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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자사고 폐지는 지역균형발전에 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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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도입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체제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면서 도입한 정책이다. 전국의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6개 고교를 최초 지정했다. 극소수 학교였기 때문에 일반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조기 유학이 확대되고 교실 붕괴가 화두였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 처방으로 여겨졌다.

지금의 자사고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줄임말이다. 명칭만큼 정책 혼란을 초래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유산이다. 자율형 사립고 정책을 시행하면서 ‘자사고’라고 부르고, 자립형 사립고도 간판을 바꾸게 했다. 자사고에서 그 전 정부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였다. 사정도 고려하지 않고 전국 100개 학교를 지정하겠다는 공약을 무리하게 시행하는 바람에 일반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거기에 마이스터 고등학교 정책 등이 더해지면서 일반고 부실화를 초래했다.

정부기관은 지방 이전 하면서
비수도권 명문 자사고는 왜 없애나

이때 자격이 안 되는 자율형 사립고가 대거 늘어나자 이후 교육감들은 지정 취소에 집착했다. 재정적인 이유로 스스로 지정 취소를 신청하는 학교도 여럿 나왔다. 마이스터고교와 전문계고교, 인구감소 등 일반고에 미치는 다른 부정적 영향에는 눈을 감고 일반고 위기의 이유를 자사고와 외국어고로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2023년 시행 예정인 고교학점제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도 더해졌다.

지금 남아있는 전국 단위 선발 자사고는 주로 김대중 정부 시절에 지정된 자립형 사립고다. 대부분이 비수도권의 광역시가 아닌 도 단위에 있다. 역사가 20년 가까이 된 학교들이거나 공장 노동자 자녀들이 주로 다녀 그 지역에 이미 깊이 뿌리내린 학교들이다.

지금보다 대도시와 지방의 격차가 훨씬 작았을 때인 1970~80년대에도 대도시와 그 이외 지방의 격차를 고려해 정책을 설계했다. 고교평준화(공식명칭은 근거리 학교 배정)는 유신 시절에 단행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를 갓 넘었을 때로 약 50년 전 일이다. 서울과 부산부터 먼저 시작했다. 교통수단이나 도보로 등하교가 가능한 근거리 학교 배정의 사회기반시설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대신 중소도시는 비평준화 지역으로 남겨 서울 및 대도시 고교에 진학하지 않는 정도의 사회디자인을 해둔 것이다. 소위 시골의 수재들은 집을 떠나서 대도시가 아닌 비수도권의 가까운 중소도시 소재 명문 고교로 진학하면 됐다. 김대중 대통령도 능력에 따라 교육받도록 하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었지만, 수도권에는 지정하지 않았다. 지방을 배려하는 정책이었다.

전국에 있는 자사고와 외고를 모든 지역에서 한꺼번에 없애는 것은 그동안 각 학교가 들여온 교육적 노력은 물론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에도 역행한다. 고교학점제 시행에 걸림돌이 되더라도, 대다수 교육감이 일반고가 아닌 학교에 대해 철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꺼번에 전국의 자사고를 폐지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각 지역 특성에 맞게 결정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정신이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별을 극복하는 것이 중앙정부의 임무 아닌가.

최소한 수도권 외부에는 자사고와 외국어고를 허용해야 한다. 서울에 있는 정부기관과 공기업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판에 지역에 있는 자사고 폐지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민족사관학교가 없는 강원도 횡성, 상산고가 없는 전북 전주, 김천고 없는 경북 김천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오히려 수도권과 대도시 대신에 원하는 외고나 자사고의 지방이전도 고려해보는 것이 학교도 살리고 지방도 살리는 길일 것이다. 일부러 전국 각지에 혁신도시를 계획하고 만들면서 수도권 학생들의 자발적 지방 이전을 막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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