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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왜 뒤늦게 ‘복자’ 추진되는 걸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15)

안중근 의사는 알려진 대로 종교적 믿음이 깊었다. 그는 세례명이 ‘도마’ 즉 토마스인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안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남긴 유묵 ‘천당지복영원지락(天堂之福永遠之樂)’이라는 글귀에 그의 신앙심이 잘 남아 있다.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소장 김효신)는 최근 ‘안중근과 가톨릭 신앙’이라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안중근을 이해하는 종교적 관점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중국 하얼빈역의 플랫폼 현장. [사진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중국 하얼빈역의 플랫폼 현장. [사진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살인 행위’=1909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한국 천주교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당시 조선교회 최고 책임자는 프랑스 출신 뮈텔 주교였다. 뮈텔은 ‘이토 히로부미 살해자가 천주교 신자’라는 통보에 처음에는 ‘결코 아님’으로 답했다. 그 뒤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로 드러나자 뮈텔은 안중근을 ‘살인 행위’로 단죄했다. 당시 조선 천주교 지도자들은 신유박해 등 오랜 박해 끝에 얻게 된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데 급급해 정치권력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활동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그래서 뮈텔 주교는 “안중근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공적인 표지를 보이지 않는 한 가톨릭교회의 자녀로서 성사를 받을 수 없다”고 천명했다.

◇런던타임즈 ‘안중근은 정치적 광분자’=당시 국내 언론 대부분은 일제의 탄압으로 의거를 사실 보도하는 데 그쳤다. 반면 런던타임즈는 “상당수 한국인이 암살을 접하고 환희하고 있다”는 비판 기사를 실으면서 안중근은 ‘정치적 광분자 중의 하나’라고 표현했다. 또 뉴욕타임즈는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국주의 국가는 제국주의 일본을 옹호하는 모양새였다. 반면 중국은 안중근 의사가 마치 자기들 원수를 대신해 갚은 것처럼 기뻐했다.

안중근 의사의 뤼순 감옥 옥중 모습. [자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 의사의 뤼순 감옥 옥중 모습. [자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1993년 김수환 추기경 ‘정당방위이자 의거’=한국 천주교의 안 의사 평가는 1979년부터 달라진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79년 명동성당에서 안 의사 탄생 100주년 기념미사를 열고 1986년에는 순국 76주년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은 마침내 안중근 의사의 첫 공식 추모미사를 집전한다. 그 강론에서 김 추기경은 안중근 의사를 사실상 복권한다. 김 추기경은 “일제 치하 교회가 안 의사 의거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여러 잘못을 범한 것에 대해 연대 책임을 느낀다”며 “의거는 일제의 무력 침략 앞에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행위였으므로 정당방위이며 의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일제 치하 한국 천주교의 과오를 사과하고 바로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도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국가의 공동선을 극도로 해칠 때는 혁명과 무력 저항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교정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 [사진 대구가톨릭대]

대구가톨릭대 교정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 [사진 대구가톨릭대]

장병일 가톨릭신문 편집국장은 “이런 복권 발언과 교회법을 근거로 안중근 의사는 완전히 복권되었다”면서도 “신앙적으로 비폭력이라는 예수님 가르침을 위반한 ‘죄인’이라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덧붙인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천주교는 빠져 있다. 그래서 일부에선 제국주의 출신 주교가 일제에 점령당한 약소국의 독립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한국 천주교는 서울대교구가 2010년부터 안 의사의 ‘시복(諡福)’을 추진하고 있다. 로마 교황청이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에게 내리는 ‘복자’ 칭호를 받는 일이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시복을 추진하는 정신이다. 안중근 의사가 죄인이 아닌 평화의 수호자로 거듭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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