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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항모, 4대 강 보 개방 등 곳곳에 ‘예산 대못’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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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 “다음 정부 첫 예산”이라더니

현 정부 역점 사업 고수 … 예산 9% 늘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과 방역 의료 예산을 대폭 보강할 수 있게 됐고, 국채 발행 규모를 축소해 재정 건전성도 개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말만 들으면 나랏빚이 줄었나 싶겠지만, 실상은 영 다르다.

새해 예산은 올해보다 8.9%(49조7000억원) 늘어난 607조원 규모다. 국회에서 오히려 3조3000억원 증액했다. 국가채무도 올해보다 108조4000억원 늘어난 1064조4000억원이 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보다 예산은 52%(207조원), 국가채무는 61%(404조2000억원)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같은 기간 36%에서 50%로 올랐다. 이런 걸 두고 ‘재정 건전성 개선’이라고 주장할 순 없는 것이다. 5개월 후 들어설 차기 정부의 재정 운용엔 엄청난 부담을 안겼다.

문 대통령이 “내년 예산안이 원만하게 통과돼 다행”이라고 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일방 처리했는데 경항공모함 예산 때문이었다. 국회 국방위에선 72억원을 5억원으로 삭감했다. 경항모의 필요성과 시급성이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청와대의 강한 요구에 민주당이 막판에 되살렸고, 국민의힘이 반발하면서 파행 처리됐다. 대형 방위사업은 한 정권만의 결정으론 진행될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곡절을 겪으며 도입되고 있는 F-35 전투기가 그 예다. 청와대가 끝내 밀어붙여야 했나 의문이다.

4대 강의 보(洑) 해체 또는 개방을 위한 예산도 논란을 낳고 있다. 금강·영산강에 이어 내년부터 한강·낙동강까지 추가해 9000억원 규모의 취수·양수장 이전 사업을 시작한다는데 내년도 예산은 800억원에 그친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고도 3~5년간 8000억원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다. 환경부에선 “하천 수위가 저하되는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문 대통령의 공약(보 철거) 이행을 위해 보를 개방한 이후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차기 정부의 재평가가 있을 수 있는 사안에 돈부터 넣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문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한국판 뉴딜 사업도 운명을 알기 어렵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초·중·고교 건물을 개축·리모델링하는 ‘그린 스마트 스쿨 조성’ 사업(-1757억원), ‘스마트 하수도 관리체계 구축’ 사업(-452억원) 정도가 삭감된 듯한데,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도 의구심을 표시했던 사업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예산은 우리 정부의 마지막 예산이면서 다음 정부가 사용해야 할 첫 예산”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곳곳에서 발견하는 ‘문재인표 예산 대못’을 보면서 과연 차기 정부를 배려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