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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만에 온라인 통제"…펑솨이 침묵시킨 中 소름돋는 수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0일 신변 이상설이 있던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무사함을 보여주기 위해 환구시보 후시진 주필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동영상. 영상에 등장한 남성은 날짜를 이야기하며 최근 찍은 영상임을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신변 이상설이 있던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무사함을 보여주기 위해 환구시보 후시진 주필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동영상. 영상에 등장한 남성은 날짜를 이야기하며 최근 찍은 영상임을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고위 관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테니스 스타 펑솨이와 관련된 국내외 여론을 중국 정부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하려 했는지에 대한 정황이 드러났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탐사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와 공동 작업을 통해 펑솨이의 폭로 이후 온라인상의 변화와 관영방송의 움직임 등을 분석해 보도했다.

펑솨이는 지난달 2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중국 최고 지도부 일원이던 장가오리 전 부총리와 몇 년에 걸쳐 강압에 의한 성관계를 했다고 밝혔고 이후 행방이 묘연해지며 신변의 우려가 제기됐다.

NYT는 처음 펑솨이의 폭로가 나온 뒤, 중국 정부가 온라인상의 검열을 마치는 데 20분이면 충분했다고 봤다. 가장 먼저 펑솨이의 웨이보 글을 삭제한 검열단은 관련 주장을 언급하는 다른 글도 모두 지웠다.

이후 범위를 넓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도 '테니스'를 포함한 키워드 수백 개를 금지어로 지정해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당시 웨이보 테니스 포럼에는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일시적으로 금지된다"는 경고문이 붙기도 했다.

펑솨이의 소셜미디어 계정 자체를 없애진 않았지만, 검색으로 찾을 수는 없게 했다. 그리고 과거에 게재된 펑솨이 관련 기사는 댓글 창을 없애버렸다. 기사 댓글을 통해 논란이 확산하는 것도 원천 차단한 것이다.

미 UC버클리의 샤오치앙 연구원은 "중국 정부에 맞섰던 다른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지식인들은 계정을 삭제했지만, 펑솨이의 경우 이미 상당히 관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존재를 단순히 지워버리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다음 단계는 관영 매체를 통해 여론을 돌리는 일이었다. 여자프로테니스협회(WTA)뿐 아니라 오사카 나오미, 노박 조코비치 등 세계 정상급 테니스 선수들까지 #펑솨이는어디있나(#WhereIsPengShuai)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신변을 걱정하던 상황이었다.

지난달 펑솨이의 신변 이상설이 제기된 뒤 한 중국 관영매체 기자가 펑솨이의 최근 모습이라며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펑솨이의 신변 이상설이 제기된 뒤 한 중국 관영매체 기자가 펑솨이의 최근 모습이라며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자 관영방송 CGTN이 펑솨이에게서 받았다는 이메일을 공개했다. 성폭행 폭로 내용을 부인하며 자신을 내버려 두라는 내용이었지만 오히려 조작 의혹만 커졌다.

또 다른 CGTN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펑솨이가 방에서 인형들과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있다며 사진을 올렸는데, 역시 언제, 어디서, 누가 찍은 사진인지 분명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의 후시진 주필까지 나섰다. 자신의 트위터에 펑솨이가 한 테니스 행사에 참석한 모습과 베이징의 식당에서 일행과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렸다. 이 영상에 나온 남성은 펑솨이의 현재 모습임을 강조하려는 듯 대화 중 일부러 날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본대로 만든 영상이라는 의혹이 다시 제기됐다.

이를 두고 뉴욕을 기반으로 한 중국어 매체 미러 미디어 그룹의 핀호 대표는 "머리를 땅에 파묻고 대응하는 격"이라며 "납치범에게 잡혀 있는 누군가를 자유롭다고 말한다면 더 무서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과정에서 가짜 트위터 계정도 적극적으로 동원됐다. NYT와 프로퍼블리카는후시진 주필과 중국 관영 매체의 평솨이 관련 글을 리트윗하거나 홍보한 트위터 계정을 분석한 결과, 97개의 가짜 계정이 확인됐다고 했다. 다른 계정은 팔로우하지 않으면서 오직 '현재 펑솨이가 괜찮다'는 메시지만 퍼 나르고 있는 계정이었다.

지난달 생성된 Flora25507875의 경우, 후 주필이 올린 동영상과 함께 "테니스 선수인 펑솨이가 스포츠 행사에 참석한 게 뭐가 이상하냐"고 적었고, 한 백인 남성의 프로필사진을 쓴 EdwinCh24913901 계정은 "펑솨이 사건에 대한 과장을 멈추고 평화롭게 살도록 내버려 둬라"라는 글을 올렸다.

분석 결과 이런 계정들은 절반 이상이 생성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또 베이징 시간으로 오전 8시~오후 7시 사이에 주로 글이 올라오다가 점심시간에는 소강상태를 보였는데, 중국이 여론 관련한 작업을 할 때 흔히 보이는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후 주필은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NYT에 자신의 게시물이 봇 같은 계정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오히려 놀랐다고 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펑솨이 사태와 관련한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중국 정부가 그동안 마련한 플레이북(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코로나19 사태 등 최근 몇년 동안 이런 전술을 통해 국내 정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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