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한·중 톱기사에 4연승, 이야마 유타의 이변

중앙일보

입력 2021.12.08 00:03

지면보기

경제 07면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바둑은 이변이 가장 적은 게임에 속한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이상한 일이 연속 벌어졌다. 먼저 일본의 최강자 이야마 유타(32) 9단이 한·중·일 국가대항전 농심신라면배에서 4연승을 거둔 일. 톱기사들이 5명씩 출전하는 이 대회에서 일본은 1승도 쉽지 않았다. 일본은 일찌감치 전원 탈락하고 한중전이 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일본의 3번째 주자로 나선 이야마는 중국 6위 판팅위 9단과의 첫 대국에서 역전승하더니 한국 3위 변상일 9단, 중국 8위 리웨이칭, 한국 6위 신민준 9단을 잇달아 꺾었다. 한 번의 이변이라 치부하기엔 엄청난 일이다. 이제 일본은 3명, 중국은 2명, 한국은 신진서 1명만 남았다.

이야마는 15세 때 첫 우승 이후 수많은 최연소 기록을 썼고, 무려 66개의 우승컵을 따냈다. 기성-명인-본인방 3대 타이틀을 혼자 차지하는 소위 ‘대삼관’을 3번이나 해냈다(조치훈 9단은 2번). 상금도 많이 벌었다. 상금랭킹을 매긴다면 이야마가 거의 매년 1위일 것이다.

하나 세계무대만 나서면 작아졌다. 메이저 세계대회서는 단칼, 또는 두 칼에 탈락했다. 8년 전 아시아TV속기전에서 한번 우승했으나 이야마 유타라는 존재는 일본바둑과 세계바둑의 격차를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비공식이지만 세계랭킹에서 항시 30위권을 웃돌았다.

이야마는 30을 넘기면서 일본 내에서도 쫓기기 시작했다. 빅3 타이틀은 지금도 그의 차지이지만 군소타이틀은 20대 젊은 강자들에 넘어갔다. 한데 바로 이 시점에서 이야마의 농심배 4연승이 등장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깜짝 놀랄 일을 만들어냈을까.

AI가 주인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통의 일본바둑을 고집하며 ‘쇄국’을 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만 일본바둑이 AI를 만나 우물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마도 천재니까 뒤늦게나마 그걸 포착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은 김진휘 5단 얘기. 그는 ‘수려한 합천’팀의 4지명으로 6년 만에 KB바둑리그에 복귀했다. 일반 팬에겐 거의 무명에 가까워서 올해의 전망에서도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한데 ‘정관장 천녹’의 주장 이동훈 9단, ‘한국물가정보’의 2지명 이영구 9단, ‘KIXX’의 4지명 김승재 9단을 연파했다. 바둑리그 초기에 눈에 확 띄는 이변이었다. 김진휘는 ‘괴짜 바둑’이란 낙네임, “수는 기막히게 잘 내지만 형세에 어둡다”(장수영 9단)는 평가가 말해주듯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재목이었다.

한데 온종일 AI를 끼고 살면서 그는 변하고 있다. 형세 판단은 AI 전문이다. 수읽기가 탁월하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을 말해준다. 이 두 가지가 만나 근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오유진 9단과 한승주 9단도 놀라운 일을 해냈다. 두 기사는 전부터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여자바둑의 2인자 오유진은 ‘최정’이란 강력한 벽에 부딪혀 오래 정체돼 있었다. 한승주는 어린 시절 제대로 된 바둑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하다 때를 약간 놓친 아쉬움이 있었고 정상권 진입이 막힌 채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오유진이 최근 여자국수전 결승에서 최정을 2대0으로 완파했다(최정은 이 패배 직후 숙적인 중국의 위즈윙을 격파하고 오청원배 세계대회서 우승했다).

또 한승주는 대통령배 결승에서 한국 5위 김지석 9단을 꺾고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철벽 앞에 서 있던 이들을 벽 너머로 인도한 것은 무엇일까. 역시 AI라고 나는 생각한다. AI는 제아무리 강한 기사도 두 점을 접어준다. 그렇게 강한 선생과 씨름하면 인간 강자에 대한 두려움도, 철벽도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겨난다. 앞으로도 바둑 지형은 AI와 더불어 많이 변할 것이다. 동시에 AI는 재능은 있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힌 수많은 바둑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