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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재 개그 성공률은 3할…웃길 때 중요한 건 타이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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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레이디 히아신스 다이스퀴스’로 분장한 오만석. 작품에서 맡은 역할 9명 중 하나다. [사진 쇼노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레이디 히아신스 다이스퀴스’로 분장한 오만석. 작품에서 맡은 역할 9명 중 하나다. [사진 쇼노트]

한 젊은이가 은행에 취직을 기원하며 무대 위에 서 있다. 나이 많은 은행장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며 긴장감이 흐른다. 둘을 지켜보는 객석도 마음을 졸인다. 은행장이 엄숙하게 입을 뗀다. “어, 내일부터 일하게. 가는 길에 검사받고 아침 일찍 음성 나오면 확인서 가지고 오게.” 1900년대가 배경인 뮤지컬에 난데없이 소환된 코로나19. 객석에 폭소가 터지는 순간이다.

내년 2월까지 공연하는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배우 오만석(46)이 관객을 웃기는 여러 순간 중 하나다. 오만석은 은행장을 비롯해 한 가문의 인물 9명을 한 무대에서 연기한다. 부와 권력을 이어온 가문 다이스퀴스의 백작, 한량, 성직자, 배우, 군인, 자선 사업가, 대지주, 또 가문에서 버려진 청소부까지 9명이다. 여성과 남성, 노년과 청년, 동성애와 마초 성향까지 다양한 인물의 공통점은 웃긴다는 점이다. 상류층의 허위가 코미디를 거쳐 적나라하게 밝혀진다.

로맨틱하고(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 악독하며(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강렬한(뮤지컬 ‘헤드윅’) 역할로 인기를 얻었던 오만석은 천연덕스럽게 이 모든 역할을 소화한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객석엔 폭소가 일렁인다. 오만석의 희극적 발견이다.

“철저하게 계산해야 한다. 연습실에서 100을 하고, 50만 들고 무대에 나간다.” 본지와 인터뷰에서 오만석은 웃기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더 즐거울지 계속 생각하는 일이 코미디”라며 “생긴 게 부리부리해서 그런가 많이 안 시켜주지만, 애정이 깊다”라고 했다. “관객이 웃을 때,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는 즐거움과 힘이 생긴다.”

웃기기 위한 오만석의 노력은 정교하다.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어야 하는데, 잘 뒤집기 위해서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계산, 교감, 호흡이 있어야 한다. 관객이 정확히 잘 쫓아왔을 때 마지막 타이밍을 탁 뺏어와야 한다.” 그는 이런 작업을 연습실에서 충분히 한다고 했다. “시도할 수 있는 최대치를 연습실에서 해본다. 상대 배우와 주변 모든 스태프의 반응을 보고, 살아남는 시도는 절반도 안 된다.” 그는 “연습실에서는 매우 썰렁한 배우”라며 “연습은 잘 틀리려고 하는 일이라, 모든 잘못된 것들을 시도해보는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계속한 시도를 반영해 자신만의 대본을 따로 만들었다.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오만석이 연기하는 다이퀴스 가문 역할에는 정성화·정문성·이규형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함께 캐스팅돼 회차별로 번갈아 무대에 선다. 이 작품의 2018년 초연부터 참여해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인 오만석은 “내 애드립과 계획을 적어놓은 별도 대본이 있다”고 했다. “대본 연구, 연습, 무대 위 경험 등을 통해서 얻은 데이터다. 코미디에서 배우의 본능보다는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 그는 “원하는 대로 웃기는 장면을 만들 수 없을 때 고통스러운데, 무대에서 사람들이 웃을 때 고통을 보상받는다”고 했다.

코미디를 즐기는 데 대해 그는 “평소에 엉뚱한 면이 있어서인 듯하다”며 “아재 개그 성공률이 3할 정도인 사람”이라고 했다. 희극 경험은 2000년 연극 ‘이(爾)’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길 역이 궁중 광대, 코미디언 아닌가. 작품 안에 있는 놀이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2004년 시작한 뮤지컬 ‘달고나’에서도 동네 처녀, 도령 같은 역할을 맡아 코미디 감각을 선보였다. “웃기는 장면은 직접 한번 짜보라는 제안을 연출에게 그 당시부터 많이 받았다”고 했다.

오만석은 공연 3편에 동시 출연 중이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지난달 13일 시작했고, 송승환 배우와 함께 하는 연극 ‘더 드레서’는 지난달 16일 시작해 내년 1월 1일까지 공연한다. 뮤지컬 ‘헤드윅’도 지난달 말 경기도 고양에서 시작해 인천을 거쳐 천안·대구·성남에서 내년 1월까지 계속된다. “이렇게 큰 역할 셋을 동시에 하는 일은 처음”이라며 “쉽지 않은 일이라, 각 공연 전에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라도 한 번씩 꼭 소리 내 본다”고 했다.

그는 “20여년 무대에 섰지만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무대를 찾는다. “가슴에 늘 구멍이 있는데, 공연 끝나고 커튼콜이 나올 쯤에 박수 소리로 메워진다. 구멍은 다음날 또 생긴다. 늘 다시 생기지만, 공연 마치는 순간만큼은 메워지는 걸 알기 때문에 자꾸 무대로 돌아온다.”

무대 공연을 끝내면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할 계획이다. “한 영역에 익숙해지면서 생기는 매너리즘을 경계한다”는 그는 “영화에서 코미디 연기를 해본 적이 없어, 언젠가 해보고 싶다”라고 했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는 서울 신사동의 광림아트센터에서, 연극 ‘더 드레서’는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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