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지영의 문화난장

‘로봇 찌빠’ 신문수의 마지막 그림

중앙일보

입력 2021.12.0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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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지영 문화팀장

이지영 문화팀장

만화가 신문수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를 듣고 불현듯 찌빠와의 추억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1970~80년대 유년기를 보낸 한국인에게 그가 창조해낸  ‘로봇 찌빠’와 ‘도깨비 감투’ ‘원시소년 똘비’ 등은 시간과 꿈을 공유한 고향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의 장례식 다음 날인 지난 3일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을 찾아갔다. 아련한 기억 속 찌빠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였다. 1978년부터 소년중앙에 연재됐던 ‘로봇 찌빠’는 2001년 단행본으로 복간됐지만 현재 절판 상태다. 진흥원의 만화도서관에서도 일반 서고가 아닌 보존실에 보관돼있어 사전 신청을 해야 볼 수 있다. 복간 당시 선생은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만화의 소재란 게 단순히 낄낄거리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만화가의 역할”이라고 했다.

1970년대 우주여행까지
명랑만화로 상상력 자극
타계 99일 전 그림 남겨
웹툰전성기 디딤돌 상징
지난 8월 작업실에서 황금펜촉상 수상 소감을 밝히는 신문수 선생. [사진 웹툰협회]

지난 8월 작업실에서 황금펜촉상 수상 소감을 밝히는 신문수 선생. [사진 웹툰협회]

선생의 소신대로 찌빠는 어린 독자들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줬다.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 타본 사람도 드문 시절이었다. 하지만 찌빠는 직접 하늘을 날아 제주도도 가고 미국도 가고 우주여행까지 했다. 북극에 가선 얼음을 톱으로 썰어 얼음집을 만들었고,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보물을 찾으러 온 탐색대도 만났다. 찌빠의 모험에 동행하면서 동네 골목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아이들의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확장됐다.

찌빠를 따라 그리며 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1세대 웹툰 ‘위대한 캣츠비’의 강도하(52) 작가는 “당시 만화는 아이들에게 최대 오락거리이자 일탈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일탈’의 의미는 “아이들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하고 꿈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일탈”이다. 그는 찌빠가 “초현실적인 로봇이 아니라 친구처럼 일상을 같이 보내며 우리에게 근접 가능한 상상력을 선물해줬다”는 점도 높이 샀다.

실제 찌빠는 연탄가스 중독도 겪었고, 송유관이 터진 것을 보며 “석유 한 방울이 금싸라기 같은 판국에 유전을 발견한 것”이라고 흥분하는 등 당시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줬다. 이렇게 탄탄한 현실성을 토대로 펼치는 상상력은 이후 세계 문화계를 뒤흔든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도 두드러진 우리 문화콘텐트의 DNA가 됐다.

신문수 선생이 지난 8월 23일 그린 마지막 그림. [사진 웹툰협회]

신문수 선생이 지난 8월 23일 그린 마지막 그림. [사진 웹툰협회]

선생은 명랑만화의 대명사였다. ‘꺼벙이’ 길창덕(1930~2010) 선생이 터를 닦은 명랑만화의 세계에서 선생은 ‘맹꽁이 서당’ 윤승운(78), ‘머털도사’ 이두호(78), ‘고인돌’ 박수동(80), ‘심술통’ 이정문(80) 등과 함께 전성기를 이끌었다. “웃을 일 많지 않고 척박하던 시기 사람들에게 비비 꼬거나 젠체하지 않고 명쾌한 웃음을 전달”(서찬휘 만화평론가)한 공이 크다.

선생의 명랑만화 시대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이현세류의 성인 극화체 만화가 유행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90년대 만화잡지 시대가 지나갔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된 2000년대 들어 바야흐로 웹툰의 시대가 열렸다.

지난 8월 선생은 웹툰협회가 주는 황금펜촉상을 받았다. 한국 만화계의 황금기를 이끌며 웹툰 역사의 뿌리를 다진 공을 인정받아서였다. 신장암 투병 중이었던 선생은 수상 소감을 영상으로 전했다. 촬영은 8월 23일 진행됐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무더위가 한풀 꺾인 날이었다. 경기도 분당 작업실에서 찌빠 모형 앞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는 선생의 눈은 여전히 동심의 빛으로 초롱초롱했다.

그날 선생은 작업실에서 웹툰협회 창립 5주년을 축하하는 그림을 그렸다. 수채화용 8절지에 붓펜으로 ‘로봇 찌빠’의 찌빠와 탱구·촉새, ‘도깨비 감투’의 혁이 등 네 캐릭터를 그려넣고 축하 메시지를 적었다. 서명은 ‘로봇 찌빠 도깨비감투 신문수’라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입원 수속을 밟았고, 꼭 99일 뒤 타계했다. 마지막 힘을 다해 그린 유작은 웹툰협회에 남아있다. 만화에서 웹툰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극적인 마무리였다.

이제 웹툰은 확장성이 무궁무진한 문화콘텐트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TV 드라마 ‘미생’ ‘이태원 클라쓰’ ‘나빌레라’, 영화 ‘신과 함께’ ‘내부자들’ 등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세계 팬들을 매료시킨 ‘지옥’ ‘스위트홈’ 등이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웹툰이 K컬처 열풍의 핵으로 성장하기까지, 선생이 자극해놓은 상상력·창의력의 몫이 크다. 선생은 마지막으로 남긴 영상에서 “웹툰이 곧 만화”라며 “앞으로도 더 열심히 좋은 만화 많이 그리라”고 후배 작가들에게 당부했다. 부디 영면을 빈다.

모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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