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본 세상](13) 공자 왈: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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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는 정권을 심판한다. 기존 정권에 '오케이' 사인도 주지만, 그릇됐다 싶으면 가차 없이 갈아치운다. 현대적 의미의 '혁명'이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빼앗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싸운다.

그렇다면, 혁명 다음은?

혁명의 목적을 묻고자 함이다. [주역으로 본 세상] 13번째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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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은 상극이다. 불이 났을 때 물을 끼얹어 불길을 잡는다. 그런 물과 불이 서로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물이 솥에 담겨있을 때가 그렇다.

불은 솥의 물을 끓인다. 불이 셀수록 물의 양을 늘려야 하고, 물이 많다 싶으면 불을 더 지펴야 한다. 상응(相應)이다. 끓는 물은 음식을 익게 하고, 우리는 그 음식을 먹고 산다.

먹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던가. 그래서 솥은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다.

고대 왕은 하늘의 명(天命)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천자(天子)라고도 했다. 글자 '王'이 그러하듯, 그는 하늘과 땅과 인간을 연결한다. 천자는 하늘에 제사라는 걸 지낸다. 희생(犧牲)을 바치고, 술을 따른다.

고대 왕실의 솥 '鼎'은 통치 정통성의 상징이었다.

고대 왕실의 솥 '鼎'은 통치 정통성의 상징이었다.

제사 음식을 만드는 것 역시 솥이다. 고대에는 그걸 '鼎(정)'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鼎'은 왕권을 상징한다. 하(夏), 상(商), 주(周)시대 때 왕이 바뀌어도 '鼎'은 대를 이어 보존됐다. 이를 '구정(九鼎)'이라 했다. 鼎은 정권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기물이었던 셈이다.

진시황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 후 가장 먼저 찾은 게 바로 구정이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혼란기를 거치면서 소실됐던 鼎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정통성에 흠결이 생긴 것이다. 통일 진나라가 단명에 그친 이유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유지의 핵심은 정통성과 민생이다. 옛날 정통성이 하늘에서 왔다면, 지금은 국민의 표에서 나온다. 본질은 같다. 하늘에게서 부여받았든, 투표로 얻었든 鼎을 확보했다고 치자. 그다음 중요한 게 바로 먹거리, 즉 민생이다. 백성들을 배부르게 먹게 하는 것, 정치에서 그 이상 중요한 건 없다.

그러기에 鼎은 정치와 경제의 처음이자 끝을 상징하는 기물이다.

주역 50번째 괘의 제목이 바로 '鼎'이다. 오늘 '화풍정(火風鼎)' 괘를 보자.

불을 상징하는 리(離, ☲)가 위에 있고, 바람을 의미하는 손(巽, ☴)이 아래에 있다. 불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오니 활활 타오른다. 그 불 위에 놓여있는 게 바로 '鼎'이다. 그래서 '화풍정'은 솥에 식재료를 넣고, 불을 때 음식을 만드는 형상이다.

'화풍정'은 49번째 괘 '태화혁(澤火革)'에 이어진다. 혁명을 뜻하는 '革(혁)'괘 다음에 민생을 강조하는 '鼎(정)'이 오는 건 의미심장하다.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정권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화풍정' 괘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鼎의 기능은 백성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제사 음식을 만드는 것 외에 하나 더 있다. 바로 문화를 융성케 한다는 것이다. 괘사(卦辭)는 이렇게 적고 있다.

'以亨上帝而大亨以養聖賢'

'음식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더 풍부한 음식으로 성현을 키운다'

'주역의 시대'에 성현은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 지식인 계층이다. 문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가난 속에서 문화가 싹트기는 쉽지 않다. 풍족한 음식이 있을 때라야만 문화인들이 활약할 수 있다.

경제를 일으켜 문화강국을 만드는 일, 그게 정권을 잡은 후 리더가 해야 할 일이라는 얘기다.

혁명의 또 다른 이유는 과거의 구태와 악습을 철폐하는 데 있다.

'鼎顚趾,利出否'

'솥이 뒤집히니 온갖 나쁜 찌꺼기가 밖으로 빠져나와 이롭다.'

주역은 새로운 음식을 담기 위해서는 과감히 비우라고 충고한다/출처 guoyi360.com

주역은 새로운 음식을 담기 위해서는 과감히 비우라고 충고한다/출처 guoyi360.com

鼎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일단 비워야 한다. 솥 내부의 오물을 버려야 새로운 음식을 담을 수 있다. 주역은 '나쁜 찌꺼기를 덜어내고 귀한 것을 따르라(出否從貴)'고 적고 있다. 새 정권은 응당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鼎괘가 革에 뒤이어 나온 이유다.

성어 '혁고정신(革故鼎新)'이 바로 거기에서 나왔고, 우리가 요즘 흔히 쓰는 '혁신(革新)'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鼎은 정치권력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뜻한다.

주역은 '鼎의 다리가 부러져(鼎折足) 음식이 쏟아지면(覆公餗) 흉하다(凶)'라고 했다. 이 효사(爻辭)에 대한 공자(孔子)의 해석은 이렇다.

'覆公餗, 信如何也'

'백성들을 먹일 솥이 엎어지면, 신뢰는 어찌하란 말인가.'

공자는 밥그릇이 깨지면 백성들의 신뢰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500년 전, 공자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鼎은 통합을 상징한다.

鼎은 상부에 손잡이(耳)가 있고, 그 손잡이를 연결해 솥을 드는 고리(鉉)가 있다. 주역은 정권을 잡은 군주를 '黃耳金鉉(황이금현)'으로 표현했다(다섯 번째 효사). '누런 솥귀와 금 고리', 정통성의 상징인 鼎을 손에 넣었다는 뜻이다.

주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여섯번 째 효사는 '鼎에 옥으로 만든 고리(玉鉉)가 있으니 크게 길하다'라고 했다. 옥은 금보다 다채롭고 화려하다. 군주는 포용력을 발휘해 보다 빛나는 인재를 끌어들여 정국 운영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옥으로 된 정(鼎)의 고리(鉉)는 인재를 상징한다/출처: guoyi360.com

옥으로 된 정(鼎)의 고리(鉉)는 인재를 상징한다/출처: guoyi360.com

공자는 이를 두고 '옥 고리가 위에 있으니 강함과 부드러움이 절제되어 조화를 이룬다(玉鉉在上, 剛柔節也)'고 해석했다. 포용력을 발휘해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고, 그들이 적절한 시책을 내놓도록 해 민생을 살피라는 뜻이다. 그게 바로 정권을 잡으려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거기에 정치 보복은 없다. 측근들 자리 챙겨줘 살길 마련해주는 것과는 더 거리가 멀다.

'治大國,若烹小鮮'

공자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큰 나라 다스리는 일을 작은 생선 요리하는 것과 같이하라'고 일갈했다. 생선 요리는 어렵다. 자칫 불이 세면 겉만 타고, 약하면 익지 않는다. 함부로 뒤집기라도 하면 뼈와 살이 모두 흩어진다. 그래서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익혀야 맛있는 생선을 구울 수 있다.

정치란 맛있는 생선을 백성들에게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나라 경제를 살리고, 문화를 일으키고, 백성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다.

왜 정권을 잡으려 하는가에 대한 답이 딱 거기에 있다.

오늘도 여야 핵심 관계자들은 갈라진 목소리로 서로 으르렁댄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저리 악을 쓰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누구에게 '鼎'이 돌아가던, 소중하고 귀하게 다루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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