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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대혼선…법원, 수능 성적발표 전날 정답 유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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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Ⅱ 문항의 정답 결정을 유예하라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수능 성적 통보 하루 전날 이런 결정이 내려지면서 해당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들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이주영)는 9일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기존 정답은 본안 소송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유예된다.

재판부는 “정답 결정 처분의 효력이 유지되면 그에 따라 생명과학Ⅱ 등급이 결정된 성적표를 받게 되는 신청인들은 이를 기준으로 대입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며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해는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고 밝혔다. 법원은 이번 결정이 입시 일정에 지장을 줄 것을 예상해 본안 소송을 신속히 진행키로 했다. 10일 오후 3시로 첫 본안소송 변론기일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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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는 이르면 다음 주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수험생 측 대리인인 김정선 변호사는 “본안 사건이 다음 주 안에는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행정법원 관계자도 “재판부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안소송 기일을 빨리 잡은 것 같다”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둘러 변론을 종결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애초 수능이 끝나고 수험생들 사이에선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종로학원도 지난달 30일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문항”이라며 “올해 『EBS 수능 완성』 107페이지 8번 문제에서도 (같은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실제 EBS는 지난 9월 이 문제의 오류를 인정하고 정오표를 고지했다.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일부 조건에 잘못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답을 고르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며 ‘이상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결론 도출 과정에서 자문한 전문가와 학회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 공신력 논란을 일으켰다. 수험생들은 자문 집단이 누구인지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평가원은 계속해서 “자문한 전문가와 학회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비공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전원 정답 처리되면 기존 정답자는 표준점수가 떨어진다.

전원 정답 처리 땐 등급 변동 … 2심 이어지면 입시 장기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와 관련해 8일 서초구 행정법원 앞에서 수험생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와 관련해 8일 서초구 행정법원 앞에서 수험생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해당 문제의 정답률은 20%대로 알려져 전원 정답 처리 시 과목 평균이 약 1.5점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수시모집에 지원한 수험생 가운데 등급 컷 점수 변화로 수시 최저학력 기준을 못 맞출 가능성도 있다.

특히 생명과학Ⅱ 응시자는 서울대 등 주요 대학과 의대를 지망하는 이과 최상위권이 대부분이다. 많은 의대·약대는 생명과학Ⅱ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있다. 점수 변동에 따라 이과 최상위권 입시에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1점으로 당락이 갈리는 최상위권 입시 특성상 이 한 문제로 당락이 갈릴 수 있다”며 “전원 정답 처리가 이뤄지면 표준점수나 등급 변동의 여파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법원 결정이 나온 지 3시간 만에 “2022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44만8138명의 모든 수험생에게 10일 예정대로 채점 결과를 통지한다”고 밝혔다. 생명과학Ⅱ를 선택하지 않은 수험생은 모든 과목의 성적이 기재된다. 생명과학Ⅱ를 본 수험생 6515명은 해당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성적이 기재된다. 교육부는 “생명과학Ⅱ 성적은 다음에 제공될 예정”이라며 “진행 중인 소송이 신속하게 추진돼 추후 대입 전형 일정에 차질이 없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수험생과 대학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날 수험생들이 모여 있는 한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질문 글이 쏟아졌다. 생명과학Ⅱ의 성적이 공란으로 나오게 된다면 모든 수시 및 정시 일정이 연기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연세대 입학처 관계자는 “본안 판결이 빨리 나온다면 수시 일정에 맞출 수 있겠지만, 늦어지면 수시와 정시 일정 등을 모두 미뤄야 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으로선 학생들에게 공지해 줄 수도 없고,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입학처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통해 소식을 처음 접하고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황인데, 일단 내일 대책회의를 열어 논의해 봐야 할 것 같다”며 “수시모집 최저학력 기준 등에 대한 등급 컷을 포함해 전형 날짜까지 전반적으로 다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험생 측 대리인인 김정선 변호사는 “각 대학 수시모집 발표가 11일부터 시작되는데 소송한 학생들이 지원한 곳에서는 발표가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및 대학들과 신속히 협의해 빠른 시간 내에 향후 대입 일정 등 필요한 사항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앞서 2008학년도 수능에서는 물리Ⅱ 문항의 복수정답이 인정되면서 각 대학에서 해당 과목 응시자에 한해 정시모집 원서마감일을 연장해 추가 접수한 바 있다.

소송이 2심으로 이어진다면 문제는 복잡해질 수 있다. 대한변협 대변인인 김신 변호사는 “1심에서 법원이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판결한다 해도 평가원이 이에 불복해 항소할 수도 있다. 원칙대로라면 생명과학Ⅱ 응시자들은 항소심이나 상고심 등에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성적표를 못 받은 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2014학년도 세계지리 출제 오류 소송 때는 수험생들이 가처분 신청과 1심에서 패소하면서 평가원이 당초 발표한 정답에 따라 성적이 확정돼 입시 일정이 진행됐다. 하지만 수능이 끝난 지 1년여 만에 2심에서 결과가 뒤집히면서 1만8000여 명의 학생 성적이 정정된 바 있다.

입시업계에선 평가원이 하루라도 빨리 정답 정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임성호 대표는 “전원 정답 처리 결정을 하고 즉시 재채점에 나선다면 수험생과 대학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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