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형 코딩 배워 취업률 90%, IT기업 ‘입사 보증수표’

중앙선데이

입력 2021.12.04 00:02

업데이트 2021.12.0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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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호 02면

‘싸피’가 불러온 취업사관학교 열풍

6월 9일 서울 강남구 ‘삼성청년SW아카데미’ 서울 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청년SW아카데미’ 4기 수료식에 참석한 수료생들과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6월 9일 서울 강남구 ‘삼성청년SW아카데미’ 서울 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청년SW아카데미’ 4기 수료식에 참석한 수료생들과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서울 4년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이현정(25·가명)씨는 졸업 후 취업 대신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1년을 준비했다. 4년간 코딩을 배웠지만, 실무 현장에서 활용하기엔 실력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전형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을 위해 대기업 출신의 멘토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코딩을 가르치고, 복습까지 책임진다. 취업이나 생계 걱정도 필요 없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인 데다 훈련 기간 매월 100만원씩 지원금을 지급한다. 수업 과제는 입사 포트폴리오로 활용할 수 있고,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는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컨설팅도 해 준다. 이씨는 “취업난이 극심한 요즘 한 줄기 빛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선택한 ‘이곳’은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삼성청년SW아카데미(SSAFY·이하 싸피)’다. 2018년 삼성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공헌(CSR) 방안을 고민하다 내놓은 결과물이다. 만 29세 이하 미취업자 중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라면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대학 컴퓨터공학 학위, 현장선 무용지물

SSAFY 교육센터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SSAFY 교육센터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싸피의 훈련과정은 고3 수험생 못지않다. 기본 교육만 매일 8시간씩 연간 총 1600시간에 달한다. 4년제 대학 전공과목 시수의 2~3배에 가까운 숫자다. 교육만으로 끝이 아니다. 반별 질문 담당 강사, 보충 수업만 전담하는 강사 등이 투입돼 낙오되는 학생이 없도록 훈련을 거듭 반복한다. 비전공자도 정보기술(IT) 전문가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이유다. 1년간의 험난한 교육을 마친 수료생들은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를 비롯한 IT 기업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가 된다. 지난 6월까지 싸피를 수료한 2087명 중 1601명은 삼성전자·네이버·쿠팡 등 544개의 기업에 취업해 77%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취업률(76.6%)과 맞먹는다. 싸피 수료생들은 입을 모아 “수천만 원 내고 다니는 대학보다 낫다”고 극찬한다.

삼성이 키운 인재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자 일부 기업에서는 싸피가 일종의 ‘신입사원 보증수표’가 됐다. 출신 학교나 학점, 외국어 능력과 관계없이 싸피 수료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KB국민은행·현대오토에버·신세계아이앤씨 등 93개의 기업이 싸피 수료생을 대상으로 서류전형, 코딩테스트 면제 등의 혜택을 준다. 지난 4월에는 신한은행이 디지털 전환(DT)을 진행하면서 싸피 출신 지원자를 대상으로 특별 채용 전형을 만들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장시간의 교육과 실전 개발 프로젝트 경험을 거친 인재들이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에 즉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싸피 수료식 현장. [사진 삼성전자]

싸피 수료식 현장. [사진 삼성전자]

혜택이 큰만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싸피는 ‘하늘의 별 따기’로 통한다. 싸피에서 진행하는 서류·필기·면접 전형 과정은 웬만한 기업의 공개채용보다 까다롭다. 사교육 시장에 싸피 합격만을 위한 자기소개서, 적성시험 강의가 생길 정도다. 공채 전형 준비 강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특정 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한 강의가 생긴 건 싸피가 최초다.

지난해 싸피 재수에 성공한 백한솔(27·가명)씨는 “월 70만원 상당의 학원 강의를 수강했다”며 “싸피만 들어가면 취업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에 대기업 출신이나 비전공자들도 과감하게 뛰어드는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싸피 효과’를 맛본 일부 기업들은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부터 ‘우아한테크코스(우테코)’를 통해 우수 개발인력을 육성하고 있다. 우테코 수료생의 평균 취업률은 90%에 달한다. 네이버는 ‘부스트캠프’, 카카오는 ‘카카오브레인 패스파인더’를 통해 인재 선점에 나섰다. KT는 지난달 인공지능(AI) 서비스 개발자와 디지털 전환 컨설턴트를 길러내는 ‘KT 에이블 스쿨(KT AIVLE School)’ 교육생을 모집했고, 2022년에는 애플이 경상북도, 포항시, 포스텍과 손잡고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를 개소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인재 선발에만 공을 들였던 기업들이 재원을 투자해 인재 양성에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수준 있는 개발인력 확보가 기업의 최우선 과제일 정도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 4년제 대학 컴퓨터공학과 입학정원은 총 1978명으로, 내년도 싸피 모집 인원(2300명)보다도 300명 이상 적다.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력이 기업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수도권 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대학별 정원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무작정 규모를 확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수료생들 “수천만원 내는 대학보다 낫다”

우아한테크코스 교육생들이 짝을 이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모습. 우아한형제들 현직자가 직접 강의에 나선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테크코스 교육생들이 짝을 이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모습. 우아한형제들 현직자가 직접 강의에 나선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현업에서 기대하는 실무 역량과 교육기관에서 습득한 지식수준의 차이가 크다는 점도 작용했다. 대학에서 배출된 전공자를 선발해도 최소 1~2년의 추가 교육을 거쳐야만 실무에 투입할만한 수준을 갖춘다는 것이다. 한 인사 관계자는 “서울 상위권 대학 컴퓨터공학과 출신 신입사원들의 실력이 학원에서 공부한 비전공자와 큰 차이가 없다”며 “대학 교육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 문법이 10년, 5년 전 IT 트렌드에 맞춰져 있으니 학위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전했다. 대기업 소프트웨어 전문가 양성과정을 이수한 박성희(26·가명)씨도 “공학을 전공했지만, 전공 내용과 실무의 간극이 커 현장에서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며 “현장에선 ‘경력 같은 신입’을 찾는데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많지 않아 대학에 투자한 시간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우아한테크코스 교육생들이 짝을 이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모습. 우아한형제들 현직자가 직접 강의에 나선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테크코스 교육생들이 짝을 이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모습. 우아한형제들 현직자가 직접 강의에 나선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인력 미스매칭이 반복되자 대학가에서도 고심이 깊어진다. 교육의 질이 낮아 학생들의 불만은 커지지만, 대학 자체의 노력만으로는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심화 교육을 위해선 수업 지원인력이 필요하고, IT 트렌드에 맞는 개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등 기본적인 환경이 갖춰져야 하지만 지금 대학들의 상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라며 “졸업생들이 2차, 3차 재교육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의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해외의 경우 재학 내내 산업현장과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며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도 산업체와 협력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 교육, 코더 1000명 양산 아닌 SW전문가 10명 키우게 변화해야”
윤성로

윤성로

개발자 인력 부족은 하루아침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혁명으로 개발 인력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교육 인프라가 부족해 양성은 10년째 제자리다. 윤성로(사진)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대학 교육이 ‘1000명의 코더’를 양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10명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만드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의 문제가 무엇인가.
“내부의 알력 다툼이 여전하다. 대학이란 학문의 공간에 기업체가 들어와 계약학과를 만들거나, 산업체 겸임교수를 선발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영역은 기존의 산업과 다르다. 기업과 소통하며 연구, 개발하면 당장에라도 상용화가 가능해 큰 시너지가 난다. 그러나 지금 대학은 이해관계에 매몰돼 이런 장점을 놓치고 있다. 재정 문제도 치명적이다. 인구 감소와 등록금 인하 정책으로 교육 인프라 개선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일류 대학인 서울대도 시설이 열악해 추위에 떨면서 연구할 정도라면 믿어지시나.”
인력은 충분한가.
“지금 대학 현장에서는 교수 1명이 학생 50명, 100명을 가르친다. 그 와중에 논문도 써서 연구성과도 올려야 한다. 연구에도, 교육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산업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고 도태된다. 졸업생들이 교수 대신 외부 교육기관을 찾아가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 단순 인력이 아닌 고급 엔지니어를 양성하려면 실력 있는 교수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도움을 줄 인력이 필요하다. 스탠퍼드는 학생 7명당 조교 1명이 배정돼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떠먹여 준다.”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4차산업혁명 시대에 개발 인력이 부족하다며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를 무분별하게 개설한다. 눈 앞의 성과를 위해 쌓아온 모래성을 무너트리고 새로 짓는 행위다. 소프트웨어 영역은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각 학과의 경계를 허무는 등 기존의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조정하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대학별로는 분업화를 권하고 싶다. 연구·교육·실무 영역을 나눠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든 대학이 스탠퍼드·버클리가 될 필요는 없지 않나. 초·중·고에서는 SW 교육 시수를 늘려나가되, 전문가들이 모여 해외에 뒤지지 않는 탄탄한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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