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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김장한 천생 한국인…'사할린 워킹맘' 택한 尹의 당부 [단독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스트류커바 디나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스트류커바 디나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외할머니가 부모님 손에 이끌려 러시아 사할린에 도착한 건 고작 다섯 살 무렵이었다. 할머니의 고향은 전북의 어느 시골 마을인데, 기억이 또렷할 때 쯤엔 이미 사할린 광부의 딸로 살아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한인 남성을 만나 결혼했고 아들과 딸을 낳았다. 할머니는 한동안 국적도 없이 살았다고 했다. 러시아도, 한국도 동포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단한 삶 속에 외삼촌은 암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엄마는 러시아인인 아빠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렇게 내가 세상에 나왔다.

2일 서울 신사동 카페에서 만난 스트류커바 디나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30)은 덤덤하게 가족의 일대기를 읊었다. 그는 지난달 29일 김기현 원내대표, 김도읍 정책위의장, 조경태 의원, 이수정 경기대 교수 등과 함께 국민의힘 선대위원장으로 ‘깜짝 발탁’된 인물이다. 만 1세 아들을 키우는 30대 워킹맘이자 사할린 강제 이주 동포 3세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정치권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를 중앙일보가 단독으로 만났다.

“김장은 연례행사”… 러시아에서 자란 한국인의 정체성

스트류커바 위원장의 외조부모가 한국인으로서 한국 땅을 밟은 건 사할린으로 끌려간 지 60여년 만인 2007년이었다. 적십자의 사할린 동포 귀국 사업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2년 스트류커바 위원장도 한국에 왔다. 러시아 극동연방대에서 한국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입국 뒤 연세대 국제대학원 한국정치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의 한국행은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서툰 한국말과 달리 입맛은 김치찌개에 쌀밥을 찾는 ‘천생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류커바 디나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스트류커바 디나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제가 태어난 곳은 블라디보스토크였지만 마음은 항상 한국인이었어요. 한국 전통과 음식은 어려서부터 접해왔고 한국 명절도 지냈어요. 김장은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외갓집의 ‘연례행사’이기도 했고요. 또 블라디보스토크는 항일 운동과도 관련이 있어요. 정부의 무관심 속에 10여 년 전 철거되기도 했지만 안중근 의사 기념비도 있었죠. 모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부심을 갖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준 경험입니다.

대학원 졸업 후 혹독한 ‘취준생’ 기간을 거쳐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던 그는 연세대에서 만난 외국인 남편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성형외과 코디네이터, 스타트업을 거쳐 중소기업에도 몸담았던 그가 마지막으로 재직했던 곳은 무역회사였다. 2019년 아이가 생기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없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때부터 지금 운영 중인 무역컨설팅업체를 구상했다.

일도 육아도 잘 해내고 싶은 ‘만렙 워킹맘’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친정과 시댁이 모두 해외에 있고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느라 육아는 오로지 스트류커바 위원장의 몫이었다. ‘독박 육아’의 고단한 나날에도 보기 좋게 사업자 등록까지 해놓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고 하니 대기가 길었다. 결국 옆 동네 어린이집까지 알아보러 다닌 끝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해서 끝이 아니더라고요. 지난 2주간은 아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죠.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갑작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다 보니 일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윤 후보, 워킹맘·이주민 목소리 가감 없이 들려달라 당부”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그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만난 건 올 8월이다. 대학원 동창의 소개로 당시 윤석열 캠프 청년특보였던 장예찬씨가 만든 ‘상상23’ 세미나에 참석해 윤 후보와 ‘줌’으로 인사한 게 첫 만남이다. 스트류커바 위원장은 “당시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원격으로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격식 없는 발표 분위기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에 이어 윤 후보를 세 번째 만난 게 지난달 28일 윤 후보가 직할 조직으로 만든 ‘내일을 생각하는 청년위원회’ 발족식이었다. 선대위 내 역할에 대해 이야기가 오간 건 2~3주 전이었지만 막상 인선 확정 소식은 공표 하루 전인 발족식이 끝난 후에 들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쪽)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대선 D-100, 내일을 생각하는 청년위원회 및 청년본부 출범식'에 참석해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각자의 손가락으로 지문을 찍는 ‘공정 나무 심기’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이 스트류커바 디나 위원장이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쪽)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대선 D-100, 내일을 생각하는 청년위원회 및 청년본부 출범식'에 참석해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각자의 손가락으로 지문을 찍는 ‘공정 나무 심기’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이 스트류커바 디나 위원장이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후보가 그에게 위원장 직책을 맡기며 어떤 당부를 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내가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떠한 망설임 없이 전달해달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대위 활동을 위해) 육아와 저출산 문제, 청년 취업, 이주민들의 고충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의견들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같은 저출산 국가에선 워킹맘이나 아이를 키우며 자기계발에 나서는 엄마들을 지원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엄마들 역시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를 하려는 자아실현 욕구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현실에 맞는 지원책이 마땅히 없다는 겁니다. 엄마가 무엇을 할지는 엄마의 자유이자 권리인데 여러 가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선택을 강요받고 있어요.

스트류커바 디나 공동선대위원장이 2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20211202

스트류커바 디나 공동선대위원장이 2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20211202

그는 ▶어린이집 확대 운영 ▶추가 보육(오후 4~6시)을 위한 제출 서류 간소화 ▶휴일 등 긴급보육 서비스 제공 ▶육아를 위한 출·퇴근 시간 조정 및 휴무제 도입 ▶자녀 병간호를 위한 직장 휴무제도 등의 정책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자신 같은 한인 동포를 위한 제도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냈다.

할머니가 입국해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데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엄마였어요. 유일한 가족을 두고 올 수 없다는 거였죠. 당시 귀국 프로그램이 동포 2세까지는 포함되지 않아서 우리 가족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이런 건의 사항이 끊임없이 제기된 덕에 엄마도 지금 귀국 절차를 밟고 계신답니다. 저는 귀화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동포에게도 다른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복잡한 귀화 절차를 그대로 따르도록 했기 때문이죠. 이런 일들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하고 보니 앞으로 제가 할 일이 많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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