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 성폭행" 털어놓고 자해했다…'동반 투신' 여중생의 고통

중앙일보

입력 2021.12.07 05:00

업데이트 2021.12.07 08:45

“근데 ○○아. 나 그거 꿈인거 같아.”(A양)

“뭐?”(B양)

“내가 전화해서 얘기했던거….”(A양)

“그치.”(B양)

지난 2월 28일 오후 6시12분. B양은 친구 A양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받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전날 “의붓아버지에게 나도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취지로 말한 A양이 돌연 피해 사실을 ‘꿈’이라고 번복해서다.

당시 B양은 A양의 의붓아버지에게 지난 1월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둘 사이는 서먹해졌지만, B양은 2월 27일 용기를 내서 ‘너도 당한 적이 있니’라고 전화로 묻는다. A양은 “비슷한 방법으로 당했다”고 토로했다.

A양은 하루 뒤 “나 그거 꿈인 거 같아”라는 말로 상황을 수습한다. 친구의 말이 오락가락했지만, B양은 친구를 위로했다. 하지만 B양의 복잡한 심경은 생전 자필 진술서에 그대로 담겼다.

“‘너도 혹시 나처럼 당한 적 있어?’라고 물어보았는데. △△은 ‘3~4개월 전에 한 번 그랬었다’고 말했다. (중략) 2월 28일 ‘꿈인 거 같아’라고 연락이 먼저 왔다. 나는 의아했다. 그게 꿈 일 수가 있나. ‘갑자기 왜 그러지’ 이런 생각들이 들었는데. ‘그치’라고 답장해줬다. 친구는 언젠가 터질거라고. 말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터졌네라고 했다.”(3월 11일. B양 진술확인서 中)

성폭행 진술→자해→“꿈인 것 같다” 번복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지난 8월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지난 8월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청주 여중생 사건’ 선고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계부 C씨(56)의 친족 성폭행 혐의를 놓고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계부의 성폭행 범행을 토로한 A양의 생전 진술이 엇갈려서다. B양 유족은 “A양이 계부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도, C씨와 함께 거주한 바람에 진실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두 여중생은 지난 5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B양 유족과 이들을 돕는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 회장은 A양이 처음으로 ‘계부 성폭행’을 언급한 시점인 2월 26일부터 피해 사실을 번복한 2월 28일까지 3일간 행적을 7일 공개했다. 친구의 성폭행 피해에 대한 미안함과 계부의 성폭행 토로, 다시 ‘꿈’으로 말을 바꾸기까지 A양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판 기록 등에 따르면 A양은 2월 26일 B양이 소개해 준 정신과를 방문해 피해 사실을 말한다. 이 자리에서 A양은 의사에게 “아버지가 성폭행했다”고 토로했다. 범행 시기는 지난해 12월로 기억했다.

계부, 딸 휴대전화 감시…친구 대화 녹음 요구도

지난달 2일 충북 청주시 충북NGO센터에서 B양 아버지(왼쪽)과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 회장이 '오창 여중생' 사건에 대한 유족 의견을 말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달 2일 충북 청주시 충북NGO센터에서 B양 아버지(왼쪽)과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 회장이 '오창 여중생' 사건에 대한 유족 의견을 말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A양은 “작년 말쯤에 이불을 차고 자는데 화장실 옆에 있는 내 방에 들어와 배와 가슴을 만졌다”며 “5개월 전부터 잠을 자기 힘들다. 아버지가 3~4개월 전에 진정제 등 약을 줬다”는 말도 했다. 의사가 ‘아빠가 성폭행한 게 맞냐’고 묻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낮게 ‘예’라고 답했다.

A양을 상담한 정신과 의사는 2월 27일 C씨의 친족 성폭행 혐의에 대해 112에 신고한다. 그동안 B양의 성폭행 혐의만 조사하던 경찰이 A양의 친족 성폭행 혐의도 수사하게 된 계기다. 경찰은 곧바로 A양의 친모에게 이 사실을 통지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A양은 B양과 통화에서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재차 알린다.

경찰의 수사 착수와 함께 친구에게 성폭행 사실을 말한 A양은 이날 자해하면서 병원 치료를 받았다. 김석민 회장은 “A양이 어떤 이유에서 자해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날 경찰로부터 성폭력 신고 관련 전화를 받은 친모와 계부에게 심한 추궁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정신과 의사 증언을 보면 A양은 평소 계부 C씨에게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등을 감시받았다”고 주장했다.

“성폭행 가해자와 동거한 딸” 친모는 진술 방해

지난 5월 친구의 계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청주 여중생 B양의 부모들이 지난 8월 22일 청주 성안길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딸의 유서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친구의 계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청주 여중생 B양의 부모들이 지난 8월 22일 청주 성안길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딸의 유서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결국 A양은 하루 뒤인 2월 28일 “꿈인 거 같다”란 문자를 B양에게 보냈다. 경찰의 포렌식 수사 결과 계부 C씨는 이 같은 A양과 B양의 “꿈인 거 같다”는 대화를 3월 2일 캡처본으로 전송받았다. 이날 A양의 친모는 ‘성범죄 신상공개’ ‘전자발찌’ ‘성범죄알리미’를 검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C씨는 친족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는 A양에게 녹음을 지시하듯 이야기하기도 했다. 3월 13일 친구 B양을 만나는 딸에게 “천천히 물어봐. 녹음기 잘 들리게 켜놔”란 요구를 했다. C씨는 4월 28일 A양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조사받기 위한 방문한 성폭력상담소에도 동행했다. 친모가 당시 동석했으며, 조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금세 중단됐다. 조사가 중단되자 C씨는 지하 주차장에서 이들 모녀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B양 유족을 돕는 김 회장은 “A양은 성폭력상담소 진술에서 계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지만, 친모가 진술을 방해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A양의 친모와 계부에게서 딸에 대한 존중과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C씨에게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강간 치상 등의 혐의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C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0일 오전 10시 청주지법 223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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