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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랑 컨셉 전혀 안맞아요"…40대는 오지말라는 '노중년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40대 여성 A씨는 최근 난처한 일을 겪었다. 지난달 제주도 여행 일정을 짜면서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는데 업주에게서 “40세 이하만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A씨는 예약을 취소하고 급히 다른 호텔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여행할 때 주로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왔다는 A씨는 “숙소에 들어가면 잠만 자고 나온다.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나이 먹는 것에 쓸쓸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의 한 캠핑장. 사진과 기사 내용은 관련이 없음. 사진 서울시

서울시의 한 캠핑장. 사진과 기사 내용은 관련이 없음. 사진 서울시

게스트하우스, 캠핑장도 “40세 이상 출입금지”

A씨의 투숙을 거부한 게스트하우스처럼 40대 이상 이용객을 받지 않는 ‘노(No) 중년존’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한 인터넷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하니 숙소 열 군데 이상이 나이 제한을 두고 있었다. 투숙객의 나이 상한선은 대부분 35~39세로 정해져 있었다. 30대 후반 직장인 여성 B씨도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한 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소당했다. 업주에게 이유를 묻자 “나이 많은 손님이 젊은 손님에게 잔소리해 분위기가 불편해진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는 공용 공간이 있어 투숙객끼리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세대 차이 때문에 젊은 손님들이 불편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40대 이상 커플의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서울 은평구의 한 캠핑장이 구설에 올랐다. 이 캠핑장은 20~30대 커플이나 여성, 소규모 가족에 한해서만 예약을 받고 있다. 업주는 공지사항을 통해 “우리 캠핑장은 20~30대 고객 취향에 맞춰 운영되고 있어 40대 이상 고객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이 방침이 ‘중년 차별’ 논란으로 번지자 ‘40대 이상 커플 예약 불가’라는 문구는 사라졌다. 업주는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캠핑장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서 취한 조치”라고 했다.

40대 이상 커플의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서울 한 캠핑장의 공지사항.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40대 이상 커플의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서울 한 캠핑장의 공지사항.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특정 계층 차별” vs “진상 고객 방지” 

특정 이용객의 출입을 막는 ‘노 OO존’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직장인 고모(25)씨는 “‘노 스터디존’처럼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건 이해하지만, ‘노 키즈존’이나 ‘노 시니어존’처럼 나이를 기준으로 출입을 막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온라인상에는 “진상 고객이 갑질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업주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노 OO존’ 논란의 시초는 어린이 이용객을 받지 않는 ‘노 키즈존’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노 키즈존 식당에 대해 “13세 이하 아동의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나이를 이유로 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 행위”라며 아동을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앞서 2016년 9월 제주시의 한 식당이 9세 아동의 출입을 막은 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규정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에 강제적인 구속력을 가진 조항이 없어 권고 수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세대 갈등이 나타난 징후라고 설명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동질적인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고 결집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청년층은 장년층과 대화 자체가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진단했다. 구 교수는 이어 “(노 OO존에) 차별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지만, 법을 제정하기 이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반대하거나 인권위에 진정을 넣는 등의 대응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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