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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명의 파시오네

이름만 남은 예술의전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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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교육문화포럼과 예술인연대 주관으로 2030 청년예술인 일자리 포럼이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후원으로 열린 이 날 포럼에는 최강욱·김승원 의원과 해당 주무처 공무원, 그리고 예술위 위원 등 여러 관계자와 청년예술인이 참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청년실업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1년에 예술대학을 졸업하는 1만여 청년예술인 중 10%를 밑도는 이들만이 취업에 성공한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청년예술인의 취업은 여전히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 공연단체 대관사업에 주력
정규직 중 예술직은 실종 상태
전국 255개 문예회관 상황 비슷
예술전문직 채용을 법제화해야

포럼에 참석한 예술위 측 자료에 따르면 예술위가 실시하고 있는 문예회관 연수단원 사업의 경우 지난 4년간 연수단원 876명 중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는 13%에 그쳤다. 그리고 전체 인원의 31.5%에 해당하는 청년예술인들은 문화예술계를 떠나 아예 다른 일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연수단원 사업은 어느 정도의 만족도는 있을 수 있으나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여도는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우리나라에는 현재 약 255개의 문예회관이 있다(연합회 등록단체 기준). 이날 포럼에서 문체부 측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문예회관의 프로그램 가동률은 38%로 매우 낮게 조사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기획인력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정부는 문예회관을 지을 때 지역 인프라 확충에만 중점을 두었고, 전문인력 채용은 극장 운영을 맡은 지자체의 역할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국가기관인 국립극장은 제작극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예술의전당은 공연·전시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프리젠터(presenter) 극장이라고 표현했다.

예술 행위자는 공연을 위해 대관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술의전당은 국가에서 예술가들에게 돈을 받고 장소를 빌려주고, 관객들에게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이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예술의전당 정규직 380여명 가운데 예술직은 단 한자리도 없다.

그렇다면 예술의전당의 주요 고객은 대관비를 내는 예술인일까, 아니면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일까. 필자는 순간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을 대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세계 음악계가 아직 라 스칼라에 열광하는 것은 장소의 역사적 상징성을 지탱하는 콘텐트의 힘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은 콘텐트를 기획할 수 있는 전문인력으로부터 나온다.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낙하산 인사와 그 분야의 전문인력이 빠진 운영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문화예술계가 겪고 있는 어려운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문예회관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관객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동의 결실을 볼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민간예술단체가 대부분의 공연예술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면, 공공극장은 이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협업하며 예술인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공연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현재의 공연법상 문화예술 전문인의 영역은 시설 관리에 해당하는 기술직 분야에 한정된다. 즉 무대감독, 음향, 조명 등 기술직만 의무 채용 대상이다. 공연장의 공연예술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공연 예술인에 대한 육성과 지원 부분이 포함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법이 규정한 전문인력은 무대기술 인력이므로 콘텐트를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핵심인력인 공연예술 전문인력은 빠져있다.

이에 대한 개선책이 절실하다. 기술직에 한정된 전문인력 범위를 예술기획 전문인력으로까지 확대 채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문예회관이 예술감독 중심의 제작극장 시스템을 도입해 프로덕션형 공연을 주도하는 플랫폼이 된다면, 지역문화 활성화는 물론 예술인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청년들이 각자 전공분야를 살려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복지 사회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는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과제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그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인을 문예회관에 필요한 전문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현행 공연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하며, 정부는 일시적 지원이 아닌 지속가능한 정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