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 반지로 부정맥 99% 잡아낸다…‘반지의 제왕’ 꿈꾸는 韓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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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⑫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가 반지형 심장 모니터링 의료기기 ‘카트원’(CART-I)을 착용한 모습. 카트원으로 측정된 데이터는 의료적 판단이 가능한 유의미한 데이터가 된다. 장진영 기자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가 반지형 심장 모니터링 의료기기 ‘카트원’(CART-I)을 착용한 모습. 카트원으로 측정된 데이터는 의료적 판단이 가능한 유의미한 데이터가 된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17일(현지시각) 독일 뒤셀도르프의 메디카(MEDICA) 행사장. 메디카는 1년에 한 번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기기 전시회로 올해에는 약 3500개 기업·기관이 참여했다. 나흘간 열린 행사에 4만6000여 명의 제약·병원 업계 관계자들이 다녀갔다.

메디카 행사장에 유난히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부스가 있었다.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메디카에 참가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스카이랩스’이었다. 아직 국내에서도 이름이 낯선 기업인데 이번 전시회에선 단연 ‘스타’였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의료용 반지
심장 전기신호 인식, 앱으로 보내

24시간 모니터링하며 상태 관리
30초 안에 산소포화도 측정 가능

독일전시회·CES 2022 등서 호평
“글로벌 원격의료시장에 도전장”

 지난달 15~18일(현지시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의료기기전시회 MEDICA에 설치된 스카이랩스 부스. 다양한 국적의 고객들이 들러 카트원에 대해 물어보는 모습. 뒤셀도르프=권유진 기자

지난달 15~18일(현지시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의료기기전시회 MEDICA에 설치된 스카이랩스 부스. 다양한 국적의 고객들이 들러 카트원에 대해 물어보는 모습. 뒤셀도르프=권유진 기자

이날 기자와 만난 영국의 한 의료기기 업체 임원은 “스카이랩스는 메디카에 오면 꼭 찾아보려고 했던 기업”이라며 “(미팅 후) 협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환(47) 스카이랩스 대표는 “직원 네 명을 (현장 부스에) 배치했는데도 찾아오는 바이어가 많아 일손이 부족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주로 유럽과 북미에서 행사장을 찾은 업계 관계자들이 주목한 건 무게가 4g쯤 되는 ‘검은색 반지’였다. 이 반지의 이름은 ‘카트원’(CART-I·Cardio Tracker)이다. 광혈류측정(PPG) 방식으로 심방세동 환자의 불규칙한 맥박을 측정하는 기기다.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면 기기에 있는 센서가 심장의 전기 신호를 인식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데이터를 전송해준다.

 스카이랩스 부스에서 손가락에 반지를 착용하고 산소포화도를 측정 중인 모습. 15초 동안 측정한 후 자동으로 앱에 기록된다. 뒤셀도르프=권유진 기자

스카이랩스 부스에서 손가락에 반지를 착용하고 산소포화도를 측정 중인 모습. 15초 동안 측정한 후 자동으로 앱에 기록된다. 뒤셀도르프=권유진 기자

실제로 기자가 현장에서 반지를 끼고 산소포화도와 심전도(ECG)를 15초~30초 동안 측정해보니 스마트폰 앱에 바로 ‘산소 포화도 98%’라는 결과가 나왔다. 산소 포화도는 95% 이상이 정상 범주다. 이 데이터는 스카이랩스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됐다가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진단할 때 활용할 수 있다.

해외 고객들 ‘러브콜’ 잇따라

스카이 랩스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스카이 랩스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병환 대표는 메디카를 통해 긍정적인 소식이 전달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미리 스카이랩스 제품을 구매해서 자국에서 의사들과 검증을 한 다음에 부스에 찾아와서 ‘우리가 팔게 해 달라’고 제안하는 업체들도 꽤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보유한 병원 네트워크를 이용해 유통하려는 것이겠지요.”

해외 고객들이 이렇게 카트원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반지가 세계 최초로 승인받은 ‘반지형 의료기기’여서다. 카트원 반지는 지난해 8월 유럽연합이 인증하는 의료기기 품목 허가인 CE-MDD를 획득했다.

심방세동 같은 부정맥은 오랜 시간 관찰하는 게 핵심인데, 가슴에 붙이는 기존의 홀터형 측정 기기는 크고 무거워 착용 시간이 24시간밖에 안 된다. 진단율도 50%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 대표는 “심장의 신호를 측정하는 광센서가 손가락에서 가장 정확하게 측정되기 때문에 반지 형태로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광센서를 손목으로 가져가면 신호 품질이 급격히 나빠지기 때문에 손가락에서 장시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심방세동은 조기 진단이 어렵지만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동반되면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해 위험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카트원은 애플워치나 갤럭시워치 같은 웨어러블(입을 수 있는) 기기와 달리 처음부터 의료기기에 초점을 맞췄다. 개발 과정에서부터 대형병원 의사들과 협업했고, 임상시험도 진행했다. 일반 웨어러블 제품은 신뢰할 수 있는 의료용 임상 결과가 없기 때문에, 의료용 자료로 쓰이기 힘들다.

“스마트워치에도 심전도 측정 기능 등이 있지만 병원에서 그 내용을 보고 진단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웨어러블 기기들이 수년 전부터 나왔지만,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저희는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이 결과를 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임상 근거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지난해 6월 최의근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연구팀이 카트원의 진단 성능을 평가한 연구가 국제학술지인 ‘인터넷의학연구저널(JMIR)’에 실렸다. 최근 10년간 연간 의료비가 최소 5배 이상 증가하고 있는 심방세동의 조기 진단과 적절한 관리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내용이었다.

최의근 교수팀은 지난 2018년부터 2년간 만 20세 이상 지속성 심방세동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카트원을 통해 얻은 1만3000여 개의 샘플은 스마트폰으로 전송돼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됐다. 연구 결과 카트의 정확도는 심방세동을 찾아내는 정확도인 민감도는 99%, 정상 상태를 찾아내는 정확도인 특이도는 94.3%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최근 심방세동 진단에 쓰일 수 있는 기기의 성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심방세동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웨어러블 기기가 필요하며, 적합한 기기 선택을 위해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임상 데이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영국 옥스퍼드 병원도 임상연구

티모시 벳츠 영국 옥스퍼드대학병원 교수(왼쪽)가 스카이랩스의 반지형 의료기기를 활용해 임상 연구에 돌입했다. [사진 스카이랩스]

티모시 벳츠 영국 옥스퍼드대학병원 교수(왼쪽)가 스카이랩스의 반지형 의료기기를 활용해 임상 연구에 돌입했다. [사진 스카이랩스]

카트원 반지는 영국의 옥스퍼드대 병원에서도 임상 연구에 쓰이고 있다.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침습형 모니터링 기기를 삽입한 후 카트원 또는 애플워치를 제공해 심장 리듬 모니터링과 이상 발생 시 위험을 제대로 알리는지 등을 서로 비교한다. 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심방세동 증상을 감지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때 항응고제 복용을 안내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연구를 진행하는 티모시 벳츠 옥스퍼드대 교수는 “카트원을 활용해 환자의 심방세동을 모니터링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치료를 안내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헬스케어 시장엔 커다란 변화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특히 원격 환자 모니터링(RPM)을 다루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이 대표는 “RPM은 병원 밖에서 데이터를 모아오는 것인데, 이와 관련된 의료기기가 예상보다 많지 않다”며 “동일 분야에서 스카이랩스 제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근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 전환하면서 중증 환자를 가려내는 게 급선무가 됐습니다. 중증 환자를 찾아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게 산소 포화도예요. 90% 아래로 내려가면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재택 치료가 의무화가 시행됐는데, 그러려면 산소 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는지 여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갑자기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코스닥·나스닥 상장 준비할 것

이 대표는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이다.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16년 이상 신호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한 경험이 있다. 국제 특허도 10개 넘게 보유하고 있다.

그러다가 2015년 창업에 도전했다. 반지로 심장의 전기신호를 읽어내는 콘셉트는 신호처리 기술이 바탕이 됐다. 창업 초기부터 국내외 기업들 사이에서 주목받았다. 스파크랩스글로벌벤처스가 2016년 3000만원을 투자했다. 이듬해 독일 제약사 바이엘이 주관한 벤처기업 경연대회(‘그랜츠포앱스’)에서 우승하면서 5만 유로(약 7000만원)를 유치했다. 이후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모루자산운용·종근당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가 고객에게 카트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셀도르프=권유진 기자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가 고객에게 카트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셀도르프=권유진 기자

스카이랩스는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정보기술(IT) 제품 전시회인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내년 코스닥 상장도 준비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나스닥 상장이 목표다. 글로벌 시장이 타깃인 만큼 현지에서 인정받겠다는 포부다. 이 대표는 “의료 시장에서는 기존에 있던 제품에 기능을 조금 더하는 걸로 승부를 내기 힘들다”며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에 뛰어들어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최초’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카이랩스는 1년에 임상을 5~6개 할 정도로 임상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어요. 아직은 ‘축적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혈압·심부전 등 더 많은 질병 모니터링 기능을 탑재한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수익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변곡점은 내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건 그로부터 1~2년 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