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의원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위해 판을 깔아줬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갸우뚱하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파고 들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윤 후보와 이준석 대표 사이에서 ‘판사 본능’을 발휘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전한 3일 ‘울산 회동’의 막전막후를 요약하면 이렇다.
울산 회동의 표면적인 주연은 윤 후보와 이 대표였지만 당내에선 “무대 뒤편에서 벌어진 급박한 막전막후가 아니었다면 해피엔딩은 없었을 것“(당 관계자)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간 이 대표와의 갈등, 김 위원장과의 밀고 당기기, 홍 의원과의 껄끄러운 관계 등 삼중고에 비틀거렸던 윤 후보는 이날 회동으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①‘계산된 도발’ 이준석과 중재자 김기현
이 대표는 회동 전 사흘간 잠행을 하면서 윤 후보 측에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대표 측과 윤 후보 측이 전화로 꾸준히 물밑 접촉을 이어갔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회동 직전 이미 양측에 ‘이 대표의 잠행이 주말까지 이어지면 모두가 지는 게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이 대표의 돌출 행보가 일종의 계산된 행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중재자로 나선 김기현 원내대표의 역할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에게 회동 주역을 단 한명만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김 원내대표를 꼽겠다”고 말했다. 실제 3일 회동 전 김 원내대표는 윤 후보, 이 대표 양측에 “뭐가 됐든 일단 만나야 풀린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김 원내대표가 술잔도 거의 입에 대지 않고 대화가 엇나갈 때마다 나와 윤 후보에게 핵심 포인트를 짚어주면서 협의를 이끌어 냈다”고 전했다.
②고개 젓던 김종인의 기류 변화, 왜
김 위원장의 합류 결심도 울산 회동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은 화룡점정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의 한식집 ‘달개비’에서 윤 후보와 회동했지만 결렬됐고, 이후 당내에는 ‘김종인 불발설’이 파다했다.
하지만 울산 회동 전 김 위원장의 분위기는 이전과 많이 달랐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잠행 중이던 이 대표는 대리인을 통해 김 위원장 측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속해서 합류를 설득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당 관계자는 “지난달 30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김 위원장 측이 합류를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뜻을 이 대표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이 기간 라디오 인터뷰나 대외 행사 참여를 취소하는 등 보폭을 줄였는데, 당 관계자는 “합류를 염두에 두고 말을 아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당 중진들의 노력도 있었다. 권성동 당 사무총장과 김재원 최고위원, 5선의 정진석 의원이 2일 밤 김 위원장을 찾아가 합류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권 사무총장은 “선대위의 원톱은 누가 뭐래도 김 위원장”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김 위원장의 2일 저녁 회동도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같은 시각 윤 후보는 홍 의원과 비공개 저녁 회동을 하고 있었다. 이날 원 전 지사는 김 위원장에게 당의 위기 상황을 전하며 “합류를 결단해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는 이날 “원 전 지사와의 식사 뒤 합류 결심을 확실히 굳힌 것 같았다”고 전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3일 울산 회동이 시작된 직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당이 선거를 치를 상황이 되면 책임을 다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선대위 합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③尹-洪 회동, 김종인 압박 카드 됐나
당 일각에선 이번 회동 성사의 숨은 주역으로 홍준표 의원을 꼽기도 한다. 홍 의원은 2일 밤 윤 후보와 비공개로 회동했다. 대선 경선에서 치열한 대결을 벌인 두 사람은 껄끄러운 관계였지만, 회동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홍 의원은 윤 후보에게 “이 대표를 찾아가서 설득하라. 당은 이 대표가 주도해야 정상이고, 파리 떼가 설치면 대선을 망친다”는 취지로 조언했다고 한다. 그는 울산 회동이 끝난 뒤엔 ‘청년의꿈’ 게시판에 “이제 마음 편히 백의종군할 수 있게 됐다. 나를 이용해 선대위를 완성했다면 그 또한 훌륭한 책략”이라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당 일각에선 “윤 후보와 홍 의원의 회동이 김 위원장에겐 상당한 압박이 됐을 것”(야권 인사)이란 분석도 있다. 앞서 당내에선 김 위원장과 홍 의원의 ‘악연’을 고려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선대위에 합류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윤 후보와 홍 의원이 만난 뒤엔 “윤 후보가 홍 의원과 손잡는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 홍 의원이 선대위에 먼저 합류할 경우 역할 공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김 위원장이 결심을 서둘렀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울산 회동 뒤 윤 후보는 홍 의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윤·홍 회동’의 중재자는 홍 의원의 검사 선배인 함승희 변호사였다. 함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을 ‘복덕방’에 비유했다. 그는 “집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중요하지, 복덕방이 뭐가 중요하겠나”고 했다.
④“김 박사님 도와주십시오” 1분 뒤 엄지 치켜든 尹
이 모든 막전막후의 결정판은 3일 울산 회동이었다. 현장을 수시로 지켜본 인사들은 “마치 화끈한 축제판 같았다”고 회동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술잔이 돈 상황에서 김 위원장과 통화가 연결되자 윤 후보는 거두절미하고 “김 박사님!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약 1분 뒤 김 위원장이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윤 후보는 엄지를 위로 치켜 세우고 주변에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통화를 마친 뒤엔 윤 후보가 “김 박사님이 함께 한다”고 선언했고 좌중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합의문 문구에 대해 문자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에서 윤 후보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 논란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로 이 대표를 안심시켰고, 이 대표는 청년 표심을 끌어올 구상을 적극적으로 밝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