진부한 요소와 독창적인 요소를 정교하게 잘 배합해서 전세계 대중에게 어필한 콘텐트다. 이러한 배합의 기술은 지금까지 그 기술을 주도해 온 미국 영화산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가장 한국적이라기보다 어떤 면으로 상당히 할리우드적인데, 할리우드가 주로 해오던 일을 더 잘해냈다고 볼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은 심지어 자막 장벽까지 넘어섰다. 그 전에는 영어권 관람자들이 자막 읽는 것을 번거로워했고 영어권 지역의 흥행이 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비영어 콘텐트의 세계적 흥행이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난 7일 영국 BBC는 이 점을 주목해서 ‘오징어 게임은 TV 혁명의 여명인가’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BBC는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늘 문자를 보게 되면서 자막 거부감이 낮아졌다는 달시 파켓의 말을 인용했다. 여기에 덧붙일 것은, 넷플릭스와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는 영화관에서와 달리 놓치는 부분을 바로 뒤로 돌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막 읽는 것이 느려도 심리적 장벽이 줄어들게 된다.

근대화 이전 전통과 관계 적어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변화 덕분에 한류는 2000년대에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서구의 서브컬처 마니아에게 어필하던 것에서 한층 진화해서 이제 글로벌 문화의 한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이것이 최근 한류의 한 특징이다. 두 번째 특징은 ‘오징어 게임’과 그 뒤를 이어 흥행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부터 최근 옥스퍼드 사전에 그 명칭이 등재된 먹방과 치맥에 이르기까지 한류의 최신 주자들이 ‘가장 한국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적이지 않은 동시에 한국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들이 근대화·서구화 이전의 전통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들이 ‘한국적’이라는 것은 미국·일본 등 외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들여 일종의 하이브리드가 된 한국 대중문화 풍토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자연스럽게 한국적이면서 할리우드적이기도 한 것은 한국 문화 자체가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 (Homi K Bhabha)가 말한 혼종성(hybridity)를 띄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종성은 문화식민지였던 나라가 도리어 제국의 문화권력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니 지금도 문화정책이나 문화사 기록에 고집스럽게 나타나는, 오로지 옛 전통에 입각해 ‘한국적’인 것을 정의하고 외국문화의 영향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재고할 때가 됐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이론 중에 ‘체제의 토사물(le vomi du systeme)’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의미체계 내부에 있는 규정할 수 없고 변화무쌍한 빈 공간을 말하는데, ‘한국문화’에 들어가 있는 ‘무언가 한국적이지 않은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규정하고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고, 동일하지 않은 변화하는 정체성을 거부하며, 닫힌 체계를 지향하는 이들은 이 규정할 수 없고 변화무쌍한 존재가 ‘오염’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체제 밖으로 토해내려 한다. 하지만 ‘체제의 토사물’은 의미체계의 보완물로서 사실 온전하지 않았던 체계의 핵심에 자리 잡은 것이며 이것을 뱉어내는 순간 오히려 체계 자체가 무너진다. 한국문화에서 한국적이지 않은 것을 함부로 규정하고 뽑아내다가는 도리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김환기와 유영국, ‘한국적인 것’의 두 얼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는 김환기의 뉴욕시대 추상화와 유영국의 산 추상화(아래 사진)가 서로 마주 보게 걸려 있다. 문소영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는 김환기의 뉴욕시대 추상화와 유영국의 산 추상화(아래 사진)가 서로 마주 보게 걸려 있다. 문소영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는 김환기의 뉴욕시대 추상화(사진 위)와 유영국의 산 추상화가 서로 마주 보게 걸려 있다. 문소영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는 김환기의 뉴욕시대 추상화(사진 위)와 유영국의 산 추상화가 서로 마주 보게 걸려 있다. 문소영 기자

“우리는 넓은 세계에 살면서도 완전히 지방인이외다. 한국의 화가일지는 몰라도 세계의 화가는 아니외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파리라는 국제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더욱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위의 말들에서 드러나듯이 제1세대 추상화 거장 김환기(1913~64)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미술을 이루어내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그 해답으로 처음에는 달·산·매화·학·백자항아리 등 전통적인 요소를 반(半)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두터운 질감의 유화를 주로 그렸다. 1956년부터 4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 체류했을 때도 그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가 뉴욕에 가서는 직접적인 전통 요소는 넣지 않되 질감이 전통 수묵화처럼 맑고 동아시아 우주관을 내포한 완전추상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역대 한국미술 경매 최고가 ‘우주’(1971) 등의 전면점화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예술을 이루기 위해 그가 끝없이 화풍을 고민하고 실험을 한 결과였다.

반면 김환기와 함께 한국 최초 추상미술 그룹인 ‘신(新)사실파’를 결성했던 또 한 명의 거장 유영국(1916~2002)은 한국적인 예술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한국인으로서 세상 그 누구도 그리지 못했던 그림을 창조한다면 그게 바로 한국적인 그림이 되지 않겠는가?”

유영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추상만을 탐구했고, 특히 산을 반복해서 그렸다. 이렇게 외길을 판 끝에, 빛이 충만하게 넘쳐 흐르는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로 산과 기타 자연의 정수를 꿰뚫는 그림을 그려냈다. 유영국의 말대로 세상에 없는 그만의 그림으로서 점차 국제적인 관심도 받고 있다.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한 김환기, 한국인이면서 독창적이라면 그게 한국적이라면서 외길을 간 유영국, 이 둘은 모두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거뒀다. 그러니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