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47화. 신곡

중앙일보

입력

살아서 죽음의 세계에 가게 된다면

어느 날, 한 사람이 산길을 걷다 짐승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겁을 먹은 그는 벌벌 떨었지만, 그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나 그를 인도해주었죠. 하지만 그가 인도한 곳은 위험하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곳,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뱃사공 카론이 죄인들을 후려치며 수많은 이들이 괴물과 악마들에게 쫓기며 벌을 받는 곳. 존경하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아 그 사람은 지옥의 수많은 장소를 다니며 여러 체험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는 그러한 체험을 글로 기록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이 바로『신곡』, 지옥의 모습을 가장 흥미롭게 그려내어 눈길을 끈 바로 그 작품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죽은 이후에 어떤 일이 있을지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사람은 모두 죽기 때문에 죽은 후의 삶에 대해 한편으로는 걱정하고 한편으론 기대했던 것이죠.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이야기로 정리해 세상에 전했습니다. 신화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단테의『신곡』은 그러한 저승 세계를 다룬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한 사람의 시인이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여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너무도 흥미롭고 그럴듯해 ‘저승’에 대한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죠.

단테 자신이 다른 이의 인도를 받아 저승 세계의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여행하며 역사 속 또는 신화 속 인물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작품은 이후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줍니다. 특히, 미노타우로스 같은 괴물들이 날뛰며 죄인들을 벌하는 지옥의 모습은 끔찍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쳐서 지옥에 관련된 내용을 다룬, 특히 기독교의 지옥을 다룬 이야기라면 거의 빠짐없이 참고하는 작품이 됐죠. 하지만『신곡』은 저승 세계를 다룬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사실 저승의 모습은 세계 각지에 신화나 전설의 수만큼, 작품의 수만큼 다양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말이죠.

지옥과 저승 세계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고 이를 다룬 작품들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에서는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넷플릭스

지옥과 저승 세계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고 이를 다룬 작품들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에서는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넷플릭스

저승이라면 흔히 지옥과 천국을 떠올리지만 지옥과 천국이 나뉘지 않은 이야기도 많고, 저승이 여러 개로 나뉜 경우도 많죠. 가령 북유럽의 게르만  신화에서 죽은 이들은 헬(또는 헬라)이 다스리는 니플헤임 중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헬이라는 곳으로 향하는데, 그곳은 딱히 죽은 자를 벌하거나 괴롭히는 장소는 아니에요. 단지 죽은 이라면 누구나, 심지어 신조차 이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실제로 최고신 오딘의 둘째 아들 발두르가 죽었을 때, 그 역시 헬로 향하게 되었죠.

물론, 게르만 신화 속에서 이른바 천국이라 할 곳은 존재합니다. 바로, 전사들의 궁전인 발할라인데요.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전사들이 발키리의 인도를 받아서 향한다고 알려진 이곳은 죽은 전사와 영웅의 혼인 에인헤랴르들이 살아갑니다. 그들은 밤이면 발키리와 함께 연회를 벌이며 즐기지만, 아침이 되면 서로 무기를 잡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거듭하죠. 하지만 해가 지면 모든 상처가 회복되고 죽은 사람도 다시 일어나 다시 연회를 벌입니다. 그야말로 싸움과 약탈로 살았던 게르만족과 바이킹들의 천국에 어울리는 느낌이죠. 다만, 발할라로 향하려면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병으로 죽거나 늙어 죽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이들도 있었다고 하죠. 때문에, 병이나 노환으로 쓰러진 전사들을 죽여주는 풍습도 있었다니 참 놀라울 따름입니다.

신들도 죽어서 저승에 가는 건 다른 신화에서도 등장합니다. 수메르 신화에서 금성의 신이자 미의 여신인 이난나(바빌론 신화의 이슈타르)는 어떤 이유에선가 저승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그녀는 당연히 미의 여신에 어울리는 차림을 했지만, 저승의 법도에 따라서 문을 통과할 때마다 권위를 하나씩 잃게 되죠. 결국 알몸이 된 이난나는 자신의 언니이자 저승의 지배자인 에레쉬키갈과 대적하지만, 모든 힘을 잃은 만큼 죽음을 맞이하고 말죠. 하지만 생산의 여신이기도 한 이난나가 죽음으로써 지상의 모든 생산이 정지하게 되었기에, 신들의 합의 끝에 결국 이난나는 되살아나게 됩니다. 하지만 ‘저승에서 살아 돌아간 이는 없다’라는 법도 때문에, 이난나를 대신해 그녀의 남편인 두무지와 두무지의 누나인 게슈틴안나가 번갈아 저승에 머무르게 되죠. 그로 인해 겨울이 생겨났다는데요. 그리스 신화 속 페르세포네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죠.

죽은 사람을 되살리려 저승으로 향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것이 성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선 음악의 천재 오르페우스가 저승에서 아내를 데려오겠다는 뜻을 이루지 못했죠. 오딘의 아들 발두르도 ‘저승의 법도’로 인해 되살아날 수 없었고요. 그러고 보면 저승에 이어 연옥, 천국까지 모두 구경하고 무사히 돌아온 단테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저승에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으니 더욱 대단한 일이죠. 인간이라면 반드시 갈 수밖에 없는 죽음의 세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 삶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