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남편 두고 불륜 저지른 아내…'진흙탕 싸움' 반전 결말 [더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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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29)

A남과 B녀는 1996년 결혼해 혼인신고를 마쳤고,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었다. A는 2012년부터 아버지인 C가 설립한 회사의 주식 과반수를 C로부터 증여받고 대표이사로 근무하였다. 그런데 A가 2013년경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현재까지 의식불명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B는 A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자, C와 함께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A로부터 자신이 위 회사의 주식을 증여받는 내용의 주식 양도양수계약서를 작성하고 주식 명의개서를 한 뒤 위 회사의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

한편 B는 2014년경 부산에 있는 한 모텔에서 위 회사의 남자 직원과 함께 투숙하였다가 A의 동생에게 발각되었다. B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C는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먼저 가정법원에 A에 대한 성년후견개시 청구를 해 A의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되었다. 그 후 C는 성년후견인으로서 A를 대리해 B를 상대로 B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아울러 C는 A가 당시 식물인간이어서 B에게 회사 주식을 증여한 것과 대표이사로 B가 선임된 것에 문제가 있다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또 C는 B를 간통, 사문서위조, 업무상횡령 등의 죄목으로 고소하였고, 이에 맞서 B도 C를 상대로 사문서위조, 폭행, 모욕 등의 범죄사실로 고소하는 등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이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피후견인이 식물인간 상태라 이혼하겠다는 생각을 직접 표현할 수 없어도, 다른 객관적인 사실로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를 추정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대리해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피후견인이 식물인간 상태라 이혼하겠다는 생각을 직접 표현할 수 없어도, 다른 객관적인 사실로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를 추정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대리해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먼저 주식에 대한 소송과 형사고소부터 보면, 본인인 A가 의식불명이라고 하더라도 C는 A의 법정대리인으로서 A 대신 재산에 대한 소송이나 형사고소를 할 수 있다. 그 결과 B에 대한 주식의 증여는 A가 의식불명 상태에서 권한 없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어서 무효이므로 회사의 주주는 여전히 A라고 하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한편 B는 간통, 업무상횡령, 업무상배임,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C 역시 사문서위조죄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위와 같은 재산에 관한 문제 등이 아니라, 재판상 이혼과 같이 자신의 친족 관계나 신분을 결정하는 행위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지다. 즉 의식불명에 빠져 자신의 행위 의미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나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피성년후견인의 재판상 이혼 청구를 성년후견인이 대신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되기 전인 금치산, 한정치산 제도하의 판결이기는 하지만, 후견인이 의식불명에 빠진 피후견인을 대리해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후견인이 그러한 청구를 대신하기 위해 배우자에게 부정행위나 악의의 유기(遺棄)와 같이 법률에서 정한 이혼사유가 존재해야 할 뿐 아니라, 의식불명에 빠진 피후견인이 깨어 있었다면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것이라는 사정을 객관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을 위해서는, 본인의 평소 결혼관 또는 일상생활을 통해 가족, 친구 등에게 한 이혼에 관련한 의사 표현, 피후견인이 의식불명에 빠지기 전까지 혼인생활의 순탄 정도와 부부 사이의 갈등해소방식, 혼인생활의 기간, 피후견인의 나이·신체·건강상태와 간병의 필요성과 정도, 이혼사유가 발생한 이후 배우자가 취한 반성적 태도나 가족관계의 유지를 위한 구체적 노력여부, 배우자가 피후견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관리·처분하였는지, 자녀들의 이혼에 대한 의견,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피후견인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지 등을 두루 종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이혼 사유와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는 별개임에도,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를 추정하는 것은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의견이 많다. [사진 pxhere]

객관적인 이혼 사유와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는 별개임에도,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를 추정하는 것은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의견이 많다. [사진 pxhere]

즉 피후견인이 식물인간 상태이기 때문에 이혼하겠다는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여러 객관적인 사실로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를 추정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대리해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법원은 B가 불륜을 저지르고 A의 재산을 무단으로 가져갔다는 사정만으로는 A에게 이혼 의사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C가 대신 제기한 A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래 가정법원에는 의식불명의 피후견인이 배우자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후견인에게 부여해 달라는 청구가 빈번히 있다고 한다. 피후견인을 고의로 방치하거나 반복된 부정행위를 하는 것처럼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피후견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피성년후견인의 복리에 부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판상 이혼청구권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피후견인이 의식이 있었다면 당연히 이혼을 택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에도 이혼을 못 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이혼청구권의 행사가 금지되는 부당한 결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되기 전의 대법원 판결이나 근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성년후견제도의 본질과 관련한 비판이 거세다. 성년후견제도는 비록 어떤 상황에 대한 대처를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모자라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이혼은 당사자 본인의 이혼 의사를 본질적인 요소로 하기 때문에,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이혼에 대한 자기 생각을 표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러한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면 본인의 의사가 아닌 외부적인 요소만으로 피성년후견인의 의사를 섣불리 추정하거나 다른 사람이 이혼 소송을 대신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객관적인 이혼 사유와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는 별개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혼 사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혼 의사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고 쉽게 단정하거나 심지어 자녀들의 의견을 고려해 피후견인의 이혼 의사를 추정하는 것은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혼 사유가 명백하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그들 모두가 이혼을 선택하지는 않고, 그냥 참고 이해하고 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도 그 근거 중의 하나이다.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면서 피후견인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지혜로운 방안이 담긴 입법과 실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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