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에 꽂혀 이상처럼 숭배, 5명 가상그룹 만들어

중앙선데이

입력 2021.12.04 00:02

업데이트 2021.12.0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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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호 27면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40〉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시인 이상과 작곡가 말러 등의 사진을 활용한 조영남씨의 2019년 작품. [사진 조영남]

시인 이상과 작곡가 말러 등의 사진을 활용한 조영남씨의 2019년 작품. [사진 조영남]

왜 나는 지난주에 이상(李箱)을 정지용 김기림 백석은 물론 외국의 워즈워스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보다 윗자리에 올렸는가. 다짜고짜 말하지만 말러 때문에 결국 내가 『시인 李箱과 5명의 아해들』이라는 책을 쓰게 된 거다.

시작은 구스타프 말러였다. 말러는 클래식 음악 쪽에선 이미 BTS 급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모차르트 베토벤에 버금가는 작곡가다. 나는 그때, 그때라는 것은 내가 말러의 교향곡 3번을 처음 들었을 때다, 교향곡은 수십 명의 악사들이 특정된 지휘자의 지휘 아래 그냥 음악만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형식이라고만 여겼다. 사실은 음악과 연극을 결합한 오페라보다도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자고로 작곡가의 가치는 얼마나 교향곡을 잘 쓰냐의 여부에 따라 명성이 각기 다르게 따라붙게 되어 있다.

나는 한때 수면용으로 잠들기 전 아르떼(Arte)라는 클래식 음악 채널을 틀어놓고 잠들 때가 있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똑같은 채널에서 클래식 음악이 자동으로 들려오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곡으로 말러의 교향곡 3번이 연주된다고 자막에 뜨는 걸 무심코 보게 됐다.

이상 띄우기 작전으로 오디션 펼쳐

조씨가 시인 이상의 최고 연애시로 꼽은 ‘이런 시’ 구절을 써넣은 작품. [사진 조영남]

조씨가 시인 이상의 최고 연애시로 꼽은 ‘이런 시’ 구절을 써넣은 작품. [사진 조영남]

나는 그냥 덤덤하게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이따금씩 이것저것 교향곡을 듣곤 했는데 말러의 교향곡 3번은 뭔가 다르게 들렸다. 평소 좋다고 알려진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의 교향곡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다른 정도가 너무 컸다. 점점 말러의 음악은 내 몸을 조여왔다. 구름에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점점 불안해졌다. 뭐가 불안하냐. 10시 반이면 나를 정규적으로 골프장에 데려가는 사업가 후배 윤정웅과 김혜수(혜수는 여류화가다) 부부가 나를 픽업하러 오는 시간이다. 말러 교향곡이 끝나기 전에 윤정웅 부부가 나를 픽업하러 올까 봐 불안했던 거다. 말러의 교향곡 3번은 무려 90분짜리의 긴 곡이다. 드디어 마지막 5악장의 팀파니가 탕탕 장쾌하게 울려 퍼지고 동시에 경비실에서 차가 왔다는 인터폰이 들려오고 나는 허겁지겁 내려가 골프장으로 향한다. 나는 어떻게 골프를 쳤는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말러 교향곡에 정신이 없었다고 했더니 이틀 후에 윤정웅이가 말러 교향곡 10편 전부를 한 세트로 보내온다.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의 말러 교향곡 전곡이 들어 있었다. 나는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음악가게를 찾아가 말러 교향곡의 총보를 구입해 악보를 넘기며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나는 미술 사건 재판 중이라 시간이 남아 돌아가던 때였다.

내 예상대로 나는 말러가 무서운 작곡가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니까 말러는 바하를 비롯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브루크너를 몽땅 섞어 놓은 최종 종합판이었다. 교향곡의 끝판왕이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 그랬다는 얘기다.

그때 나는 실로 괴상망측한 짓을 시작하게 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벌떡 일어나 말러가 아닌 시인 이상의 초상화를 냅다 그리기 시작했다. 행여 여기까지 읽어주신 중앙SUNDAY 애독자님들께서 날더러 왜 말러 음악을 감상했으면 말러 초상화를 그릴 것이지 웬 엉뚱한 시인 이상의 초상화를 그렸느냐 의아하시겠지만 나는 당당하게 대답하겠다.

내 평생 나의 영혼에 깊숙이 들어와 총괄 담당한 사람은 딱 한 사람 시인 이상이었다. 나는 이상의 난해한 시 100여 편을 일일이 해설하는 책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쓰다가 후반부에는 내 몸이 완전 다운되어 미세한 뇌경색 판정까지 받게 되어 고려대 병원에 입원, 10일간 약물치료로 반쯤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기도 했다. 이상은 내가 추구해야 하는 유일신이었다. 나는 이상 한 분으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웬걸 이상과 비슷한 인물로 말러가 떠오른 것이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내가 숭배해야 할 대상이 갑자기 이상과 말러 이렇게 두 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말러의 초상화를 그리는 게 아니라 나의 원조 숭배자 이상의 초상화부터 그려낸 것이다. 이어서 나는 초상화 제목을 길게 ‘아인슈타인, 니체, 피카소, 말러, 이상의 친구들’로 적어놨다. 여기까지가 지난 37회(11월 13일 자)에서도 언급한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이라는 보컬 그룹을 결성하게 된, 이 지면에서 처음 밝히는 경위다. 이쯤에선 중앙SUNDAY 애독자님들 입에서 미쳤군, 돌았군 하는 동정심의 탄식이 나올 줄 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사실상 그때 왜 그런 긴 제목을 새겨 넣었는지 잘 모르겠다. 굳이 따져보자면 대강 이런 것이었다.

2018년에 그린 이상 초상화. [사진 조영남]

2018년에 그린 이상 초상화. [사진 조영남]

자! 문학의 이상, 그리고 음악의 말러 이렇게 두 양자가 마치 내 개인 소유의 태양처럼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이상과 말러는 영 조합이 맞지 않는 어거지 날조품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태양 한 개를 더 늘려 세 개의 태양을 만들어냈다. 그게 피카소 태양이다.

문학의 이상을 꼭짓점에 배열하고 아래쪽에 음악의 말러와 그 옆에 미술의 피카소를 배치하니 그런대로 보기가 좋았다. 그런데 너무 균형이 잘 맞아 떨어지니 오히려 덜 미학적으로 심심해졌다. 그래서 “에이 갈 데까지 가보자” 하면서 꺼내 든 게 철학의 니체, 물리학의 아인슈타인이다. 이젠 총 다섯 개의 태양이 내가 창조(?)해낸 조영남만의 우주가 되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로로 이상 초상화의 제목을 정하고 보니 태초에 조물주가 말했듯이 ‘보기에 좋았더라’가 된 것이다. 그럼 거기가 끝인가. 아니다. 나는 내친김에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이라는 5인조 보컬 그룹을 결성한다. ‘신중현과 엽전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서태지와 아이들’이 했듯이 나는 이상을 주축으로 5인조 그룹사운드를 결성하기에 이른바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이다.

그러면 나는 순전히 맹탕 장난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 고스톱을 치다가 그런 그룹사운드를 결성하게 됐는가. 아니다. 천만에 만만에 아니다. 나에겐 적어도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미국의 CIA, 구소련의 KGB, 이스라엘의 모사드를 능가하는 치밀한 계획, 암호 MFE 작전, ‘메이킹 플라이 이상 띄우기 작전’이다.

나는 우리의 이상을 띄우기 위한 작전으로 위대한 오디션을 펼친다. 오디션의 최종 목표는 이상의 진정한 꼬붕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가. 이상을 보필할 만한 실력이 있는가다.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는 그의 대통합성과 확장성으로 이미 사실상의 오디션을 통과한 셈이다. 말러는 이미 바흐의 대위법,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의 오케스트라 기법을 몽땅 섞어 통합을 이루었다. 말러는 1000명의 연주자를 무대에 세우는 1000인 교향곡을 써내서 확장성의 끝판왕이 됐을 정도다.

이상은 어떤가. 이상 역시 소설 ‘날개’ ‘봉별기’ 등을 씀과 동시에 난해한 연작시 ‘오감도’ 등을 발표, 시문학의 확장성의 끝판왕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디션은 피카소로 이어진다. 피카소는 일단 입체파 그림을 완성시키면서 세계 미술의 총아가 된다. 그럼 우리의 이상은 어떠한가. 이상은 전체 15편으로 구성된 ‘오감도’의 ‘제4호’,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라는 이상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낭송 불가능한 암호부호 같은 그림시를 발표, 시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전혀 새로운 입체시를 써 피카소를 거느릴 수 있게 된다는 거다.

다음은 실존 철학자 니체.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다. 니체는 그 망치를 자신이 만들어낸 예언자 자라투스트라에게 전달, 세상 모두가 숭배하고 특히 유럽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였던 하느님이라는 존재부터 내려친다. 신은 죽었다.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 너와 내가 신의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며 실존주의 철학서적을 성경보다 더 높이 치켜든 인물이다. 이런 니체에 비해 이상은 어떠했는가? 이상은 연작시 ‘오감도-두 사람 1’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신흥 미국의 최대의 마피아 깡패 두목 알 카포네와 2인조 사기단을 결성 교회 장사, 예배당 장사해 먹는다고, 니체가 망치로 내리쳤듯이 이상은 도끼로 기독교를 내리친다. 철학보다 더 교묘한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말이다.

『이상은 이상 … 』 쓸 땐 뇌경색 발병

그럼 이제 아인슈타인 오디션만 남았다. 그는 내가 칠십 평생 만나본 사람 중 가장 공부를 잘하는 머리 똑똑한 사람이었다. E=mc²이라는 불멸의 공식을 만들어내 원자폭탄을 만들게 하고 그것으로 징그럽게 버티던 대일본 제국을 두 손 바짝 들게 만들었다. 우리의 이상은 어땠는가. 혀를 차게 만들 정도로 수많은 천체물리학에 관한 시를 써냈다. 그가 1931년에 써낸 시 ‘삼차각설계도’ 일곱 편 중 ‘선에 관한 각서1’에 보면 이해 불가의 숫자와 “(우주는멱에의하는멱에의한다)” “속도etc의통제예컨대광선은매초당300000키로메터달아나는것이확실하다면” “생명은생도아니고명도아니고광선인것이라는것이다”,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그러다가 ‘최후’라는 시를 쓴다. 이런 거다. “능금한알이추락하였다. 지구는부서질정도만큼상했다”. 이것은 E=mc²를 문학적으로 해설해 놓은 논문이다.

그러다가 이상은 E=mc²에 버금가는 연애시 한 수를 발표한다. 남들이 난해하다, 미친 소리다, 저게 무슨 시냐, 맹비난할 때 이상은 난해한 시의 귀퉁이에 몰래 한 대목을 남기는데 이 시가 바로 E=mc²에 버금가는 ‘이런 시’다. 이렇게 나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나는 또 ‘이런 시’에 미친 듯이 멜로디를 올리고 이 시에 감동한 나는 급기야 우리의 이상을 정지용 김기림 백석을 넘어 셰익스피어 옆자리까지 올려놓았다.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에서는 이상이 리드싱어, 맨날 기타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피카소를 기타 연주자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니체를 피아노와 건반악기 주자로, 물리학자가 안 됐으면 음악가가 되었을 정도였던 아인슈타인을 바이올린 주자로, 그리고 말러를 타악기 주자로 설정, 서울 광화문 통인동 골목길(이상이 어렸을 때 뛰어놀았던 동네)에서 이상 작사 조영남 작곡의 ‘이런 시’를 합동 연주하게 된다. 이것이 내 책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의 줄거리다. 시종 내 딸 은지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인데 마지막 장면엔 내 딸 은지한테 합동 연주에 관한 최후의 멘트를 하도록 부탁한다.

“여러분 연주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가끔 내 딸 은지의 옆얼굴에서 신의 옆모습을 볼 때가 많다.

P. S. 나는 이 내용을 쓰고 싶어 중앙SUNDAY의 연재에 응했던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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