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출세 꿈꾸던 선비·이몽룡이 과거시험 치른 창덕궁 '춘당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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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57)

창덕궁 후원의 첫 번째 영역 부용지에 당도하면 시원하게 확 트이는 연못 남쪽의 부용정, 북쪽 언덕에 이층집 주합루가 있고, 연못 오른편으로 영화당이 있다. 이곳은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경관이 빼어나서 신선 세계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곳이다. 부용정이 남쪽에 접해 있는 연지는 네모반듯하고 가운데 둥근 섬을 두고 있다. 중국의 역사서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보면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기록되어 있다. 천원지방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사상이다. 이 말의 본뜻은 ‘하늘의 덕은 둥글고 원만한 데 있고 땅의 덕은 평평하고 반듯한 데 있다’는 말로 사람이 땅을 딛고 하늘의 덕에 부합되게 사는 것이 이상이었기에 조경에서는 이를 네모난 방형 연지와 둥근 섬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연못은 땅을, 연못 안의 동그란 섬은 하늘을 상징하고 사람들은 섬 가운데에 신선 세계에 있다는 소나무를 심었다.

창덕궁 주합루.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누각.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김광섭]

창덕궁 주합루.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누각.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김광섭]

그리고 부용정 연지 남쪽 모퉁이 장대석에 물에서 튀어 오르는 잉어 조각을 찾아보길 바란다. 이 물고기 조각의 의미는 어변성룡(魚變成龍) 고사를 해석해 읽어야 한다. 중국 황허 상류에 용문협곡이 있는데 해마다 이곳의 거센 물결을 거슬러 뛰어오르는 잉어 떼 중 협곡의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데 성공한 물고기는 용으로 변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야기이다. 물고기가 용문 협곡의 물살을 거슬러 뛰어오른다는 의미는 용문에 오르는 것을 말하고 이를 스토리텔링(storytelling) 한 것이 바로 등용문(登龍門)설화이다. 예전에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다니던 입시학원의 이름으로 유명했던 등용문은 바로 물고기가 성공하여 용으로 변신한다는 설화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규장각에 오르는 문의 이름 어수문(魚水門)이 또 수어지교(水魚之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수어지교는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두터운 교분이나 부부의 친밀함 또는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어지교의 유래,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

유비는 남양(南陽)에 은거하던 제갈량을 찾아 관우, 장비와 함께 예물을 싣고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한 끝에 그를 군사(軍師)로 모실 수가 있었다. 이를 삼고초려(三顧草廬: 유능한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하다)라고 한다.

유비는 제갈공명을 얻게 되어 몹시 기뻐했고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교분은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으며 유비는 제갈공명을 매우 존경하였으며, 제갈공명 또한 유비의 두터운 대우에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유비와 결의 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는 제갈량에 대한 유비의 태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종종 불평했다. 유비가 28세의 젊은 제갈공명만 중히 여기고 자기들은 가볍게 취급받는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위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공명을 얻게 된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관우와 장비는 (불평을) 그쳤다.

- (關羽張飛等不悅. 先主解之曰,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 羽飛乃止)

영화당(暎花堂)과 춘당대(春塘臺)

동궐도. 동아대 소장본.

동궐도. 동아대 소장본.

영화당. [사진 문화재청]

영화당. [사진 문화재청]

영화당에 올라앉아 동쪽으로 바라보는 앞마당을 춘당대라 부른다. 높은 집에 올라서서 풍경을 내려다보면 시각에 여유가 생긴다. 영화당은 춘당대에서 과거를 치르던 때 시험장 본부로 쓰이거나 군사 열무(閱武)를 하던 곳이다. 왕께서 친히 친림하여 치르는 과거시험, 전시(殿試)를 빼놓고는 이 규장각 일대의 등용문 설화를 마무리 지을 수 없다. 춘당대에서 유생들이 시험을 보면 왕이 영화당에 친림하여 이 시험을 참관했다. 그 광경을 읊은 정조의 ‘영화시사(暎花試士)’는 후원의 열 가지 경치를 이르는 상림십경(上林十景) 중의 하나이다. 정조는 세손 시절 과거 보는 유생들의 모습을 아름다운 후원의 빼어난 풍광으로 노래한 것이다.

주합루, 규장각 일대에는 글공부하는 선비가 과거 급제하여 벼슬을 얻고, 임금께 다가가 신하로서 입신출세하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을 찾아야만 완성되는 묘미가 있으니 바로 규장각 동쪽으로 널찍한 마당을 앞에 둔 집 영화당 이야기이다. 부용지 장대석의 잉어는 어느 날 용문 협곡을 거슬러 올라(등용문) 용이 되어 임금의 부름을 받고 국가의 인재가 되어 입신출세의 길을 걷는데, 이 등용문의 장소가 바로 과거장으로 쓰인 영화당 앞마당 춘당대이고 급제한 사람은 관리에 임명되고 그 후 더욱 정진하여 왕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규장각 관료가 된다는 연결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만나는 또 한 사람의 반가운 인물은 소설 춘향전의 이몽룡으로 몽룡이 과거 시험을 치르던 장소가 춘당대이다. 판소리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에 이몽룡이 과거를 치르는 대목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춘당대시(春塘臺試)라고 불렀던 나라의 특별 과거가 춘향전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때 한양성 도련님은 주야로 시서백가어를 숙독하였으니 글로는 이백(李白)이요, 글씨는 왕희지(王羲之)라. 국가에 경사 있어 태평과를 보이실 새 서책을 품에 품고 장중에 들어가 좌우를 둘러보니 일시에 숙배한다. 대제학 택출하여 어제를 내리시니 도승지 모셔내어 홍장(紅帳) 위에 걸어 놓으니 글제에 하였으되 “춘당춘색이 고금동(春堂春色古今同)이라.”뚜렷이 걸었거늘 이도령 글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배라. 시지(試紙)를 펼쳐놓고 해제(解題)를 생각하여 용지연(龍池硯)에 먹을 갈아 당황모 무심필을 반중동 덤벅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 체(體)를 받아 일필휘지(一筆揮之) 선장하니 …중략… 상시관이 이 글을 보고 자자(字字)이 비점이요 구구(句句)이 관주로다. 용사비등(龍蛇飛騰)하고 평사낙안이라 금세의 대재(大才)로다. 금방의 이름을 불러 어주삼배(御酒三盃) 권하신 후 장원급제 휘장이라. 신래(新來)의 진퇴(進退)를 나올 적에 머리에는 어사화요 몸에는 앵삼이라. 허리에는 학대로다. 삼일(三日) 유가한 연후에 산소에 소분하고 전하께 숙배하니 전하께옵서 친히 불러 보신 후에 …하략…

이몽룡이 과거를 치른 춘당대시는 왕실에 경사가 있거나 유생을 시험하기 위해 부정기적으로 실시하던 문·무과로, 이 시험만으로 대과 3단계 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전시를 보는 것과 같은 혜택을 주었다. 이렇듯 춘당대는 그 당시 누구나 한 번쯤 장원 급제를 꿈꾸어 보았을 등용문의 현장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규장각, 영화당 일대에서 나라에 등용되어 출세를 꿈꾸던 선비들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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