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 달린 미·러 정상…"우크라 사태 따라 가스관 폐쇄도 불사"

중앙일보

입력 2021.12.08 17:02

업데이트 2021.12.08 17:11

조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초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직통 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2 폐쇄 카드로 러시아를 압박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위기의 책임을 러시아에 떠넘기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두 정상의 만남은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대면 정상회담을 한 뒤 6개월 만이다.

양국 정상은 화상으로 이뤄진 121분간의 정상회담 내내 일촉즉발인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공방을 이어갔다. 비공개 회담과 관련, 백악관은 “명확하고 직접적이며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고 표현했고, 뉴욕타임스(NYT)는 “냉전의 동·서 정치로 되돌아간 느낌”이라고 전했다.

제이크 설리반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회담 직후 언론 브리핑에서 “두 정상의 논의는 직접적이고 직선적이었다. 많은 의견 교환이 있었고 거절(finger-wagging)은 없었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이 지속될 경우 강력한 경제 제재와 기타 조치로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전달했고,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에 대한 지지를 재차 강조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소치의 대통령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소치의 대통령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크림반도 때보다 강력한 제재 준비됐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2014년에 하지 않았던 일을 지금은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2014년은 러시아가 당시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해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달러결제 차단 등 경제 제재 외에도 군사적 대치까지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설리반 보좌관은 “러시아가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이미 제공한 것을 뛰어넘는 무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완공 후 개통만 남은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2에 대한 운영 제재 조치도 시사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를 출발해 발트해 해저를 거쳐 독일로 직접 연결되는 총길이 1225㎞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다. 정상 가동되면 러시아의 막대한 수입을 안겨주게 된다.

독일의 도로표지판. 노르트스트림2 가스라인이 지나가는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의 도로표지판. 노르트스트림2 가스라인이 지나가는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설리번 보좌관은 “서방은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며 “러시아는 노르트스트림2를 통해 가스가 통과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행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노르트스트림2 사업 초기부터 반대하다 지난 7월 유럽과의 결속 강화 차원에서 완공에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자국을 지나는 노르트스트림1을 새 가스관이 대체할 경우 안보상의 억지력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노르트스트림2는 지난 9월 완공됐지만 독일에서 법규상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해 최종 승인이 보류된 상태다. 노르트스트림2 가동이 시작되면 연간 550억㎥의 천연가스가 유럽으로 수송된다. 유럽 천연가스 총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노르트스트림2 폐쇄에 나서면, 러시아의 막대한 수입원을 차단함과 동시에 에너지 자원을 앞세워 유럽을 길들이려는 러시아의 시도를 동시에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설리번 보좌관은 “백악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퇴임할) 메르켈 정부는 물론 (취임할) 올라프 숄츠 정부와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FT는 익명의 서방 외교관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과 독일이 노르트스트림2에 대해 매우 깊고 구체적인 대화를 나눴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이 있을 경우, 이 파이프라인은 유지될 수 없다는 데 궁극적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유럽과 함께 러시아 주요 기업들의 국제 금융시장 접근 차단, 러시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글로벌 결제 시스템 접근 차단 등 강력한 금융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푸틴 대통령의 셈법을 바꾸기 위해 러시아로 가는 돈줄을 모조리 차단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러시아 레닌그라드 지역의 노르트스트림2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가스관을 잇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레닌그라드 지역의 노르트스트림2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가스관을 잇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문제는 나토, 러시아에 책임 전가 마라" 

푸틴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것은 오히려 나토”라면서 “정세 악화에 대한 책임을 러시아로 떠넘기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편입하려고 시도 중이고, 러시아 국경 인근에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면서 “나토의 동진(東進) 금지, 러시아 인접 국가에 대한 공격적인 타격 무기 시스템 배치 제외 등의 내용을 담은 신뢰할 수 있고 법률적으로 명시된 보장을 받고 싶다”는 뜻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설리반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양 정상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각국 담당자들에게 집중논의 한 뒤 후속 조치를 하도록 지시했다.

회담 직후 푸틴 대통령의 외교담당 보좌관인 유리 우샤코프는 기자회견에서 “제재는 러시아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며, 러시아군은 러시아의 영토에서 누구도 위협하지 않는 상태”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경고를 이행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우샤코프 대변인은 또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 정상의 회담 도중에는 노르트스트림2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 진전 없었다"

이에 대해 미국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이 크렘린궁을 충분히 방어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화당 소속의 최고상원의원인 제임스 M. 인호프는 “이 무모한 행동에 대해 러시아를 제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충분치 않다”며 “우크라이나에 대공·대전차 및 대포 무기를 보내야 한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근처에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합동 전략 훈련장 위로 화염이 치솟는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근처에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합동 전략 훈련장 위로 화염이 치솟는 모습. 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상회담에서 명확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양국간 협상을 낮은 수준의 추가 회담에서 이어가기로 했다”면서 “우크라이나 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NYT 역시 “이번 회담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위기를 완화하는데 성공했는지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여전히 미결정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러시아 정상회담 현안 입장 차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러시아 정상회담 현안 입장 차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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