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세상속으로 나가도 좋다" 법정 울린 판사 판결문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1.12.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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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박형남 부장판사가 1일 서울고법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창 너머로 남산 서울타워가 한눈에 보이지만 그는 "사실 창문은 종일 블라인드로 가려놓는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박형남 부장판사가 1일 서울고법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창 너머로 남산 서울타워가 한눈에 보이지만 그는 "사실 창문은 종일 블라인드로 가려놓는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세상일이라는 게 법으로 하는 건 10분의 1도 안 돼요. 사회과학적 인식과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한데 그게 없어도 판사라는 이유만으로 다 공부한 거로 생각하더라고요. 너무 부끄러웠죠.” 서울고법 민사항고 25부 박형남(61) 부장판사는 ‘인문학 공부하는 판사’다. “판사처럼 외롭고 힘든 직업이 없다”는 그에게 문·사·철(문학·역사·철학)(文史哲)은 세상과의 소통 창구이자 좋은 재판을 위한 필수 과목이다.

최근 사법 에세이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출간한 박 판사는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남산 서울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창밖 풍경을 자랑했다. 그런데 “사실 창문은 종일 블라인드로 가려놓는다”고 했다. “판사 한 명이 쓰는 판결문만 1년에 2000~3000건인데 창밖을 보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란다.

부모님 뜻 따라 법대 진학한 문학소년 

1일 서울고법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박형남 부장판사. 우상조 기자

1일 서울고법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박형남 부장판사. 우상조 기자

박 판사는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사법고시(23회)에 이어 행정고시까지 합격한 2관왕이다. 초임 판사 시절 일에 파묻힌 채 쫓기듯 살아오던 그가 문·사·철에 눈을 뜬 건 사법연수원 교수를 마치고 막 승진한 40대 중반 때였다. 어느 날 서점에서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서다. “연암 박지원과 그의 저서 『열하일기』를 생기발랄하게 풀어낸 글이 회색빛에 젖은 법서와 판결문만 보던 나를 때리더라고요. 나도 한땐 문학도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었죠.”

가난한 집안에서 7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책이 좋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같은 고전을 즐겨봤고 중학생 때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문예부에선 교지 편집을 했다. 당시 도서관에서 한 권에 700페이지로 된 15권짜리 세계사 책에 푹 빠져 공부에 소홀했던 적도 있다. 역사학도를 꿈꿨지만, “우리 집안에 판사 한 명은 나와야 한다”는 부모님 뜻에 따라 법대에 진학했다.

그 후 약 20년 만에 되찾은 문학적 감수성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골프를 끊고 주말마다 국립도서관을 찾아 하루종일 책을 2~3권씩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만 1000권을 훌쩍 넘는다. “10년이 지나 55살이 되니 다시 법이 보이더라”는 그는 지금도 “낮엔 판사, 밤엔 인문학도”를 자처하며 산다. 아내가 “낮에도 글(법서)만 보면서 밤에도 글을 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활자로 쌓인 독 활자로 푼다.”

한국 사법사상 최초 ‘심리적 부검’ 도입

“법서는 너무 딱딱하지만 이야기는 재미있잖아요. 노는 재주가 없으니 그냥 책이 당기더라고요. 선진국은 인문학, 경제학, 철학에 바탕을 두고 법이 됐어요. 이 법리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 법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그런 바탕이 없거든요. 법적 개념으로만 (사건을) 풀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인간의 개별성을 무시하더라고요.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나, 가정환경이나 성격은 어떤가를 보게 되죠.”

언론 기고문을 모아 최근 ‘법정에서 못다한 이야기’ 를 출간한 박형남 부장판사가 1일 서울고법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언론 기고문을 모아 최근 ‘법정에서 못다한 이야기’ 를 출간한 박형남 부장판사가 1일 서울고법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그 결과물이 지난 2013년 박 판사가 한국 사법사상 최초로 도입한 ‘심리적 부검’(사망 원인을 심리학ㆍ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이다. 덕분에 2009년 과도한 업무로 극단 선택을 한 공무원의 유족에게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할 수 있었다. 공작으로 ‘이수근 간첩 사건’에 연루돼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배경옥 씨에게 국가를 대신해 사과하며 판결문에 담은 “이제 피고인은 법정 밖으로, 세상 속으로 나가도 좋다”는 마지막 문장도 특별히 공들여 썼다고 한다.

이른바 ‘의사 사위 지참금 청구 사건’(중매로 결혼한 후 수년간 따로 살다 이혼 소송에 패하자 장인어른이 생전 각서를 써준 지참금을 달라는 소송)의 의사에게 “염치없다”고 판결한 것도, “여성을 보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문목욕 서비스를 받은 80대 할머니에게 급여 지급을 거절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사람은 수치심을 밖으로 표현하기를 꺼리는 본성이 있다”며 지급하도록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인간의 수치심도 헌법이 보장하는 존엄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약 34년을 판사로 살았지만, 그는 “다음 생엔 판사는 절대 안 한다”고 장담했다. “삶이라는 건 다양하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판사는 그 본능을 억제하는 직업”이라서다. “판사가 사람을 만나는 유일한 곳이 법정인데, 감정을 보이면 큰일 나죠. 주변 민원도 받아줄 순 없으니 판사를 오래 하면 인간관계도 끊어져요.” 그래서 그는 책을 읽는다. “이제 판사들은 법정 밖으로, 세상 속으로 뛰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법정에서 만날 사람을 위해서.”(『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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