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명함은 그림이에요, 이번 대상은 소중한 명함이죠"

중앙일보

입력 2021.12.09 12:00

지난 6일 '제1회 중앙 회화대전: 2021, 새로운 시작' 시상식이 열렸다. 지난 9월 1일부터 10월 20일까지 동양화와 서양화 두 부문으로 나눠 작품을 공모해 총 206점이 최종 선정됐다.

올해 처음 열린 대회라 작가들에게 낯설었지만 미술 작가들의 예술성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기획한 점은 참가자들의 열기로 확인할 수 있었다.

대상은 ‘아름다운상상-희망’을 그린 최은정 작가에게 돌아갔다. 작품은 ‘상상 속 세계’를 그린 것으로 생동감 있는 질감이 돋보였다.

또한 이 작품은 올해 지천명이 된 무명 화가의 삶과 애환이 뒤섞인 결정체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출근 전 세 시간, 퇴근 후 잠자기 전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슬럼프도 사치라고 할 만큼 미술의 목마름을 채우는 데 24시간이 모자라다.

지난 7년 동안 날마다 작품과 씨름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 작가는 대상 수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시상식 후 작가와 인터뷰했다.

-수상 소감 부탁합니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아서 얼떨떨하기도 하고, 꿈인지 생시인지 기적 같기만 해요. 고마움과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 같아서 겁도 납니다.

-작품명대로 희망이 이뤄졌습니다. 대상 수상을 예상했습니까.

‘아름다운 상상-희망’은 공모전을 겨냥해서 그리지 않았어요.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개인전 주제가 ‘아름다운 상상’이에요. 이 작품은 ‘희망’ 시리즈 중 하나죠. 대상은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고, 작품을 포장하고 보내면서도 본선 진출만 해도 영광이니 “꼬맹아, 잘 다녀와라!”하고 보냈습니다.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이 작품은 제 ‘눈물’이며 ‘기도’입니다. 캔버스에 첫 붓 터치를 할 무렵 남편이 암 선고를 받았어요. 병원에선 절망적인 소식만 들려왔죠. 물감에 제 눈물이 많이 섞여 있을 거예요.

작품은 상반된 두 세계를 하나로 보이도록 묘사했습니다. 울창한 수풀은 현실 세계와 복잡한 내면세계를 표현했고, 몽환적인 바다와 해초들 사이를 유영하듯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희망을 상징하는 고래를 남편이 사랑하는 바다에 담아 행복해지려는 희망을 그렸습니다.

-기법이 무엇인가요.

어떤 분은 마띠에르(matière, 질감) 기법이냐고 물으시고 다른 분은 무얼 붙여서 그렸냐고 물으셨는데, 유화를 올리고 올려 완성했습니다.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지난 9월 2일에 시작해서 30일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어요. 하루에 평균 8~9시간 정도 그렸죠. 작업 과정은 여느 그림을 그릴 때와 유사한데, 물감을 여러 차례 떠서 정밀하게 묘사하는 형태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영감은 어디서 얻고,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무엇인가요.

동물 그림을 주로 그려서 관련 사진을 보고 영감을 많이 받아요. 보이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을 지향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똑같이 그리려고 해요.

-이번 대회 취지와 참가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명함은 그림이다’라는 명제를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 씁쓸해요. 소위 ‘보이지 않는 손’과 ‘관행’이 공모전 수상을 좌지우지하고, ‘명함’에 ‘그림’이 아니라 ‘다른 것’이 잔뜩 적혀 있는 현실이 안타깝죠.

‘중앙회화대전’은 그렇지 않았어요. 공모하면서 세 번 놀랐죠. 취지를 보고 이런 공모전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점에 처음 놀랐어요. 또한 작가 경력과 세부사항을 쓰지 않고 ‘작가명’과 ‘그림’만 보내면 된다는 점에 두 번 놀랐습니다. 심지어 작품 소개도 넣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저처럼 협회 회원이 아니거나 미술 비전공자는 쌍수 들고 환영할 만했죠. 심사위원분들을 작품 공모 후에 섭외해 투명성을 유지했다는 점에 세 번 놀랐습니다. 이 대회가 십 년, 이십 년 이상 가기를 바라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그리고 싶은 것을 신나게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작가는 “힘든 상황에 찾아온 행복하고 달콤한 꿈 같은 시간이었어요. 열두 시가 되면 ‘땡’하고 마법이 풀리겠지만 꿈은 다시 꾸면 되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라며 “캔버스 앞에 있는 모든 분이 행복했으면 합니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작가의 명함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벌써 기대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