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상위권 운명 가를 ‘생명과학Ⅱ 20번’…오류 가릴 재판 8일 시작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 동문회관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열린 2022학년도 대입 정시 전략 설명회에서 참석자가 2022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가채점 결과에 따른 배치표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 동문회관에서 종로학원 주최로 열린 2022학년도 대입 정시 전략 설명회에서 참석자가 2022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가채점 결과에 따른 배치표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오류 여부를 가릴 법정 공방이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8일(수) 오후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사건의 첫 심문기일을 진행한다.

가처분 신청은 문항 오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는 만큼, 생명과학Ⅱ 응시자의 수능 성적 확정을 미뤄달라는 취지로 제기됐다. 교육부는 수험생들에게 오는 10일(금) 수능 성적표를 배포할 예정이다. 만약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생명과학Ⅱ 응시자의 성적표는 다른 응시자들과 달리 별도로 10일 이후에 확정 배포될 전망이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오류인지 여부를 따지는 본 소송도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응시자들의 대입 절차를 고려해 최대한 빨리 소송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 2014년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류 소송의 1심 재판은 약 15일 만에 판결난 바 있다.

소송인단 "전문가·교사 '문항 오류 맞다' 의견서 접수 중"

소송인단 측 학생이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만든 자료. [온라인 커뮤니티]

소송인단 측 학생이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만든 자료. [온라인 커뮤니티]

소송인단을 대리하는 일원법률사무소 김정선 변호사는 “여러 교수님과 전문가에게 해당 문항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조차 대부분 ‘문제가 지나치게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며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들도 ‘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인단은 지난 1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유전학회 등 생명과학 관련 학회 10여곳에 공개질의서를 보내 20번 문항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요청한 바 있다.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법정에 서게 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동물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가려내는 문제다. 하지만 계산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문항 자체가 오류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평가원은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밝히며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가원 '문제 일부 인정, 하지만 답 찾을 수 있어'…학생들 "평가원 설명에 더 실망"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이의신청에 대한 평가원 답변 내용.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이의신청에 대한 평가원 답변 내용.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소송에 참여한 A씨는 “하나하나 조건을 따져가며 풀었더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며 “평가원의 답변은 ‘조건이 오류긴 하지만, 답은 낼 수 있는 거 아니냐’라는 뜻인데, 답이 아니라 풀이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게 우리 교육과정 목표와 평가원 입장이었던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소송 참여자 B씨는 “문제도 오류지만, 평가원의 설명을 접하고 실망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생명과학Ⅱ 문제가 출제 오류로 판정될 경우 응시자들의 지원대학 특성상 전국 의약학계열과 상위권 대학 입학 전형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수능 생명과학Ⅱ는 7868명이 접수했으며, 이는 전체 응시자의 1.6%에 해당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생명과학Ⅱ는 서울대, 의예과 등에서 지정하거나 가산점을 부여하는 과목”이라며 “소송 결과가 상위권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세계지리 문항 오류 소송, 1년 뒤에야 승소

수능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단체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학년도 수능에서도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오류가 법정 소송까지 간 바 있다. 당시에도 평가원은 출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고, 1심에서도 평가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응시자들이 항소해 결국 1년 뒤 ‘등급 결정 처분 취소’ 판결이 확정됐다. 이 판결로 오답 처리됐던 응시자 1만8884명 중 절반에 가까운 9073명(48%)이 한 등급씩 상승했고, 629명의 대학 추가 합격자가 나왔다. 피해를 본 학생들은 등급 결정 처분 취소 소송과 별도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하지만 학생당 200만~1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2심 판결에 평가원이 불복하며 상고해 현재까지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평가원은 지금까지 여섯 번의 출제 오류를 인정한 바 있다. 2014학년도 세계지리 8번을 포함해 2004년, 2008년, 2010년, 2015년, 2017년 수능에서도 오류 문항이 발견돼 복수 또는 전체 정답으로 처리한 바 있다. 2014학년도 세계지리 오류 문항 소송을 대리했던 임윤태 변호사는 “결과적으로 승소하긴 했지만 1년이 지나서야 결론이 나오는 바람에 다수의 학생이 매우 큰 피해를 보았다”며 “처음부터 오류가 있어선 안 됐겠지만, 오류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바로잡아서 응시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