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교차관 “직전 올림픽 주최국 역할 할 것”…中 “역시 한가족” 굳히기 들어가

중앙일보

입력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내년 2월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선수단만 참석하고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 여부와 관련해 "(한국은) 직전 주최국으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 관계자들이 잇따라 보이콧에 선을 긋는 듯한 발언을 하자 중국은 즉시 "한국은 한 가족답다"며 '굳히기'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뉴스1.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뉴스1.

외교차관, 보이콧 움직임에 "선수들 외롭겠다"

최 차관은 9일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여부와 관련해 "지금 되게 중요한 것이 (베이징 올림픽은) 평창, 동경 그리고 북경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릴레이 동계 올림픽이라는 것"이라며 "저희는 직전 주최국으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2018년에 평창(동계올림픽), 2021년에 도쿄(하계올림픽)에 이어지는 릴레이 올림픽으로 동북아와 세계 평화, 번영 및 남북관계에 기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 차관의 발언은 이를 재확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직전 주최국으로서의 역할"까지 강조한 것이다.

최 차관은 또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미국ㆍ영국ㆍ호주)와 여기에 캐나다ㆍ뉴질랜드를 추가한 정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회원국이 모두 베이징 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그러면 선수들은 참 외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농담조였지만 역시 보이콧에 거리를 두는 듯한 발언이었다.

이와 관련, 중국 내 인권 유린 현실과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한 타국의 보이콧 결정에 대해 외교 차관이 나서서 부정적 뉘앙스를 공개적으로 표하는 게 외교적으로 적절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 차관은 또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 동참하라는 압력이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저는 그걸 주로 신문을 통해 보고 있다"며 "백악관은 '각자의 국가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결정할 일'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에 설치된 올림픽 조형물. 연합뉴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에 설치된 올림픽 조형물. 연합뉴스.

고위 당국자, 잇따라 보이콧 거리 두기...中, 아전인수식 굳히기

앞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8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로서는 (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대표단을 보낼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도 했지만, 보이콧에는 선을 긋는 듯한 발언이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도 지난 7일 "정부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지해 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양국 우호협력 관계와 '올림픽 한 가족'다운 풍모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고 대표단을 파견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하려는 듯한 반응이었다.
중국이 이처럼 한국의 입장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현재 보이콧 여부를 고심하는 다른 국가들에게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보이콧 검토에 거리를 둘수록, 향후 보이콧 동참으로 입장 선회 시 중국이 반발할 여지도 그만큼 커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앞서 지난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당시에도 '신뢰 문제'를 내세우며 마치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

지난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

대표단 파견 시에는 한ㆍ미 동맹 약화 우려

그렇다고 한국이 보이콧에 불참한 채 고위급 대표단을 베이징에 보낼 경우 한ㆍ미 동맹에 여파가 불가피하다. 미국이 보이콧 근거로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유린을 콕 집어 제시한 건 사실상 인권 수호 등 가치를 중심으로 동맹을 규합하겠다는 메시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한국은 그간 중국 내 인권 유린 문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내는 걸 꺼려온 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보이콧을 선언한 올림픽에 힘을 실어줄 경우 '가치 외교'를 원칙으로 동맹과 힘을 모아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 딴지를 놓는 행보로 읽힐 수 있다. 앞서 지난 5월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양 정상이 인권과 법치 증진의 의지를 공유한다”고 규정하며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명확히 했다.

실제로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8일(현지시간) 미 국방전문 매체 디펜스원 주최 화상 대담에서 "미국은 1년 전보다 중국을 대응하는 데 있어 더 강력한 위치에 있다"며 그 요인 중 하나로 한ㆍ미ㆍ일 3국 협력 강화를 꼽았다. 한·미 및 미·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다.

이와 관련, 일본도 미·중 사이에서 한국만큼 난감한 입장이지만, 한국처럼 성급하게 보이콧에 거리두기를 하지는 않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월 도쿄 올림픽 준비가 코로나19로 여러 난관에 부딪치는 와중에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줬고, 지난달부터 중국은 일본을 향해 공개적으로 "신의를 지키라"며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7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국익 관점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하겠다"며 중국이 섣부른 기대감을 가질 여지를 줄였다. 같은 날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도 "현재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한편 대부분 국가가 이처럼 정부 대표단의 베이징 올림픽 파견 여부 자체를 저울질하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대통령의 참석 여부까지 검토되는 것도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당시 중국은 차기 주최국인데도 정부 대표단장으로 한정(韓正) 부총리를 보내고, 시 주석은 폐회식에 영상 메시지만 보냈다. 이보다 앞서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직접 시 주석을 올림픽에 초청했는데도 정상급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지난 7월 도쿄 여름 올림픽 때도 정부는 당초 문 대통령의 직접 참석을 유력하게 검토했지만, 대통령 방일이 한·일 간 갈등 사안 해소로 이어질 수 없다는 판단에 결국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개회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