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앞집은 음악가 아랫집은 작가…예술가가 사랑한 동네

중앙일보

입력 2021.12.03 11:01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5)

동네 엄마가 자랑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 집 전전에 살던 신혼부부도 2년을 못 넘기고 어디가 아파서 나가고, 바로 전에 살던 사람도 1년도 안 돼서 나갔어. 그런데 나는 여기서 눌러앉고 아이를 가졌지” 그러니, 옆에 있던 엄마가 “나도, 난 여기가 잘 맞아. 부암동 기가 세서 그 기를 못 누르면 살고 싶어도 못 살고 나간다고 하잖아” 그런다. 어디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인가 보다 그랬다. 부모님 때부터 살던 한 엄마가 “그래서 여기 예술가가 많잖아” 뭔가 결론을 낸 것처럼 이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렇다. 이 동네, 예술가가 유독 많기는 하다.

처음 이사를 오고 이웃들을 알게 되면서 여기는 뭔가 했다. 우리 빌라만 해도 그랬다. 지금은 모두 이사를 하였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우리 집 앞집은 음악가 집안이었다. 네 식구 모두 음악을 하는데, 두 딸이 독일에 유학하고 있어서 독일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아랫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는데, 엄마는 예술 분야 공공기관에 다녔다. 아빠는 자영업도 하고 있었지만 글을 쓰는 작가였다. 부암동에 머무르며 책도 한 권 냈다. 1층에 사는 부부는 디자이너였다. 남편이 부암동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한다. 부암동에서 규모 있는 미술 학원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미술을 전공했다고. 그 앞집에 사는 젊은 두 청년도 조형 미술을 하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빌라 사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 골목 끝 제일 아랫집에 있는 아이 아빠도 글을 쓰는 작가다. 오다가다 만나면 아이들 안부를 묻기도 하고 책 이야기도 한다. 길 건너편에 사는 친한 아이 엄마, 아빠도 조각을 하고 있다. 그 아랫집 분은 거문고를 전공하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 앞집에 아이가 넷 엄마는 무용단에 있었다. 그 골목 아랫집에 아는 부부는 연극을 했다. 그 옆집 할머니는 미술을 전공했는데, 가끔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불러놓고 그림을 그리며 논다고 했다. 어쩌다 알게 되고 누구네 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창작을 하는 집들이 꽤 많다. 일 년을 넘게 하는 요가학원도 마찬가지다. 회원들 대다수가 창작 활동을 했다.

인왕산 암벽을 보고 있자면 그 모습이 어떤 생명체에도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은 위세로 서 있다. [사진 김현정]

인왕산 암벽을 보고 있자면 그 모습이 어떤 생명체에도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은 위세로 서 있다. [사진 김현정]

어떻게 다들 부암동에 왔을까.

자리 잡은 연유를 물어보면 "예전부터 이 동네에 살고 싶어서 왔다", "이 동네를 본 순간 여기다 했다", "여기서 나고 자랐는데 부암동에 다시 살고 싶어져 왔다"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부암동을 사랑하고 있다. 가끔, 이 동네를 동경하며 왔다가 불편한 언덕길과 인프라에 학을 떼고 가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창작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이 동네를 사랑하고 살면서 더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이 동네를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오겠다’ 다짐하듯 말을 남기고 간다. 왜 그러는 걸까.

가끔 골목길을 가다 보면 주택들 사이로 원래 주인이었던 인왕산의 큰 돌들이 자기의 위세를 그대로 드러내며 서 있다. 그래서 그 돌을 깎아 건물을 짓거나 혹은 그 돌을 벽 삼아 커피숍을 하거나 갤러리를 한다. 어쩐지 암벽을 보고 있자면 고집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어떤 생명체에도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은 위세로 서 있다. 그런데 위엄을 드러내며 웅장하게 있는 돌산 위에 그 기운을 누르고 자리 잡고 마는 사람들. 혹은 그 기운을 벗 삼아 사는 사람들. 그들의 자아도 강하고 고집스러워 보인다. 잘은 모르겠지만, 공간을 닮은 그런 사람들이 그 기운으로 모이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보통 인내력과 기운으로 이 동네를 못 버틴다는 생각은 했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풍경과 조용함이 큰 이점으로 작용하겠지만 서로의 자아를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움, 평판에 치우치지 않는 강인함이 모여 이 동네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사실, 여기 있다고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는 더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부암동이 많이 알려졌지만, 이 동네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분들이 차도 들어가지 않는 산속 공간에 자리를 잡고 창작 활동을 했다고. 지금은 그마저도 이 동네가 시끄러워져 많이들 떠나고 있지만 여전히 숨은 재야의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부모님 대대로 살던 동네 엄마가 "부암동 기운이 다 하고 있데요, 그래서 요즘은 예술가들도 많이 떠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출처가 어디인 줄은 모르겠으나 그녀가 하는 말은 뭔가 모르게 신뢰가 간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 나 역시 부암동을 사랑하지만, 떠나게 될 수 있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나도, 우리는 모두 부암동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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