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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사관 협박전단 붙인 무슬림···"대사 협박 아니다” 선처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 [연합뉴스]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 “무슬림을 모욕하지 마라”라는 내용의 협박 전단을 붙인 외국인 2명이 벌금형의 선고 유예를 확정받았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러시아인 A씨와 키르기스스탄인 B씨에게 각 벌금 3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항소심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이를 확정했다.

A씨 등은 지난해 11월 1일 오후 10시께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 앞을 찾았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A4 용지 크기 전단 여러 장을 대사관 외벽과 그 바로 앞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에 부착했다. 전단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얼굴 사진에 X 표시가 돼 있고 전단 상단에는 “무슬림을 모욕하지 마라”,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는 자, 그 칼에 죽임당하리라”는 뜻의 영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전단을 붙이고 사라진 이들은 얼마 뒤 경찰 수사로 붙잡혔고 각각 구속돼 협박 및 외국사절협박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프랑스 대사관에 협박 전단…왜?

이들이 프랑스 대사관에 전단을 붙인 시기는 무슬림들 사이 반프랑스 정서가 들끓던 시기였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중학교 역사 교사가 수업 시간에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풍자의 소재로 삼은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보여줬다가 이슬람 극단주의 청년에 의해 참수당한 일이 있었다. 같은 달 29일에는 프랑스 니스의 한 성당 안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흉기로 70대 여성의 목을 잘라 살해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참수 사건 이후 일부 이슬람 사원을 폐쇄하고 무슬림들에 대해 강경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반프랑스 시위가 일었다.

A씨 등도 수사에서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인들이 무슬림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화가나 대사관 벽에 전단을 붙였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진을 다운 받고 문구를 적었다. 다만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위해 행위나 보복, 응징할 의사는 없었고 “무슬림을 모욕하지 말라”는 항의 의사를 전달할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협박이나 특정한 해악의 고지가 없었으므로 전단을 붙인 것이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에 더해 전단을 붙인 행위는 종교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있을 정도라는 주장도 폈다.

1심 집행유예→2심 벌금형 선고유예 선처

1심은 두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6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들이 범행을 저지른 무렵 해외에서 발생한 프랑스인에 대한 참수로 전 세계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프랑스인들이 호소하는 충격과 불안감은 상당했다. 프랑스 대사관 직원들과 그 가족들은 이들의 전단 부착으로 두려움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1심은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 등에 대한 협박죄는 유죄로 인정하되 프랑스 대사를 협박했다는 외국사절협박죄는 인정하지 않았다. 전단에는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칭하는 직접적인 용어나 사진은 없었다. 형법 제108조 외국사절협박죄의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하는 일반 협박죄보다 그 법정형이 훨씬 높다.

2심도 1심과 마찬가지로 협박죄는 인정하되 외국사절협박죄는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2심은 A씨 등이 주장한 “형이 너무 무겁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선처했다. 2심은 피고인들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고, 사건 직후 구속돼 구치소에서 오랜 기간 구금된 점 등을 고려해 벌금 3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검찰은 2심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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