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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남자’ 김종인 색깔, 윤석열 선대위와 조화가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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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거의 남자’ 김종인의 면모는 2012년부터 시작됐다. 그는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관여했다. [중앙포토]

‘선거의 남자’ 김종인의 면모는 2012년부터 시작됐다. 그는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관여했다. [중앙포토]

노익장(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좋아진다)이란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있을까. 대통령이라는 권좌를 놓고 다투는 절대 권력 게임인 대선판에 툭 뛰어든 김종인(81)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을 놓고 하는 말이다. 이립(而立·30세)을 한참 지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이(불혹·不惑, 40세)를 거쳐 하늘의 뜻을 안다는(지천명·知天命) 50세도 한 세대 전이다. 귀가 순해져 사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이순(耳順, 60세)도 옛말이고, 마음대로 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칠순, 즉 종심(從心)보다 10년을 더 보냈다.

팔팔한 김종인 위원장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제1야당 윤석열 후보의 총괄선대위원장이 된 6일 “나이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무슨 80 먹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볼 수 있느냐’고들 하는데, 정치적 판단이라는 건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다. 이는 곧, 나이는 팔순이 지났지만 정신적으로는 젊다는 얘기다.

2016년엔 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추대돼 민주당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중앙포토]

2016년엔 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추대돼 민주당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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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원톱’이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김 위원장을 대선판으로 끊임없이 당긴 인물은 누가 뭐래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1985년생으로 한국 나이 37세인 이 대표에게 그보다 45세 더 많은 김 위원장은 대선판의 상수였다. 이 대표는 후보 확정 전부터 일찌감치 “(윤석열 후보는) 훌륭한 정치 좌장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데, 그 좌장이 김종인 위원장일 수도 있겠다”(7월, CBS 라디오 인터뷰) 같은 말로 김 위원장의 ‘선대위 원톱 인사’를 기정사실화했다. 최근까지도 “파격적 변화가 없다면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는데, 이 대표가 말한 ‘파격적 변화’라는 건 김종인 위원장의 총괄선대위원장 영입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축적된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한 지난 3일의 이른바 ‘울산 회동’에서의 백미도 ‘김종인 원톱 영입’ 성사가 됐다. 윤 후보는 연결된 통화에서 “김 박사님!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요청했는가 하면, 김 위원장이 이를 수락하자 ‘엄지 척’ 제스처까지 선보였다.

올해 4월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에 일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중앙포토]

올해 4월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에 일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중앙포토]

이 대표가 김 위원장을 그토록 당겼던 이유에 대해 정치권에선 말이 많다. “윤 후보 주변의 측근들로부터 배제돼 자칫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뻔한 이 대표가 김 위원장을 방패 삼아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당 관계자의 해석이 그런 말 중의 하나다. 실제로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무 우선권’을 놓고 후보가 먼저냐, 대표가 먼저냐 하는 샅바 싸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 때 급부상

이런 미시적인 이슈와 별개로 윤 후보를 향해 “지난 6월 29일, 정치 선언 이후 점수를 까먹기만 했지 생산적인 담론을 만들어낸 게 뭐냐”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반(反) 문재인’이라는 안티 테제를 빼고 ‘윤석열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거 구원투수 김종인의 역대 전적

선거 구원투수 김종인의 역대 전적

김 위원장이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 후 윤 후보와 만난 다음 기자들에게 했던 첫마디가 “앞으로 공약 같은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당면한 현실 중에 후보가 가장 관심을 갖고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였다. 이는 김 위원장도 윤 후보의 비전에 대해 고민이 크다는 방증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임태희 전 이명박 대통령비서실장이 맡은 총괄상황본부를 필두로 날렵한 선대위를 꾸릴 것이라고 한다. 매머드급 선대위와 별개로 정책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할 별동대를 꾸리겠다는 구상이다.

“정치적 소신 강해, 후보와 맞서기 일쑤”

정치권에선 김 위원장을 일컬어 “부적 같은 존재”라고도 한다. 김 위원장의 실제 역할이 어떠했든, 그가 있는 곳은 승리했다는 이유에서다. 노태우 정부 청와대에서 경제수석을 지냈고, 비례대표 의원을 수차례 역임했다지만 그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그런 김 위원장이 정치권에서 급부상한 계기는 2011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으로 합류하면서다. 이듬해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과반 승리했고, 대선 때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은 그가 기치로 내건 ‘경제민주화’가 중도층을 표심으로 끌어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그는 중용되지 못했고, 2016년엔 반대 진영인 민주당의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으로 추대돼 아슬아슬한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때도 김 위원장의 ‘자리’는 없었고, 그는 표표히 자연인의 길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선대위원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게 옛 미래통합당, 현 국민의힘이다. 올 4월 재·보선 때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을 비롯한 압승을 이끌었고 당명도 그가 입안한 ‘국민의힘’으로 바꿨지만 그 이후 역할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한 야권 인사는 “오랜 세월 지켜온 김 위원장의 정치적·정책적 소신이 워낙 강하다 보니 선거판의 주인공인 후보와 맞서기 일쑤였다”며 “김 위원장의 정책 색깔을 ‘윤석열 선대위’에 어떻게 입히고 조화시킬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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