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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손질 급한데, 보완입법 0건…밀어붙이던 與의 무관심

중앙일보

입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이후 입법 미비에 따른 혼란은 커지고 있지만 정작 공수처법을 범여(汎與) 단독으로 통과시킨 국회는 여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공수처 연내 출범이란 목표 아래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서 야당의 비토(veto·거부)권을 없애는 방식으로 여당에 유리하게 한 차례 개정한 것을 제외하면 공수처 도입의 시행착오에 따른 보완 입법은 전무했다. 공수처 출범을 주도한 여당이 보완 입법은 제쳐 두고 야당 대선 후보인 윤석열 후보 관련 신속 수사만 압박하고 있어 “폐지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검증특위 민병덕(왼쪽부터)·김용민·박주민·전용기 의원이 지난달 25일 정부과천청사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앞에서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공수처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항의 방문과 추가 고발장 접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검증특위 민병덕(왼쪽부터)·김용민·박주민·전용기 의원이 지난달 25일 정부과천청사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앞에서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공수처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항의 방문과 추가 고발장 접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여야 의원이 각각 발의해 계류 중인 공수처법 개정안은 총 17건이다. 공수처 출범(지난 1월 21일)에 앞서 제출된 개정안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성범죄도 공수처 수사 범위에 포함하자”며 대표발의한 법안 1건이다. 이 법안은 비슷한 시기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공수처 출범 발목잡기”라며 추진한 야당 몫 공수처장 후보 추천권 축소와 공수처 검사 자격요건 완화 법안에 묻혀 소위에 상정만 됐을 뿐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공수처 출범 뒤 제출된 법안 16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9건은 법사위에 상정, 소위에는 회부됐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나머지 7건은 법사위에 회부됐을 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한 법조계 인사는 “공수처 탄생부터가 제1야당을 배제한 채 합의 없이 이뤄지면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해 논의 시작부터가 힘든 구조 탓”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지난 6일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지난 6일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당장 지난 예산 심의 때부터 구속 피고인·피의자가 법원에 무죄 판결을 받거나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을 때 청구할 수 있는 형사보상금 지급 제도를 두고 현행 형사보상법이 ‘검찰청’만을 규정하고 있는 점이 문제가 됐다. 형사보상법과 공수처법 모두 공수처의 형사보상금 청구·지급의 근거가 없는데도 공수처가 관련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송기헌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공수처가 형사보상금 지급에 관해 형사보상법 내 ‘검찰청’을 ‘공수처’로 보고 준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수처 정원 85명(검사 25명, 수사관 40명, 행정직원 20명)이 수천건의 고소·고발·진정 사건 수사와 공소제기·유지, 행정 처리 등을 감당하기엔 부족하다는 문제는 출범 직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는데도 아무런 해결 노력이 없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수사관 정원을 50명, 행정직원을 40명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내놓은 데 이어 송기헌 의원도 지난 7월 행정직원을 60명으로 증원하자는 법안을 낸 게 전부다. 그 사이 공수처는 수사인력 40명(경찰만 34명), 행정인력 10명을 파견받았다. 이에 경찰 편중 현상으로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법사위 예산심사 검토보고서).

법원에서 일단 검찰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공수처가 독자적으로 기소권을 가진 판·검사 및 경무관 이상 경찰관 사건을 검찰에 이첩할 때 “수사 후 송치하라”는 취지의 ‘공소권 유보부(조건부) 이첩’이 가능한지를 두고도 국회는 논의를 미루고 있다. 이미 민주당에선 조건부 이첩을 명문화하자는 개정안(이수진 의원)을, 국민의힘에선 조건부 이첩을 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자는 개정안(유상범 의원)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굳이 사법부나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할 필요 없이 국회에서 이해 당사자인 검찰·공수처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입법 정책으로 풀 수 있단 뜻이다.

국회 계류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주요 개정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국회 계류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주요 개정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인지하거나 검사의 혐의를 발견했을 때 즉시 공수처에 통보 또는 이첩해야 한다는 규정(법 24, 25조) 역시 검·공 논쟁의 단골 소재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월 발의한 개정안을 통해 ‘통보 의무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일각에선 통보·이첩 의무조항에 대한 벌칙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25조상 ‘혐의 발견’의 경우 검찰은 “혐의란 건 수사를 어느 정도 진행해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신설기관인 공수처가 전문성·책임성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공수처법 27, 28조는 공수처가 불기소 결정을 할 때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관련 범죄(고위공직자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로 고위공직자가 범한 죄)는 대검찰청에 이첩하도록 하고, 공수처가 기소한 사건의 형 집행 역시 검찰청 검사가 대신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사실상 공수처 수사 종결권을 검찰이 갖도록 해 공수처가 본연의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기존 기관과 갈등 가능성이 상존하도록 설계된 부분은 신속히 손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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