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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시뮬레이션 훈련장 없어, 현장 대응력 떨어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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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호 06면

경찰, 잇단 부실대응 원인은 

지난 1일 서울경찰청에서 경관들이 물리력 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최근 흉기난동 부실 대응으로 경찰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경찰청에서 경관들이 물리력 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최근 흉기난동 부실 대응으로 경찰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발생한 인천 남동구 흉기 난동사건에서의 경찰 대응은 경찰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다. 급박한 상황을 눈앞에 보고도 피해자를 뒤로 한 채 사건 현장을 이탈했던 경찰관들의 소극적 대처와 가족을 구하기 위해 흉기를 손에 잡고 막아야 했던 남편과 딸의 기막힌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나에게도 저런 일이 닥칠 수 있겠다’라는 불안감이 결국 국민의 불신과 공분으로 이어졌다. 신고하면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지켜줄 거라는 국민의 가치기대와 경찰관의 방관적 자세라는 가치 현실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19일에는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며 경찰에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이 살해당했다. 이 여성은 사건 당일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긴급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소재 파악이 신속히 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의 현장 대응 능력에 의문이 제기된 사건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찰 관련 사건 이후 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경찰관의 당당한 공권력 행사를 주문하고 치밀한 현장 대응 능력 보완을 지시했다. 경찰청장의 언급만으로 현장에서 공권력이 제대로, 당당하게 행사될 것이라고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사태의 원인이 결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 기준 동일한 ‘순환식 체력검사’ 도입

국민은 직업의식을 가진 경찰관이 신속히 현장에 출동해 사건해결에 적극적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이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직업의식, 책임감,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조건을 구비한 자원들을 선발한 뒤 반복훈련을 통한 행동화, 신념화를 기반으로 한 현장 대응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인간의 생각은 행동을 지배하고 행동은 생각을 견고히 하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관 선발방식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남녀비율을 배제한 선발제도가 2020년 경찰대학, 경찰간부 후보생을 대상으로 이미 시행되었고, 2026년부터는 순경공채까지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올해 6월, 경찰위원회가 남녀 체력기준에 대한 논란 불식을 위해 남녀 체력기준이 동일한 ‘순환식 체력검사’의 도입을 예고했다. 2023년부터 경찰 간부선발 과정에, 2026년에는 순경공채에 적용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제도는 남녀 구분 없이 합격·불합격 방식으로 이루어지므로 현실성 있는 현장대응 체력수준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핵심은 남녀 구분 없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여건을 갖춘 경찰관을 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늘 등장하는 여경폐지론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래야 현장을 이탈한 뒤 트라우마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여경, 현장 이탈하는 후배경관을 데리고 사건 현장으로 향하지 않고, 출입문을 부수자는 환경미화원의 제안에도 응하지 않는 등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19년 차 남경을 더는 현장에서 보게 되지 않을 것이다.

임무 수행을 위한 경찰 장구 사용에는 수준 유지 훈련이 필수적이다. 한번 사용에 4만원이 든다는 테이저건 훈련 효과는 현실적으로 지속가능성이 낮다. 사용해 본 경찰관도 별로 없거니와 한 번 사용해 봤다고 해서 수준 유지가 될 수 있을까?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경찰서에 아직까지 테이저건이나 사격 등 다양한 시뮬레이션 훈련장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에게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부모는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고 아이를 보호한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일선 경찰관에게 지울 수만은 없다.

그동안 법원의 공권력 집행에 대한 판결의 영향도 컸다. 2010년 흉기를 들고 경찰에 저항하다 테이저건을 맞고 자신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70분간 난동을 부리기는 했지만 테이저건을 사용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경찰 대처를 불법으로 판결했다. 또 40센티 흉기를 들고 경찰관을 위협한 용의자에게 총기를 발사한 사건에 대해 ‘급박한 위험성이 없었다’며 이를 불법으로 판결했다. 현장에서의 급박한 위험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 흔들리는 대목이다.

이런 현실 아래에서는 현장 대응 매뉴얼은 있지만 송사에 휘말려 고통받는 동료들의 사례를 보며 각자도생의 자괴감을 가질 수 있다. 오죽하면 현장 경찰관들 사이에 “권총은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집어던지는 것”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겠는가?

“권총은 쏘는 게 아니라 던지는 것” 자조도

현장에서 급박한 위험을 느끼고 공포탄을 발사해도 조사를 받고, 부상이라도 당하면 기본적 의료지원 이외 추가되는 금전적 부담을 스스로 안아야 하니 인권과 공권력 집행 사이에서의 균형성보다 개인적 문제 발생을 더 꺼리는 것이다. 그동안 조금 밀리면 여경 폐지, 조금 과하면 과잉진압이라는 경찰에 대한 지적들도 경찰관을 위축시키는 원인 중 하나였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번과 유사한 사태가 재발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범죄 관련성, 긴급성, 불가피성, 고의 중과실 유무를 따진 후 임의감면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경찰 직무수행으로 인한 형의 감면규정 도입에 대한 논의는 시의적절하다.

경찰의 당당한 법 집행은 경찰청장의 말 한마디로 해결되지 않는다. 법 집행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법원의 현실성 있는 판결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업의식과 임무 수행 자질을 갖춘 인원 선발, 수준 유지를 위한 교육훈련, 정당한 법 집행을 한 경찰관에 대한 보호,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한 국민의 신뢰회복 등 경찰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 국민의 치안을 책임진 당당한 경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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