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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상현의 이코노믹스

연공서열식 임금 줄여야 고령자 취업도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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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60세 이후 정년 연장, 성공의 조건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차기 한국윤리경영학회장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차기 한국윤리경영학회장

전 세계 화제를 모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승자독식의 피나는 경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기업경영에서 위계적 연공주의는 ‘승진 아니면 퇴직(up or out)’으로 이어지고 ‘오징어 게임’과 같이 퇴출당하지 않고 승자가 되려는 내부경쟁과 살아남기 위한 조직정치를 유발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유리판 징검다리 건너기’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떨어져 죽는 게임이다. 유리 전문가가 게임에 참여하고 있지만, 참가자들은 앞에 가는 사람과 지식을 나누지 않고, 또 나눌 이유도 없다. 다단계 직급과 호봉에 근간한 획일적인 사다리식 인사체계로는 구성원 모두의 최선과 협동도 개인의 행복도 이루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가. ‘일의 특성과 사람의 역량’을 기준으로 인사(HR)를 하는 것이다. 임금에서는 일의 가치가 중심이 되면 직무급, 사람의 직무수행 역량이 중심이 되면 역량급(능력급)이 된다. 물론 이것들을 혼용해 운영할 수 있다. 이 방식은 나이뿐 아니라 성별·장애·국적 등을 불문하고 누구나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으면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인사 방식이다. 하지만 직무와 능력 중심의 임금체계는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일률적 호봉제는 생산성 떨어뜨려
노사 갈등, 청년 일자리 감소 초래

‘오징어 게임’ 같은 무한경쟁 우려
직무·능력별 임금 개편 추진해야

오랜 준비로 갈등 최소화한 일본
연금제도 손보며 정년연장 안착

신세대는 연공서열 제도에 반발

성상현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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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과 계속고용 논의를 피할 수 없는 지금, 이 문제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급(年功給)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입장에서 고용안정과 임금수준 유지에 가장 유리한 임금체계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성과 괴리가 생기고 조직 활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려 결국에는 고용안정성과 임금수준 저하를 초래하는 역선택이 될 위험성이 크다.

구체적으로 근속에 따라 생산성이 오르지 않으면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생산성이 높은 그룹과 비교해 임금의 공정성을 상실한다. 임금 결정에서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비효율 문제가 발생한다. 나아가 미래산업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직무수행 역량 습득에 대한 유인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신세대는 연공서열적 질서에 대한 저항감이 커 조직력을 약화할 수 있다.

연령과 근속이 높을수록 일을 더 잘하는 경우가 있다면 연공급(호봉제)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일에 비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거나, 대우가 능력에 부합하지 않기도 한다. 더구나 저성장·저출산 시대에 현실과 괴리된 제도는 부작용이 더 크다. 공정과 상생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오징어 게임’처럼 암투가 판치는 현실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대기업 60%가 호봉급에 의존

지난 2016~2017년 시행된 정년 60세 연장 당시에는 임금체계 변화와 임금의 연공 의존성 완화 등 새로운 체제에 상응하는 준비가 부족해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 발생, 기업의 생산성 저하, 청년층 일자리 감소 등을 유발했다.

고령자 계속고용을 위한 변화 방향과 준비 내용

고령자 계속고용을 위한 변화 방향과 준비 내용

비자발적 조기 퇴직 증가로 본래의 목적인 고령자 고용안정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역효과도 있었다. 임금체계 변화의 경우 의무규정이 아닌 노력규정으로 돼 있어 노사갈등의 원인을 제공했고, 300인 이상 대기업의 59.1%에서 ‘호봉급’이 온존하게 됐다. 직무가치와 직무수행 능력에 기반을 두는 임금체계인 직무급과 직능급은 확산이 더디거나 감소했다.

우리보다 앞서 정년연장과 계속고용을 추진한 일본의 경우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임금의 연공성 완화를 위한 제도개선을 먼저 추진하고, 소득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연금제도 정비를 병행했다. 직무급 도입과 능력에 따른 임금인상률 차등 등 임금체계 자체의 개혁을 통해 임금의 연공성을 사전에 최소화하면서 제도를 도입했다.

입법 과정에서도 장기적 준비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갈등을 예방하고 생산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고령자 고용 증가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일본은 기존 65세 정년을 올해 4월부터 70세로 연장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새 제도가 시행됐다.

지속적인 교육훈련 병행해야

향후 60세 이상 계속고용 정책을 추진할 때는 정년 60세 연장 당시의 후유증을 파악해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관련법 입법 시 직무와 능력(역량)을 중심으로 임금체계 변경이 이뤄지도록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고령 세대의 필요에 적합한 다양한 고용형태 선택지를 확대하고, 근무형태 다양화, 고령자 적합직무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또 노사 간 자율성에 기반해 갈등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 기업과 개인이 상생할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할 것이다. 급격한 산업 변화 추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인력수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호봉급 변화 추이

호봉급 변화 추이

계속고용 대상 고령자의 경우 임원이나 부서장 등 책임자의 직책을 맡지 않는 경우에는 직책에 따른 역할이 없이 직무 그 자체의 수행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므로 직무급제가 가장 적합하다. 직무급 임금체계 도입은 생산성과 괴리된 인건비 부담을 줄여 일자리 확대를 용이하게 하므로 고령자 재고용뿐 아니라 청년고용 확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 적용 가능한 임금수준은 직무가치와 산업별 시장임금 수준, 생산성과 기존 임금, 지급능력, 기업 규모, 개인의 역량 등을 고려하여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은 생산 가능 연령의 후반부에 이른 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연령대의 문제이므로 전체적인 변화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60세를 넘긴 고용연장 대상 인력에 대해서는 직무급 체계 도입을 원칙으로 하는 동시에 신규 입사자에 대해서도 직무급을 적용하기 시작할 경우, 장기적으로 전체 인력을 대상으로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가 확산될 수 있다.

나아가 직무수행자의 역량과 성과를 포함한 통합적 관점에서 적합한 임금체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임금체계 변화는 세대를 아우르는 제도적 기반의 구축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성별·나이 차별 없애는 직무 중심 보상

자동차 경주는 결승선을 향한 질주를 요구한다. 경주에서 서로 다른 차종이 경쟁하지 않는다. 트럭과 승용차와 버스가, 또는 배기량이 다른 자동차가 같이 레이싱을 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재미도 없을 것이다. 스포츠도 종목별 체급을 구분해 경기한다. 그것이 올바른 공정의 원리이다.

인사관리를 직무 중심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직무 성격에 따라 그에 적합한 인력을 고용하고 육성하며, 직무수행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직무 가치에 맞는 임금을 지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무의 성격 즉, 종목과 무관하게 단일한 잣대로 비교해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은 형식적으로는 공정해 보일지라도 내용상 불공정하다. 직무별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이 직무 중심 인사의 핵심이다.

직무가치를 중심으로 보상할 경우, 성별과 나이, 개인적 배경과 특성에 따른 차별을 제거하고, 일의 가치와 기여를 중심으로 공정한 보상이 가능하다. 직무를 바꾸지 않으면 직무급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직무와 보상 수준에 만족할 경우 나이와 무관하게 능력과 의지가 있으면 해당 직무에 종사할 수 있다. 기업으로서도 연공에 따른 추가 인건비 부담이 없으므로 고용이 안정될 수 있다.

기업과 사회가 활력이 넘치려면 저마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일을 선택할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진학이나 취업이나 모두 한 줄로 서서 남을 올라타려는 잔혹한 경쟁이 과열되는 것은 각자의 일과 개성이 갖는 다양한 가치를 무시하는 획일성에서 비롯된다. 모두를 죽이는 한 줄 서기 게임에서 벗어나 저마다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전공과 일을 개성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직무 중심 인사가 바로 그 초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